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자료/고조선 7

<펌>삼국지 읍루 - 문화원형백과

해동성국 발해 삼국지 읍루 분류 군사/외교 > 발해콘텐츠 > 관련원문보기 목차 이미지 원문 이미지 활을 잘 쏘아 사람을 쏘면 어김없이 명중시킨다. 화살에는 독약을 바르기 때문에 사람이 맞으면 모두 죽는다. 붉은 옥과 좋은 담비가죽이 산출되는데, 오늘날 이른바 읍루의 담비가 그것이다. 한대(漢代) 이래로 부여에 신속되었는데, 부여가 세금과 부역을 무겁게 물리자 황초(黃初) 연간(A.D. 220~226; 고구려 山上王 24~30)에 반란을 일으켰다. 부여에서 여러 차례 정발하였으나, 그 무리가 비록 수는 적지만 험한 산 속에 거주하는데다가, 이웃 나라 사람들이 그들의 활과 독화살을 두려워하여 끝내 굴복시키지 못하였다. 그 나라는 배를 타고 다니면서 노략질을 잘하므로 이웃 나라들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동이(東..

<펌.연어 기름 - 나무위키

연어기름 최근 수정 시각: 2023-10-27 03:21:52 동물성 식용유 식용유 [ 펼치기 · 접기 (가나다순 정렬) ] 1. 개요2. 상세 1. 개요[편집] 연어의 지방에서 얻는 기름. 2. 상세[편집] 주로 한대 지방에서 연어기름을 사용한다. 마가린이 처음 생겨났을 당시에는 연어기름으로 마가린을 만들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생선에서 얻은 기름이라 비린내가 문제되었으며, 결국 나중에 지금처럼 식물성 기름으로 만든 마가린이 보편화되면서 연어기름 마가린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연어기름 또한, 바이오디젤로 사용된 적이 있었는데, 주로 일본에서 쓰였다고 전해진다. 중국에서는 삼국시대에 화공을 위한 인화성 물질로 생선기름을 사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펌> 약수, 단군 조선의 서쪽 감숙성을 흐르는 강 - 성현식, 스카이데일리

성헌식의 대고구리 약수, 단군 조선의 서쪽 감숙성을 흐르는 강 문헌과 자료가 가리키는 약수의 위치…조선의 위치 가늠할 수 있어 성헌식 필진페이지 +입력 2019-12-14 15:15:50 ▲ 성헌식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흉노의 조상인 색정의 유배지였다가 훗날 사면돼 제후로 봉해지며 봉지로 받은 약수(弱水)는 ‘단군세기’에 “5세 대음단군 10년(B.C 1652년) 기축년 단제께서 서쪽으로 약수로 가시더니 신지 우속에게 금철 및 고유를 채취하도록 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의 서쪽에 위치했음을 알 수 있다. 약수의 대략적인 위치는 ‘수경주(水經注)’에서 몇 권(卷)에 언급돼 있는지를 검색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수경주’는 북위 때 역도원(酈道元)이 현재 중국 대륙에 있는 하수(河水=..

<펌>단기고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단기고사 (檀奇古事) 목차 정의 내용 참고문헌 고대사 문헌 719년 발해의 시조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이 탈고한 것으로 전해지는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에 대한 역사서. 연대기. 정의 719년 발해의 시조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이 탈고한 것으로 전해지는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에 대한 역사서. 연대기. 내용 원문은 발해문이었다고 하며 약 300년 뒤 황조복(皇祚福)이 한문으로 번역하였다. 현재의 국한문본은 1959년 정해박(鄭海珀)이 한문본을 다시 번역한 것이라 하나, 발해본은 물론 한문본도 오늘에 전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사료적 가치가 의문시되고 있으나, 다른 상고사서와 비교하여볼 때 그 기본틀이 다르지 않아, 면밀한 분석과 재평가가 요망되고 있는 사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저자 대야발의 서문에 이어 제1편 ..

<펌>단군세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단군세기 (檀君世記) 목차메뉴 접기 정의 내용 참고문헌 고대사 문헌 1363년 이암이 단군조선에 관해 저술한 역사서. 연대기. 정의 1363년 이암이 단군조선에 관해 저술한 역사서. 연대기. 내용 계연수(桂延壽)의 ≪환단고기 桓檀古記≫에 수록되어 있다. 일찍이 이암은 고려시대 ≪진역유기 震域遺記≫를 저술한 이명(李茗)과 ≪북부여기 北夫餘記≫의 저자 범장(范樟) 등과 더불어 경기도 양주 천보산(天寶山)에 올라갔다가 태소암(太素庵)에서 진기한 고서(古書)를 얻었다고 하는데, 이 때 얻은 고서를 읽고 이 책을 엮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은 ≪태백진훈 太白眞訓≫·≪농상집요 農桑集要≫와 함께 그가 남긴 이른바 ‘행촌삼서(杏村三書)’의 하나로 꼽힌다. 서(序)에 보면 1363년(공민왕 12) 10월 3일 강화도 ..

<펌> 약수 남쪽에 자리 잡았던 부여와 읍루 -스카이데일리 (성현식)

지난 연재에서는 열양의 욕살 색정이 유배 갔던 약수(弱水)가 흉노의 고향이 되고 감숙성을 흐르는 강이라는 사실에 대해 알아봤다. 이번에는 단군이 다스리던 조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부여의 위치에 대해 살펴보겠다. 약수의 위치를 설명하는 중국기록에 부여(夫餘)와 읍루(挹婁)에 대한 문구가 있어 우리 민족의 강역을 밝히는데 있어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에 “부여국 북쪽에 약수가 있다”와 에 “읍루국 동변에 대해가 있고 북쪽 끝이 약수다”는 문구가 그것이다. 또한

<펌>약수에 살던 흉노족 조상은 단군의 신하 - 스카이데일리

약수에 살던 흉노족 조상은 단군의 신하 단군의 신하 색정, 유배지였던 약수에서 흉노 일으켜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기사입력 2019-12-08 09:30:00 ▲성헌식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단군세기’ 3세 가륵 단군조에 언급된 예(濊)의 위치가 ‘수경주’에 의해 산서성 동남부를 흐르는 청장수 부근임이 밝혀짐으로서 그 서쪽으로 하내군 부근에 있어야 할 낙랑군의 위치까지 명백해졌다. 따라서 조선과 고구려의 중심지는 산서성 남부였고 흉노를 통해 중앙아시아를 거쳐 터키까지 다스렸다는 역사적 사실이 이해가 될 수 있다. 같은 3세 가륵 단군조에 그런 흉노에 대한 언급이 있다. 바로 “가륵 단군 6년 (B.C 2177, 갑진) 열양(列陽)의 욕살 색정(索靖)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