당항성은 북아프리카에 있었나?

2023. 6. 18. 02:05한국사/공통

당항포, 당항성에 대해 필자는 그 위치에 대해 그동안 의문을 폼어 왔다. 신라가 중국과 통하는 주요 무역항구라는 설명으로 한반도 식민사학자들은 인천지역에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이렇게 배웠다. 그러나 최근에는 당항성은 경기도 화성에, 당항포는 경남 고성으로 말한다.) 그러나 최근 10세기부터 13세기까지 존재한 대하(大夏) 또는 서하(西夏)라는, 탕구트족이 세운 나라가, 당항(黨項)이라 불리는 다른 이름을 가진다는 자료를 보고 실마리를 잡은 것으로 느꼈다.

 

대하는 송나라와 요나라와 등거리 외교를 하며, 요나라, 금나라로부터 하국공, 송나라로부터는 서평왕의 칭호를 받으며 존재했으나, 1227년 몽고의 침입에 의해 망한다. 그리고 한때 토번의 공격을 물리쳤다는 기록도 있다. 이러한 것을 고려하면, 현 중공측 주장의 역사에 의하면, 중공 본토에 있으며, 토번에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하니 중공 중서부, 서남부 정도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의 별칭이 당항(黨項, 무리당, 목덜미항)이라 한다. 즉 당항의 지명과 관련이 있다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기록은 당항포나 당항성이 한반도 인천에 있다는 식민사학자들의  주장과는 판이한 것이다. 당항의 한자도 똑같은 것을 보면 그리고 신라와 당의 주요 무역항이라는 기록을 보면, 바닷가 항구인 것으로 판단되는데, 중공측의 주장도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중공측 사가들은 기원전 3세기의 대하(大夏) 라는 나라는 박트리아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하(夏)나라는 중공땅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기원후 10세기의 서하(西夏)라면 서쪽에 있는 대하(大夏)이어야 하는데, 오히려 기원후 10세기의 서하가 기원전 3세기의 대하 보다 동쪽에 있다고 주장한다. 분명 서하는 대하와 구분하기 위해서 서하라 했다는데, 동쪽에 있으니 동하라 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즉 중공측 사가들도 모순되는 추정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왜곡된 역사를 합리화 하려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필자는 토욕혼이 서해에 접했다는 기록을 증거로 삼아 현 중공에 중국사가 있는 것이 아니고, 대서양에 접한 프랑스지역이 중국사 지역이라고 그동안 주장해왔다. 당항성, 당항포에 대한 위치 파악은 이러한 필자의 주장에 대한 검증의 시간이 될 것이다. 당연히 중공사학자들의 주장이나 한반도 식민사학자들의 주장도 검증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1. 당항성은 마한 54국 중의 하나인 원양국에 있었다. 

 

당항성은 마한 54국 중의 하나인 원양국에 있었다 한다. 원양국은 백제의 강역이었다 한다.  즉 당항성이나 당항포 지역은 마한의 지역이었으며, 또한 백제의 지역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검증해 나가면서 주목해야할 점이라 판단한다. 그리고 원양국은 한자의 뜻풀이를 고려하면 높은 지대에 있는 나라가 아닌가 한다. 이점도 당항성이나 당항포를 찾는 지리적 조건이 됨을 유의해야할 것으로 판단한다. 

 

"당항성은 마한 54국중 하나인 원양국(爰, 당길원, 이에 원, (곧, 함께, 어디) ) 襄 (도울양, (돕다, (높은 곳에) 오르다, 이루다, 완성하다) 國)에 속하였다가 백제의 강역에 포함됨"

(자료 : 당항성, 나무위키)

 

 

** 마한 54국의 이름

 

"(1)원양국(爰襄國) (2)모수국(牟水國), (3)상외국(桑外國), (4)소석색국(小石索國), (5)대석색국(大石索國), (6)우휴모탁국(優休牟涿國), (7)신분고국(臣濆沽國), (8)백제국(伯濟國), (9)속로불사국(速盧不斯國), (10)일화국(日華國), (11)고탄자국(古誕者國), (12)고리국(古離國), (13)노람국(怒藍國), (14)월지국(月支國), (15)자리모로국(咨離牟盧國), (16)소위건국(素謂乾國), (17)고원국(古爰國), (18)막로국(莫盧國), (19)비리국(卑離國), (20)점리비국(占離卑國), (21)신흔국(臣釁國), (22)지침국(支侵國), (23)구로국(狗盧國), (24)비미국(卑彌國), (25)감해비리국(監奚卑離國), (26)고포국(古蒲國), (27)치리국국(致利鞠國), (28)염로국(冉路國), (29)아림국(兒林國), (30)사로국(駟盧國), (31)내비리국(內卑離國),(32) 감해국(感奚國), (33)만로국(萬盧國), (34)벽비리국(35)구사오단국(臼斯烏旦國), (36)일리국(一離國), (37)불미국(不彌國), (38)지반국(支半國), (39)구소국(狗素國), (40)첩로국(捷盧國), (41)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 (42)신소도국(臣蘇塗國), (43)막로국(莫盧國), (44)고랍국(古臘國), (45)임소반국(臨素半國), (46)신운신국(臣雲新國), (47)여래비리국(如來卑離國), (48)초산도비리국(楚山塗卑離國),(49)일난국(一難國), (50)구해국(狗奚國), (51)불운국(不雲國), (52)불사분사국(不斯濆邪國), (53)원지국(爰池國), (54)건마국(乾馬國), (55)초리국(楚離國) "

(자료 : 마한, 나무위키)

 

2. 항(項 목덜미 항)우, 항연과 관련된 지역

 

초패왕인 항우(項, 목덜미항, 羽 깃우)와 그의 할아버지 항연, 그의 숙부 항련은 항(項) 지역에서 태어나 항(項)의 성을 가졌다 한다. 항은 목덜미 항이므로 목덜미에 해당하는 지형 특성을 가진 지역이 아닌가 한다. 당항성의 당은 무리당자, 항은 목덜미항자이다. 따라서 당항성, 당항포는 목덜미 지형에 있던 항씨 무리가 있던 지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항우가 활동했던 지역에 당항성, 당항포가 있는가  한다. 필자는 북아프리카지역이 월나라지역이 아닌가 하는 글을 썼다. (https://lainfos.tistory.com/356 참조)  월나라에서 초나라가 생겼다고 했다. 즉 항우가 활동하던 지역이 북아프리카에서 출발한 지역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리고 북아프리카에서 특히 튀니지아의 지역이 눈길을 끈다.  왜나하면 한니발(생몰 : BC 247-BC 181)이 활동하던 시기가 항우(생몰 : BC 232-BC202)가 활동하던 시기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한니발은 2차 포에니전쟁(BC 218-BC 201)에서 로마와 싸워 패한 것으로 역사는 말한다. 그 당시 이태리반도에 머물렀던 로마 공화국(아래 지도 참조)은 진(秦)나라(BC 221-BC206) 일부와 초기 한(漢)나라지역이 아닌가 한다.  (이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분석의 글이 있을 예정이다).

 

당시 북아프리카에서 이베리아반도를 넘어 알프스산맥을 넘어 로마로 진격한 한니발의  공세는 당시 카르타고 세력이 로마를 능가했음을 말하고 있다. (아래 지도 참조) 항우의 초반 기세를 말하는 듯하다. 항우가 시면초가를 듣고 자살했다는 것도 이상하다. 한니발은 패배후 아나톨리아로 피신했다고 한다. 그러나 로마공화국이 계속 추적해 암살했다고 한다. 토사구팽하는 한나라 유방의 스타일이다.

 

그러나 당항성, 당항포는 북아프리카의 다른 지역일 수 있다. 그러나 카르타고가 지배하는 지역의 하나일 것이다. 스페인 남부 지브롤터해협 지역이 당항포일 수 있다. 아래 지도에서 이 지역은 카르타고지역에 해당한다. 

 

 

1차 포에니 전쟁시기 (BC 264) 카르타고와 로마공화국 지역 (source : Wikipedia)

 

2차 포에니 전쟁 시기 (BC 218) 카르타고와 로마공화국 영역 (source : Wikipedia)

 

 

3. 카르타고의 지형과 당항성, 당항포

 

위에서 당항성은 마한의 일국인 원양국이 있던 곳이며, 백제의 영역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원양국은 높은 지대에 있는 나라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그러면 당항성의 후보지인 카르타고의 튀니지아가 이러한 지형을 가지고 있는가? 아래 지도에서 보니 그러한 형상이다. 또한 해안에 접했으니 무역항의 위치를 갖추고 있다. 그럼 이 지역이 마한의 영역이나 백제의 영역이었나? 필자는 고구려의 협보가 이베리아 반도를 거쳐 내려가 북아프리카에 다다른 곳이 남마한이 아닌가 했다. (https://lainfos.tistory.com/356  참조)  즉 서북아프리카는 남마한의 가능성이 큰 것이다. 

 

또한 항우로 추정되는 한니발의 주요 거점지역이다. 따라서 항씨라는 성을 갖는 항지역이라 할 수 있다. 지브롤터 해협 부근지형이 목덜미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튀니지아도 그런 모습을 가졌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튀니지아도 당항성, 당항포의 후보의 하나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Tunisia Topograhic map 

 

4. 이베리아 반도의 Cadiz항구와 당항성, 당항포

 

이 근처의 또 다른 후보로 스페인의 서남부 해안의 Cadiz항을 살펴 보자. 울돌목은 한자로 쓰면 울돌항(項)이라 한다. 실제 한국 서해안의 울돌목과 Cadiz항구의 모습은 매우 유사하다.

 

 

"Numismatic inscriptions in the Phoenician language record that the Phoenicians knew the site as a Gadir or Agadir (Phoenician: ‬𐤀𐤂𐤃𐤓, ʾgdr),[6] meaning 'wall', 'compound', or (by metonymy) 'stronghold'.[7] Borrowed by the Berber languages, this became the agadir (Tamazight: 'wall'; Shilha: 'fortified granary') common in North African place names,[8] such as that of the Moroccan city of Agadir. The Carthaginians continued to use this name and all subsequent names have derived from it."

(source : Cadiz,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Hispania)

Cadiz항의 위성 사진 (자료 : 위키피디아)

 

그리고 항우로 추정되는 한니발과 그의 아버지 Hamilcar Barca(항연?)는 Cadiz(=Gades)항에서 수군이 출발하곤 했다 한다.

 

"The city fell under the sway of Carthage during Hamilcar Barca's Iberian campaign after the First Punic War. Cádiz became a depot for Hannibal's conquest of southern Iberia, and he sacrificed there to Hercules/Melqart before setting off on his famous journey in 218 BC to cross the Alps and invade Italy.[17] Later the city fell to Romans under Scipio Africanus in 206 BC.[18] "

(surce : Cadiz,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Hispania)

 

 

 

임진왜란 시기와 유사한 시기 1587년 영국의 Francis Drake는 Cadiz항을 지킴으로써 스페인함대가 일년동안 지중해로 들어 오지 못하게 했다 한다. (아래 자료 참조)

 

"During the Age of Exploration, the city experienced a renaissance. Christopher Columbus sailed from Cádiz on his second and fourth voyages and the city later became the home port of the Spanish treasure fleet. Consequently, it became a major target of Spain's enemies. The 16th century saw a series of failed raids by Barbary corsairs; the greater part of the old town was consumed in a major fire in 1569; and in April 1587 a raid by the Englishman Francis Drake occupied the harbor for three days, captured six ships, and destroyed 31 others (an event which became known in England as 'The Singeing of the King of Spain's Beard'). The attack delayed the sailing of the Spanish Armada by a year.[27] 

 

The city suffered a still more serious attack in 1596, when it was captured by an Anglo-Dutch fleet, this time under the Earls of Essex and Nottingham. 32 Spanish ships were destroyed and the city was captured, looted and occupied for almost a month. Finally, when the royal authorities refused to pay a ransom demanded by the English for returning the city intact, they burned much of it before leaving with their booty."

(surce : Cadiz, Wikipedia,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Hispania)

 

 

그러나 Cadiz항은 아래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주위에 높은 지대가 아닌 평야지대이다. 따라서 원양국의 뜻인 높은 지대라는 조건에 맞지 않는다. 따라서 이곳은 높은 지대 조건으로 보면 당항성, 당항포의 후보지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해전에 유리한 항구의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어 수군 기지로서 가능성은 높다고 본다.   

 

 

Topograhic map around Cadiz in Southern Spain

 

Cadiz(=Gades)항의 위치 (자료 : 위키피디아)

 

 

5. Gibraltar 해협지역의 Rif Mountains지역과 당항성, 당항포

 

아래 지도를 보면 지브롤터 해협에 접한 북아프리카 지역과 스페인 남부지역이 맞닿은 지역이 눈길을 끈다. 매우 좁은 지역으로 대서양에서 지중해로 들어 가는 길목인 것이다. 고대로부터 전략적 지역일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여기서 북아프리카의 Rif지역이 당항포, 당항성의 지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아래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이 지역도 높은 지대이기 때문에 마한의 원양국의 조건을 갖추었다. 필자는 고구려의 협보가 이베리아 반도 연안을 따라 내려가 아프리카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한다는 글을 썼다. 즉 Rif 지역 주위가 남마한의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그리고 이 지역은 전략적 지역이라 그런지 고구려 장수왕 시기의 서고트왕국도 점하였고, 백제 성왕시기의 비잔틴제국의 Justinian I시기에도 점령한 지역이다. (아래 지도 참조)

 

이 근처 지역은 신라 진흥왕 시기의 가야정벌 지역으로 추정되는데, 바로 이 지역 아래 모로코에서 '신라사람들', '신라언어'가 존재했다. (https://lainfos.tistory.com/353  참조).   아래 자료에서 710년 아랍이 다시 이 지역을 차지한 것은 통일신라의 지역이었다는 추정이다.

 

이후 고려시대 왕건의 세력인 왕식렴이 강주를 차지한 것이 이베리아 반도 남쪽 지역이란 글을 필자는 썼다. (https://lainfos.tistory.com/367  참조) 즉 고려시대에도 이 지역을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0세기부터의 서하로 추정되는 Fatimid Caliphate가 역시 이 지역을 차지했다. 그리고 그들의 이칭이 당항, 당올이라 했다. 따라서 이 지역이 당항성, 당항포가 될 가능성이 높다. 

 

Atlas Mountains in North Western African Region (source : Wikipedia)

 

Rif Mountains (source : Wikipedia)

 

"Geography

Geologically, the Rif Mountains belong to the Gibraltar Arc or Alborán Sea geological region. They are an extension of the Baetic System, which includes the mountains of the southern Iberian Peninsula across the strait.[2] Thus, the Rif Mountains are not part of the Atlas Mountain System.

 

Major cities in the greater Rif region include NadorTangierTetouanAl Hoceima (also called Villa), ImzourenDriouchBen TaiebMidar and Al Aaroui and a few (small) towns: SeganganSelwanAjdir and Targuist (Targist).

 

History

 

The Rif has been inhabited by Berbers since prehistoric times.[3] As early as the 11th century BC, the Phoenicians began to establish trading posts with the approval of or partnership with the local Berbers; had started interbreeding and creating a Punic language on the Mediterranean and the Atlantic coasts; and had founded cities such as TetouanRusadir (now Melilla) and (in the 5th century BCTingi (now Tangier).

 

After the Third Punic War, the coast of North Africa came under the control of Rome, and the Rif became part of the Kingdom of Mauretania. When Mauretania was divided during the rule of Emperor Claudius, Tangier became the capital of Mauretania Tingitana.[4] In the 5th century AD, the Roman rule came to an end, and the region was later reconquered and partly controlled by the Byzantine Empire.[5]

 

In 710, Salih I ibn Mansur founded the Emirate of Nekor in the Rif, and Berbers started converting to Islam. By the 15th century, many Moors were exiled from Spain, and most of them settled in Western Rif and brought their culture, such as Andalusian music, and even established the city of Chefchaouen. Since then, the Rif has suffered numerous battles with Spain and Portugal. In 1415, Portugal invaded Ceuta, and in 1490 Spain conquered Melilla.[6][7] "

(source : Rif,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북아프리카)

 

이 Rif 지역에 있는 도시 Tangier 는 높은 위치를 가졌다는 의미를 가졌다 한다. (아래 자료 참조). 위에서 살펴 본 원양국 (마한의 일국, 백제 소속, 당항성 포함) 의미와 유사하다. 

 

"Moroccan historian Ahmed Toufiq considers that the name "Tingi" has the same etymology as Tinghir, and is composed of "Tin", which is a feminine particle that could be translated as "owner" or "she who has", and "gi" which may have originally been "ig", meaning "high location". This corresponds to the popular Moroccan phrase Tanja l-ɛalya (Tangier the High), which may be a remnant echo of the original meaning, as well as a reference to the high location of Tangier....

 

The western hill (French: La Montagne) is the site of the city's citadel or kasbah. The eastern hill forms Cape Malabata,[14] sometimes mooted as the point for a strait crossing.[70] (Years of studies have, however, made no real progress thus far.)[71]

The Marshan is a plateau about 1,189 metres (3,900 ft) long spreading west of downtown along the sea.[14] ...

 

(source : Tangier,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북아프리카)

 

고대에는 Tangier가 Tingis로 불렸다. 로마의 지배를 받는 Mauretania Tingitana 왕국의 수도였다.  로마시대의 성벽이 아직도 남아있다. (아래 그림 참조). 즉 당항포의 항구이면서도 당항성이라는 성곽도시였다는 것과 일치한다. Tangier (탕헤르,Tangher)는 '당항'이란 발음과도 유사하게 들린다. 

 

Location of Tingis(=Tangier) in Roman Mauretania Tingitana (source : Wikipedia)

 

"Tingis (Latin; Greek: Τίγγις Tíngis) or Tingi (Ancient Berber: ⵜⵉⵏⴳⵉ), the ancient name of Tangier in Morocco, was an important Carthaginian, Moor, and Roman port on the Atlantic Ocean. It was eventually granted the status of a Roman colony and made the capital of the province of Mauretania Tingitana and, after Diocletian's reforms, the diocese of Hispania."

(source : Tingis,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북아프리카)

 

Surviving walls from Roman Tingis (source : Wikipedia)

 

 

6. 장수왕의 남진정책으로 당성(黨城)군 설치

 

장수왕이 남진정책으로 당항성을 빼앗아 당성(黨城)군을 설치했다 한다. 그리고 백제지역이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장수왕 시기의 고구려가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했다 추정하였다. 즉 서고트왕국이 고구려라는 것이다. (아래 지도 참조)

 

그리고 장수왕 시기에 반달족이 반달왕국을 북아프리카에 세웠는데, 고트족이 함께 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장수왕의 고구려가 지휘한 것이 아닌가 했다. (https://lainfos.tistory.com/60 참조) 그 당시 반달왕국 왕 이름도 Hunneric이다. 훈족의 왕이라는 것으로 들린다.  당시 고구려는 475년 한성백제를 멸하였다. 필자는 한성을 프랑스의 Clermont-Ferrand으로 추정했다. (https://lainfos.tistory.com/79 참조)

 

그러나 필자는 백제가 온조왕이 마한을 정복한 것을 근거로 당시 마한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베리아 반도까지 확보한 것인지는 심증은 가나 아직 분석적으로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남마한으로 추정되는 북아프리카도 백제의 영역이었는지 아직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북아프리카의 튀니지아 지역은 금관가야로 추정했다. 그리고 백제 성왕 시기에 비잔틴제국의 Justinian I왕이 북아프리카에 진출하였다는 것은 분석한 바 있다. 따라서 당성군의 설치가 서남부 스페인 또는 북아프리카 튀니지아로 추정할 수 있다.

 

반달왕국의 최대 영토 (470년) (자료 : 위키피디아)

 

그러나 반달왕국을 고구려 세력에서 제외하면 장수왕 시기의 당항성 점령은 아래 지도에서 서고트왕국의 이베리아 반도 남부 끝 즉 지브롤터해협에 접한 지역이 된다. 

 

고구려로 판단되는 서고트왕국의 영역 (AD 500, 갈색 영역) (자료 : 위키피디아)

 

Empire of Theodoric the Great(고트족왕) (AD 523) (고구려 문자왕 추정) 영역

(자료 : 위키피디아)

 

 

Roman Empire at 476  (West (blue) and East(red))

 

 

장수왕이 당항포를 점령하여  당성(黨城)군을 설치했다는 것은 성곽을 쌓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런데 Tangier에 고구려 성곽을 한 모습이 있다. 20세기 초 서양인이 그려 놓은 Tangier의 아래 성곽 모습은 '치'가 있는 영락없는 고구려식 성곽이다. 

 

* 고구려 성곽의 모습을 한 Tangier castle

 

20세기 서양화가가 그린 Tangier (모로코) 의 성벽 (source : Wikipedia)

Hollar's landscape of Tanger at the beginning of its English occupation

(By Internet Archive Book Images - https://www.flickr.com/photos/internetarchivebookimages/14780828702/, No restrictions,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1878918)

 

또한 이 지역 주위 지역에서 서고트왕국 유물이 발견되었다 한다. 즉 고구려의 Tangier지역 점령을 의미한다. 아래 650년 지도에서 서고트왕국이 이 지역을 포함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Probably invited by Count Boniface, who feared war with the empress dowager,[16] tens of thousands of Vandals under Gaiseric crossed into North Africa in 429 CE and occupied Tingis[17] and Mauretania as far east as Calama. When Boniface learned that he and the empress had been manipulated against each other by Aetius, he attempted to compel the Vandals to return to Spain but was instead defeated at Calama in 431.[16] The Vandals lost control of Tingis and the rest of Mauretania in various Berber uprisings.

Tingis was reconquered by Belisarius, the general of the Byzantine emperor Justinian I, in 533 as part of the Vandalic War.[17] The new provincial administration was moved, however, to the more defensible base at Septem (present-day Ceuta).[14] Byzantine control probably yielded to pressure from Visigoth Spain around 618.[18] "

(source : Tangier,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북아프리카)

 

"Sala remained linked to the Roman Empire even after the withdrawal in the 4th century of the occupying Roman legions to Tingis (Tangier) and Septem (Ceuta) in northern Mauretania Tingitana. A Roman military unit remained there until the end of the 5th century.[16][verification needed] Some of the major monuments of the town were abandoned around this time. The site of the large capitolium temple, for example, was turned into a cemetery and a dumping ground during the 4th century.[17] Archaeological objects of Visigothic and Byzantine origin found in the area attest to the persistence of commercial or political contacts between Sala and Roman Europe, up to the establishment of a Byzantine presence in North Africa during the 7th century.[16] Fragments of pottery with Christian motifs and graffiti have also been found among objects dating from the 4th to 6th centuries.[17]"

(source : Chellah(Shallah, Sala),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북아프리카)

 

 

7. 백제 의자왕이 공격한 당항성

 

643년 백제 의자왕이 당항성을 공격해 신라가 당나라로 가는 길을 막고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려 했으나 신라가 당나라에 도움을 요청하였고, 이에 당나라가 개입하면 골치아파질 것을 우려한 의자왕이 군대를 거두어 물러났다 한다.

 

북아프리카나 남서부 스페인라면 백제 성왕으로 추정되는 비잔틴제국의 Justinian I왕이 이 지역을 점령했었는데, 이에 대한 언급이 한국사에서 없는 것은 필자의 머리를 갸우뚱하게 한다.  백제 성왕의 기록이 없고 의자왕 시기의 기록에만 당항성 공격 기록이 있다는 것은 당항성이 북아프리카나 남서부 이베리아반도에 있지 않다는 의문을 제기한다.

 

비잔틴제국의 영역 (565, Justinian I시기) (source : Wikipedia)

 

그런데 백제 성왕이후, 신라 진흥왕이 백제 성왕이 회복한 땅을 다시 빼앗았을 가능성이 있다. 모로코지역에 '신라 사람들(Shilla people)', '신라 언어(shilla language)'가 나타나는 것을 필자는 글을 통해 밝혔다.  이 시기에 신라에게 빼앗긴 지역을 백제 의자왕이 다시 공격하였을 수도 있다. 이 지역에 당항성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650년 비잔틴제국 영역 (녹색 부분) (source : Wikipedia)

 

650년 Constans II (641-668) (의자왕 시기) 지배하의 비잔틴제국 영역 (자료 : 위키피디아)

 

 

8. 통일신라 시기의 군사기지

 

통일 신라 경덕왕(742-765) 때 당항성을 당은군(唐恩郡)으로 바꾸었고, 829 (흥덕왕 4)에는 당성진(唐城鎭)을 설치하여 해안방어를 위해 군사기지화 하였다 한다.  아래 지도를 보면 우마이야왕조가 차지한 이베리아반도와 북아프리카 지역을 보여 준다. 필자는 우마이야왕조를 연 무아위야를 신라의 문무왕으로 추정했다.

 

Muslim Empire at 750

 

9. 왕건이 정복하여 고려의 영역으로 남음

 

고려시대 당항포에 대한 언급은 아래와 같다.  즉 900년경에 왕건이 정복한 후 고려초 당성군으로 개칭하였다. 신라의 당은군 개칭을 다시 고구려 장수왕 시기의 당성군으로 개칭한 것으로 보인다. 그뒤 수주, 인주, 익주, 강녕도호부, 남양부로 되었다 한다. (아래 자료 참조)

수주(水州)에 물수자가 들어 가는 것을 보면 바닷가라는 인식이 든다. 인주(仁州)는 후에 인천(仁川)이 되는 명칭의 원천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익주의 행정구역에 편입되었다 한다. 익주(益州)는 항우가 있던 지역이 아닌가? 남양부가 되었다는 것은 남쪽의 따뜻한 곳을 의미한다. 여러 가지로 북아프리카의 해안가라는 필자의 추정이 맞지 않나 한다.

 

 

" 900년 궁예휘하의 왕건이 정복, 태봉의 영향권, 이후 고려의 영역으로 남음

 

고려초 당성군으로 개칭

그뒤 수주(水州), 인주(仁州)에 속하였다가

 

1290 (충렬왕 16) 익주지사(益州知事)의 행정구역에 편입

강녕(江寧)도호부를 거쳐 1308년 익주목(益州牧), 1310 (충선왕 2) 남양부가 되었다가, 1413(태종 13) 남양도호부가 됨 조선후기에는 남양군으로 인천부 밑으로 예속됨" 

 

(자료: 당항성, 나무위키)

 

필자는 고려가 북아프리카 지역에 있었는지에 대해 아직  분석하지 못했다. 고려 시기에 대해 초반의 후삼국 시대에 대해서는 일부 글을 썼으나 고려에 대해서는 아직 본격적인 연구를 하기 전이기 때문이다.  다만 후백제의 견훤이 불가리아 제1제국의 Simeon I왕이 아닌가 하는 글을 썼다. (https://lostcorea.tistory.com/1653 참조) 그리고 비잔틴제국이 신라가 망한 후에도 계속되는 것은 고려로 넘어간 비잔틴제국이라는 것을 주장했다.

 

또한 고려가 요나라와의 전쟁에서 강동 6주를 확보한 지역이 독일의 엘베강 동쪽이라는 글도 썼다. (https://lainfos.tistory.com/222 참조)   또한 발해는 프랑스의 론강 동쪽에서부터 카자르칸국까지 포함하는 넓은 지역의 나라라는 글도 썼다. (https://lainfos.tistory.com/255 참조) 따라서 발트해에서 활약한 발해의 일부를 포함하며, 고려는 슬라브족의 영역을 광범위하게 차지한 것으로 판단한다. 즉 비잔틴제국의 영역과 슬라브족의 영역을 고려가 차지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강주, 강거가 이베리아 반도에 있었다는 글을 통해 고려초 해상세력 왕식렴의 강주 점령은 고려가 이베리아반도 일부를 점령한 것으로 판단한다. 즉 이슬람제국의 신라 영토를 고려가 흡수하였을 것이란 판단이다. 그리고 견훤으로 추정되는 Simeon I왕이 북아프리카의 Fatimid Caliphate에게 해전을 위해 도와달라는 요구와 비잔틴제국이 이를 방해했다는 기록을 보면,  이 당시에도 북아프리카는 한국사의 일부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시기 후삼국시대의 혼란 시기에 신라를 벗어나 독립세력으로 전환한 많은 지역을 다 포용 및 복속 시켰는지는 의문이다.  고려사 초기의 왕권의 약함은 이들 호족세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4대 광종 시기가 되어야 고려의 왕권이 강해짐은 이 시기를 전후로 고려가 과거 신라의 지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다.  더구나 고려는 몽골제국의 팽창으로  많은 영토를 상실하지 않았나 판단된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되지 못한 상황이다. 그러므로 지금 고려의 시대에 걸친 당항성, 당항포에 대한 계속적인 지배여부는 말할 수 없다.  단지 아래 자료를 보면 고려시대에도 계속 이어져 지배하며 조선시대에 이른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고려 영토를 짐작하게 해주는 아래 고문서 기록을 소개한다.

 

"고려의 왕건(王建)이 신라와 백제를 격파하니, 왜(倭)ㆍ탐부(耽浮)ㆍ환어라(驩於羅)ㆍ철륵(鐵勒: 발해의 철리부) 등 ​​동이(東夷)의 여러 나라(諸國)가 모두 두려워하여 고려의 속국이 되었다." 《남당서 권 18, 고려조》.

 

"최승로가 상서(上書)하여 이르기를 태조신성대왕(太祖神聖大王)께서 요하(遼河)와 패수(浿水: 고조선 때 요동의 경계)의 놀란 파도를 진정시키고, 진한(秦韓: 신라)의 옛 땅을 얻어 열아홉 해만에 천하를 통일하셨으니, 공적은 더없이 높고 덕망은 한없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발해가 거란의 군사에게 격파되자 그 나라(渤海:발해) 세자인 대광현(大光顯) 등이 우리나라가 의(義)로써 흥기하였으므로 그 나머지 수만 호의 땅을 거느리고 밤낮으로 길을 재촉하여 달려왔습니다. 이처럼 멸망한 나라를 보존해 주고 끊어진 제사를 이어가게 해 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시니, 능히 먼 곳에 있는 사람까지 와서 복속하게 만든 것입니다." 《고려사 열전, 최승로

 

10. 대하(서하)가 있던 지역

 

아래 대하(서하)의 자료에 의하면 대하의 이칭이 당항(黨무리당項목덜미항), 당올(唐兀), 서하, 만비국, 방니정국이라 한다.  그래서 대하, 서하의 위치가 당항성, 당항포를 말하는 결정적 자료가 된다. 이에 대해서 분석해 보자. 

 

1) 대하(大夏) (983/1038 – 1227) 관련 자료

 

대하에 관한 자료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이칭 : 서하(西夏), 만비국(萬秘國), 방니정국(邦泥定國) (진흙니),

당올(唐兀우뚝할 올), 당항(黨무리당項목덜미항)

 

탕구트족이 세운 나라, 몽고에 의해 멸망

 

982년 이계봉, 송에 5개주 바치며 항복

 

986년 이계철(이계봉 동생), 요나라에 투항, ‘하국공(夏國公)’에 봉해짐

 

이계철의 아들 이덕명: 1005년 송침입 격퇴 → 화의 체결,

송나라가 조()씨성 하사

 

1009년 송으로부터 서평왕(西平王)

요나라부터 하국공

 

1038년 이원호 황제 칭함

1041년 송과의 호수천(好水川) 전투, 정천(定川)전투 : 송의 대패

이원호 토번 물리침

1044 : 화의 : 송의 공물 납부

1194 : 금나라가 하국왕에 책봉

1227 : 몽고에 망함

 

자료 : 송사 하국전, 요사, 금사에 서하에 대한 기록 남아 있음

1225년 나세창, 하국세차(夏國世次), 그러나 전하지 않음

 

대하(서하)에 대한 자료 :

 

여군의 존재 : 여군 =마괴 라 불림

철요자 (전갈기병): 말과 탑승자의 갑옷을 하나로 묶음

징병제 국가 (15세이상 남자)

서하군 총수 : 50여만명

속전속결(10일내) : 10일분 식량 휴대

서하인들은 말을 잘 다루고, 굶주림과 갈증과 더위와 추위에 잘 견뎠으며, 전황이 불리하면 재빨리 후퇴하여 남은 전력 보호

 

전쟁포로 특수부대 : 금생(擒사로잡을 금, () : 10만명,

송나라 포로, 한족들, 간혹 거란족, 토번족

 

활쏘기, 말타기 뛰어난 자들 오천명 : 육반직(六班나눌반 直),

급료 :  2/

 

외인부대 : 황산에 사는 강족의 일파인 산와

                   서하인보다 월등한 용맹성, 기량 보임"

 

(자료: 대하(서하), 나무위키)

 

즉 대하는 탕구트족이 세운 나라로서, 송나라와 요나라 사이 균형외교를 하며 지냈으나, 1227년 몽고에의 의해 멸망한다. 요나라로부터는 하국공(1009)이라는 칭호를 받고, 송나라로부터는 서평왕(1009)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후에 금나라부터도 하국왕(1194)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즉 대하는 송나라, 요나라와 가까이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또한 1041년쯤에는 토번의 공격을 물리쳤다 한다. 즉 토번과도 가까이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토번은 토욕혼 보다 훨씬 강역이 넓어진 강국이었다.

 

그리고 강족의 일부인 산와를 외인부대로 두었다 한다. 즉 강족의 위치와 관련있는 것이다. 

 

2) 대하(서하)의 위치 

 

중공사학자들은 서하가 중공땅 중서부에 있는 것으로 주장한다. 그리고 강거는 중앙아시아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대하' (기원전 3세기의 대하) 위에 강거가 있다고 했다. 필자는 중국의 요나라의 역사가 신성로마제국의 역사에 숨어 있다는 글을 썼다. (https://lostcorea.tistory.com/1676 참조)  그리고 여진족인 금나라도 이 지역에 있던 것으로 판단된다. 송나라는 프랑스지역에 있던 것으로 판단된다. 송나라가 빼앗긴 연운 16주는  프랑스와 독일의 경계인 알자스로렌지역으로 추정된다. 송나라가 남송으로 이전한 곳은 이베리아 반도가 아닌가 한다.

필자는 강거지역, 즉 강족의 지역을 이베리아 반도라 추정하였다. 그리고 토욕혼은 대서양에 접한 포루투갈 북쪽지역이라 추정했다. (https://lainfos.tistory.com/57 참조)  토번은 더 번성했으니 이베리아반도 남쪽까지 진출했을 수 있다. 또한 고대 중국의 하나라는 사하라 사막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글을 썼다. (https://lainfos.tistory.com/357 참조) 월나라도 북아프리카에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대하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국가로 판단된다. 이 시기의 대하와 유사한 시기의 북아프리카에는 Fatimid Caliphate(909-1171)가 있었다. (아래 지도 참조) Fatimid Caliphate는 이베리아 반도의 Ummayard 왕조와 대립하고, Abbasid 왕조가 지배했던 북아프리카를 대체해 나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Fatimid Caliphate가 신라를 대신한 고려의 세력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후일 이에 대한 심층 연구가 있을 것이다. 

 

Evolution of Fatimid Caliphate  (source : Wikipedia)

 

그러나 위의 지도를 보면 당항포, 당항성으로 판단되는 모로코의 Tangier 지역을 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이 이칭으로 '당항'을 가진 대하(서하)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이들이 점차 세력을 넓혀 이집트까지, 레반트지역까지 확장한 것을 보면, 과거 하나라의 영광을 구현하려는 목표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고려 시대의 당항성 관련 자료가 나오는 것은 고려가 이지역을 계속 점유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니, Fatimide Calipahte가 고려의 영역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 후일 추가 연구로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또한 고려와 대하(서하)와의 관계도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 

 

 

11. 당항포 : 충무공 이순신이 쿠루시마 미치후사 부대를 물리친 전력지

 

당항성 관련 자료에 의하면, 조선시대, 충무공 이순신은 1592 6 5일 당항포로 왜선을 끌어 들여 미리 진을 치고 있던 군사들에게 왜선을 치도록 해 왜선 50여척을 침몰시켰다 한다. 만약에 당항포가 북아프리카의 Tangier지역이라면, 조선시대에도 역시 북아프리카 지역을 점하고 있었다는 결론이 된다.  아울러 임진왜란 당시 서해에서는 거의 해전이 없었는데, 당항포를 한반도의 인천이라 주장하는 식민사학자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한편 아래 지도 1580년 오스만제국의 지도에는 Tangier지역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조선의 땅이 독일까지 이르렀고, 타타르지역도 조선땅이었다는 선교사의 말을 참고하면 이보다 더 넓은 지역일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최근에 네르친스크조약에 대한 연구에서 폴란드가 오스만제국의 영지였다고 한 기록을 보았다. 즉 조선은 압록강인 론강의 우측을 차지한 것으로 사료된다. 청나라와 영토분쟁을 조정한 백두산 정계비에는 조선은 청나라와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한다고 하였다. 필자는 두만강이 북해로 흐르는 엘베강이 아닌가 추정했다. (https://lainfos.tistory.com/329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만제국이 북아프리카와 지중해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으로 표현되니, 조선의 일부로서 바다와 관련된 지역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아래 지도를 참고하나, 북아프리카지역에서는 부정확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할 수 있다. 더 아래 1683년 지도에서는 북아프리카에서 보다 서쪽으로 더 확보한 지도를 보여 준다. 

 

Ottoman Empire under Suleiman I (1580) 

 

이 시기의 유럽 해전사를 보면, 영국-네델란드 해군과 스페인해군이 Cadiz항구 근처에서 많이 싸우는 것으로 기록된다. 특히 영국의 Francis Drake가 Cadiz수군기지에서 맹활약하는 기록이 나온다. 마치 이순신장군의 기록처럼 보인다. 그러나 필자는 아직 지중해 지역에서 누가 왜이고 누가 명나라이고 하는 연구에 이르지 않았다. 단지 당시 영국은 대포가 발달하고 활을 주로 쏘았다는 기록이 있고, 왜의 조총은 네델란드에서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당시 스페인은 조총을 쓴 것으로 기억한다. 반면 스페인이 학익진을 펼쳤다는 기록도 있으니 아직 판단할 수가 없다. 영국의 Francis Drake가 이순신장군이 겪은 중간의 좌천이력도 있기는 하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수염은 빨간색이었다고 유성룡이 기록했다고 한다. 따라서 켈트족의 일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여하튼 Cadiz가 당항포의 후보가 될 수 있으나, 필자는 당항포보다는 울돌목의 가능성이 더 크지 않나 판단한다. 

 

아래 지도는 1683년의 오스만제국의 영토를 나타내는데, 북아프리카에서 서쪽으로 보다 확대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모로코의 Tangier지역은 포함되지 않고 있으며, 반면 튀니지아의 카르타고지역은 1566-1683년 기간에 확보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카르타고지역이 당항포일 수 있다는 것을 시시한다. 

 

 

Ottoman Empire at its greatest extent (1683 AD)

 

12. 결 론 

 

이상으로 당항포에 대한 위치 파악에 대한 분석을 종합하면,  북아프리카의 Tangier가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나타나며, 근대 조선의 역사에서는 스페인 서남부의 Cadiz나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지역이 당항포의 위치 후보가 된다.

 

그러나 필자는 대하(서하)의 역사와 Fatimid Caliphate역사, 그리고 장수왕 시기의 당성군 설치와 서고트왕국의 역사를 고려할 때, 모로코의 Tangier가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판단한다.  앞으로 서하의 위치파악을 위한 추가 연구가 있고, 임진왜란의 위치에 대한 추가 연구가 있은 후에는 이러한 의구심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를 얻게 될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항우와 한니발의 동일인 여부에 대한 연구가 있은 후에는 당항성, 당항포에 대해 보다 정확한 판단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