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영역은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2024. 1. 30. 13:07한국사/고구려

I. 머리말

지난 글에서는 '신라의 동쪽 끝은 어디인가?'에 대해서 살펴 보았다. 이번은 그동안 고구려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고구려의 영역이 어떻게 되는지 헤아려 보고자 한다. 먼저 서쪽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가 보고자 한다. 

 

II. 대서양, 북해, 발트해, 지중해 주변 지역

 

1. 고구려 초기 (고주몽 - 태조왕)

 

최근의 환단고기 내용 연구에 의하면, 고구려의 초기 북부여를 이어 받은 지역은 스웨덴 남부 지역으로 추정된다. 비서갑과 하백, 홀본과 홀본천, 그리고 송양의 비류국 등과 관련하여, 그리고 흉노의 고향 약수, 북해의 귀퉁이, 동해의 안쪽에 있는 고조선의 위치 등을 고려한 결론이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의 글을 다 열거할 수 없고, 한국사 고구려 편을 보시면 될 것이다. '해모수란 이름이 왜 북유럽에 있는가?'로부터 단순하게 시작했지만, 결론은 이쪽이라는 것이다. 최근에 다시 보게 된 아틸라제국의 지도를 보면 이 지역이 포함된 것을 확인하며 더욱 확신을 갖게되었다. 이와 관련한 여러 글 중 아래 하나를 소개한다.   6세기의 고트족 역사학자 Jordanes가 동고트족의 고향이 스칸디나비아라고 해서 과거에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이제 100% 이해가 가게 되었다. 고트족은 고구려이므로, 역시 같은 고향을 말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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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여를 계승한 고주몽이 고구려를 개국한 홀본지역은 어디인가?

부제 : 송양의 비류국과 비류수는 어디에 있었나? I. 머리말 필자는 송양의 비류국이 프랑스의 Vienne지방이 아닌가 했다. 그런데, 아래 청회수님의 비디오(7분 06초 화면)에서 삼국사기에 송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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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또한 고구려 유리왕시 황룡국이 독일 서북쪽이라는 아래 글을 썼었다. 역시 위의 내용과 궤를 같이 한 것이다. 즉 고구려 초기부터 이 지역에서 활동한 것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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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유리왕시 황룡국은 독일 서북쪽 Cherusci에 있었다

고구려 유리왕 시기 해명태자와 관련한 황룡국도 백두산 근처 10개국의 하나라고 했다. 이제 황룡국의 위치를 추정해 보자 황룡국에 대한 국내 자료는 다음과 같다. 즉 고구려의 유리왕 시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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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고구려는 태조왕 시기 백두산 주위 10개국 중 조나국, 주나국을 합병했다. 이와 관련한 아래 글도 이러한 맥락과 궤를 같이 하는 글로서, 그 의미가 더 크다고 하겠다. 즉 고구려는 초기부터,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 덴마크지역을 포함하고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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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주위 10국의 하나인 조나(藻那)국은 북유럽의 Jutland인가?

백두산 주위 10국의 하나로서 조나(藻那)국이 있다. 이 조나(藻那)국에 대한 자료를 보면 아래와 같다. 글자 조(藻)의 뜻풀이는 마름 조이다. 마름은 바늘꽃과에 속하는 한해살이 수초이다.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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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중천왕 시기 서해 및 에게해

 

필자는 고트족이 고구려라는 글을 오래 전에 썼었다. (아래 글 참조) 당시 고구려의 중천왕, 서천왕, 동천왕 시기와 고트족의 로마제국과의 Gothic War 기록을 대조해 가며, 이를 헤아린 바 있다. 고트족에 관한 기록도 로마와 싸운 시기에만 존재한다. 따라서 Cniva 고트족왕 시기의 활동이 주로   나타나는 바, 중천왕 재위시기와 일치한다. 

 

https://lostcorea.tistory.com/1265

 

고트족은 고구려이다 (1)

고구려에 대한 역사 자료는 매우 부실하다. 삼국사기 자료를 보면 어떤 때는 헛웃음이 나온다. 이는 우선 삼국사기의 편자 김부식의 과오가 크다.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고려에서 신라를 더 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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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글에서 주목되는 내용은 중천왕 시기 질투가 심한 관나부인을 서해 바다에 수장했다는 아래 기록이다. 그리고 중천왕 시기 에게해에서 싸운 Cniva 고트족왕의 전장터를 고려할 때, 이 시기의 서해는 대서양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고구려 초기 위의 관련을 고려하면 당연히 추정되는 무리 없는 내용이다.  

"251년 왕비 연씨와 더불어 왕의 총애를 다투던 관나부인(貫那夫人)의 투기가 심해 서해바다에 수장하였다 (고구려, 중천왕,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또한 상기 내용 중, 중천왕 시기에,  259년 위의 침입을 막아내고 오히려 대승을 거두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중천왕 시기의 고구려 군사력이 매우 강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즉 중천왕 시기 고트족의 Cniva왕처럼 강력한 군사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Cniva Gothic King War 267-269 against Roman Empire (source : Wikipedia)

 

3. 광개토태왕 시기 

 

광개토태왕 시기 고구려는 왕성한 정복 전쟁을 수행했다. 그러나 한반도에 국한하여 추정하는 국내 식민사학자들 때문에, 그 활동이 한반도에 국한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광개토태왕 비문이 전해져, 그 면목을 알 수 있는 것은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필자는 광개토태왕 비도 동아시아로 옮겨진 것이 아닌가 판단한다. 정체를 잘 알 수 없는 일제의 역사적 만행일 수 있는 것이다. 

 

광개토태왕은 비문에 나오기를, 태왕은 토욕혼을 정벌했다고 기록되었다. 필자는 토욕혼이 지금의 중공 서부 티베트가 아니라 대서양에 접한 토욕혼이라고 추정했다. (아래 글 참조). 이는 토욕혼의 왕에게 북위의 효문제가 '서해 개국공'이라는 직을 주었기 때문이다. 중공에는 서해가 없다. 따라서 지금의 중공 지역은 중국 역사의 지역이 아니다. 필자는 이에 대해서도 여러 글을 썼다. 지금도 위키피디아에는 중공사학자들이 동원되어 역사를 조작하는 글을 계속 쓰고 있는데,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각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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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욕혼은 대서양변 포루투갈에 있었던 Suebi왕국이다

부제 : 선비족은 중부유럽에 있었던 Suebi족이다. 필자는 그동안 진(秦), 한(漢), 북위 등의 중국(衆國)이 론강인 요수 서쪽에 있는 나라로 추정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선비족이 세운 수나라, 당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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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토욕혼지역인 포루투갈에는 '사조성'이라는 고구려 성곽 모습의 성이 있는데, 이 사조성이 광개토태왕 비문에 나타나니, 토욕혼 지역을 정벌한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아래 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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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 비문을 통한 정벌지역 추정 (updated)

광개토태왕 비문을 보면 광개토태왕이 공취한 성이름이 나온다. 특히 백제구역에서 공취한 성이름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수묘인제도에 나오는 수묘인 출신지 성(城)이름과 지역이름도 광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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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광개토태왕 비문에는 '가루성'이 등장하는데, 아래 아일랜드의 Carlow Castle을 음차한 성곽명이 아닌가 한다. 아일랜드까지 진출한 것으로 고려하면, 당시 고구려는 수군이 강력한 활동을 하며, 발트해, 북해, 대서양 등을 누빈 것으로 추정된다. 

Carlow Castle (가루성) in Ireland (source : Wikipedia)

 

아래 포루투갈의 리스본에 있는 사조성 그림이다. 이름도 Sae Jorge로서 유사하다. 즉 토욕혼 지역을 정벌한 흔적으로 보인다. 

Sao Jorge Castle (사조성)  in Lisbon, Portugal (source : Wikipedia)

 

아래 프랑스의 카르카손 성곽 모습은 전형적인 고구려 성곽 모습이다. 이것도 4세기에 지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4세기면 광개토태왕 시기 초기이거나 그 이전이다. 즉 이러한 역사적 유적 사진은 고구려의 활동영역을 말해 주고 있다. 이 지역은 또한 고구려인 서고트왕국의 지역이었으므로, 더욱 고구려의 신빙성을 더해 주고 있다. 

 

Carcassone city wall in France (source : Wikipedia)

 

 

4. 장수왕시기

 

장수왕 시기는 고구려의 영토가 많이 확장된 시기이다. 그 유명한 훈족의 아틸라가 활동한 시기이기도 하다. 필자는 아틸라가 장수왕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물론 시기적으로 광개토태왕도 아니다. 아틸라는 장수왕 시기에 서쪽지역을 담당한 왕이 아닌가 한다. 아래 지도와 글은 아틸라가 지금의 프랑스지역에서 전투한 내용이다. 필자는 이것이 북연의 풍홍을 제거한 장수왕 시기의 사건이 아닌가 한다. 필자는 요수가 프랑스의 론강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므로 북연과 북위는 론강의 서쪽에 위치한다. 실제 이와 관련한 글도 많이 썼다. 필자의 중국사에 관련된 글을 참조 하시면 한다. 

https://lostcorea.tistory.com/1525

 

고구려 장수왕이 공격한 풍홍의 북연은 프랑스 Gaul지역에 있었다

장수왕은 436년 북연의 수도 화룡성을 공격하고 북연의 왕 풍홍을 고구려로 데려 왔다 한다. 고구려에 적대적인 후연을 광개토태왕이 멸망 시키고, 후연에 이은 북연이 생길 때에 광개토태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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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ila in Gaul in 451 AD (source : Wikipedia)

 

아래 지도는 아틸라 제국 시기의 최대영역을 표시한 것이다. 그러므로 장수왕 시기의 고구려의 영역을 어느 정도 나타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 덴마크, 남부 스웨덴 등이 포함된 것이 주목된다. 이는 필자의 본 글 처음에 언급한 내용들을 뒷받침해준다고 판단한다. 

 

 

Attila제국의 최대 영토 (453년)

 

또한 상기 지도는 아틸라제국이 프랑크제국과 맞닿아 있는데 이는 요수가 프랑스의 론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동부로 흑해 위 지역을 포함한 서부 러시아까지 넓게 포함하고 있다. 필자는 이 지역이 고구려의 영역이라는 것을 최근의 환단고기 내용 이후로 많이 알게 되었다. 발해, 고려로 이어지는 지역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후 다시 언급할 것이다. 

 

5. 문자왕 시기

 

장수왕을 이은 문자왕 시기에 아래 지도에서 보는 바와 같은 고트족의 영역이 더해진다. 고구려 장수왕 시기 말기에 신라의 10성을 확보했다 하는데, 필자는 이것이 이태리 반도의 신라를 확보한 것으로 본다. 서양사에서는 Odoacaer가 서로마제국을 망하게 했다 하는데, 필자는 이태리반도의 신라를 Odoacaer가 확보하고, 한성백제는 프랑스의 일부와 이베리아반도에 해당하는데, 장수왕 시기 475년 이를 확보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이곳은 서양사에서는 서고트왕국이라 칭했다. (필자는 아래 글에서 서고트왕국을 북위이며 고구려라 추정했으나, 북위는 아니고 고구려로 판단된다). 훈족과 고트족으로 이원화 하여, 같은 고구려의 역사를 감추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필자는 오도아캐르가 백제의 장수였다가 고구려로 망명한 사람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서양사에서는 오도아캐르가 이태리왕국을 세웠으나 문자왕으로 추정되는 Theodoric the Great 동고트왕에게 암살 당했다고 기록한다. 고구려가 독자적 행동 하려는 백제 장수 출신의 장수를 제거한 것인지도 모른다. 

 

Empire of Theodoric the Great (Goth King) in 523 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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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와 이베리아반도에 있었던 서고트왕국은 고구려이다

부제 1: 고트족은 훈족이다 부제 2: 서고트왕국은 북위이다. 부제 3: 서고트왕국은 고구려이다. 그동안 필자는 북위가 프랑스 Gaul 지역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북연은 북위의 북쪽에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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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pire of Theodoric the Great (Goth King) in 523 AD

 

북아프리카와 코르시카섬, 샤르데냐섬은 반달족의 차지로 표시되는데, 이러한 반달족의 정복에는 Alans, Goths  모두 참여 하였기 때문에, 실질적인 고구려 세력으로 보인다. 반달족은 광개토태왕 시기 서진할 때부터 고구려와 같이 행동했었다. 그리고 반달족이 이태리반도를 공격할 시기에, 신라에서는 왜의 침입이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북아프리카지역을 필자는 왜의 세력 지역으로 추정했다. 물론 일부는 가야세력이 있었다. 

 

III.중동부유럽, 아나톨리아

 

1. 광개토태왕 시기

 

광개토태왕은 서양사에서는 훈족의 을딘, 고트족의 Alaric I왕으로 나타난다. 같은 인물을 두 형태로 묘사한 것 같다. 시기도 매우 유사하다. 고트족왕 Alaric I왕은 로마로 입성하는데, 왜와 백제에 시달리는 신라를 도와 주기 위해,  온 것으로 판단된다. 서양사에서는 왜 Alaric I왕이 이태리반도에 진입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기록한다. 그리고 Alaric I왕은 시실리섬까지 진격하고,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 식량을 조달하러 아들을 보냈으나 실패했다고, 서양사에서는 말하고 있으나, 필자는 이것이 왜의 임나성인 시실리섬을  공격하고, 카르타고의 가라성을 공격한 것으로 해석한다. 가라성은 왜가 아닌 가야로 해석된다. (필자가 과거 글에서 가라성을 샤르데냐섬의 성으로 추정한 것을 정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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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광개토태왕은 로마를 정벌한 훈족과 고트족의 일원인가?

서 론 그동안 필자는 최근의 글, '고트족은 고구려이다(1)'를 위시하여, '로마제국은 백제이다', '사산왕조 페르시아는 신라이다' 등의 글에서, 로마제국, 특히 비잔틴제국은 백제이다는 주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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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광개토태왕은 로마제국을 정벌했는가?

지난 글에서 우리는 고구려 광개토태왕과 훈족의 을딘, 고트족의 Alaric I이 유사하다는 것을 개인적인 자료, 왕조사를 비교하며 알아 보았다. 이 글에서는 지난 글에 이어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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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din the Huns 401 AD

 

광개토태왕 비문에 고립반성을 정벌했다 하는데, 이 고립반성은 아래 그림의 Golubac castle으로 추정된다. 이 성은 세르비아의 다뉴브강의 전략적인 위치에 있다. 즉 당시 고구려는 강을 따라 수군의 활동도 왕성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의 성곽은 해상의 전략적인 위치에 성을 세우는 모습을 많이 본다. 즉 수군의 활동에 전략적인 위치에 성곽을 많이 세운 것으로 판단된다. 아래 그림의 튀르키예 보스포러스 해협에 있는 루매성도 마찬가지이다. 광개토태왕 비문에는 루매성으로 기록되었고, 튀르키예에는 Rumeli Hissari라 하는데, Hissari는 성이란 단어라 한다. 즉 Rumeli가 루매로 거의 같은 음이다. 

 

Golubac Castle (고립반성) in Danube river, Serbia (source: Wikipedia)

 

Rumeli Hissari Castle (루매성) in Turkey (source : Wikipedia)

 

서양사에서는 흑해위의 지역에 있던 훈족이 서진하면서,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 있었다고 기술한다. 즉 훈족이 동쪽에서 서진한 것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필자가 판단하기에는 다르다. 즉 고구려는 이미 요수인 프랑스의 론강 우측(=요동)에 이전부터 있었으며, 이전에 동천왕 시기 또는 어느 시기에 동쪽으로 밀려 났다가 다시 회복하였으며, 광개토태왕 시기에 남쪽의 백제 (한성백제, 위례성백제)와 신라를 압박한 것이 서양사의 로마제국 침입으로 묘사된 것으로 추정한다. 필자는 로마제국이 백제, 신라, 중국을 합성한 것으로 추정한다. (아래 4개의 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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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漢)나라와 조선의 경계인 패수는 독일의 라인강인가?

제목 : 한(漢)나라와 조선의 경계가 되는 패수(浿水)는 독일의 라인강(Rhine River)인가? 우리는 패수에 대해 여러 기록이 있음을 안다. 그 중에서도 한나라와 조선 (위만조선)과 관련된 기록을 살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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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수는 패수인 라인강의 지류 Saar river이다

필자는 이미 라인강을 패수라 추정했다. 따라서 살수는 패수의 지류라고 밝혀진 바 라인강의 지류에서 찾아야 한다. 그동안 살수를 찾지 못해 여러 가지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신성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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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one River가 요수라는 주장의 근거

1. 론강(요수)은 압록수이다. 다른 강에 비해 유난히 파랗다. 그래서 압록수이다. The Rhône river 2. 론강(요수)은 3개의 강들이 만난다. 손강(Saune river)과 이제르강(Isere river)이 합쳐진다. 그외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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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로 천리나 펼쳐 있는 태백산(장백산, 백두산)은 알프스산맥에 있다

필자는 그동안 론강이 압록수 즉 요수라 추정했다. 그리고 압록수에 가까운 백두산은 몽블랑산이 아닌가 했다. 오늘은 이 백두산=태백산=백산=장백산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해 보고자 한다. 이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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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흑해 위, 발트3국, 서부 러시아지역

 

필자는 최근 스웨덴 남부의 고트족을 살펴 보면서, 고구려 3대 왕 대무신왕 시기 복속 받은 구다국이 지금의 에스토니아 지역이 아닌가 추정했다. (아래 글 참조) 즉 고구려 초기부터 이 지역에 있었다는 추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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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대무신왕이 복속 받은 구다국은 어디인가?

1. 머리말 필자는 요즈음 환단고기 내용을 분석하며, 얻은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그동안 필자의 한국사 추정지인 유럽이 더 확실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환단고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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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트족의 알렉산더라 불리는 Ermanaric(재위 : 296-376)왕은 훈족의 침입에 자살했다고 위키피디아는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뭔가 수상하다. 이 시기는 고구려 고국원왕(재위 331-371)시기인데, 훈족과 고트족이 모두 고구려라는 필자의 판단에 의하면, Ermanaric왕 시기의 영역은 고구려의 그것으로 추정된다. 아래 지도를 보면 그 영역이 나타나는데, 흑해 위, 서부 러시아, 발트해까지 광범한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자료에 의하면 우랄산맥지역까지 포함했다고 한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것은 이후 아틸라제국도 이러한 영역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고구려가 이 광범한 지역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 난다. 

 

로마제국과 Ermanaric 고트족왕의 영역 지도 

 

아래 지도를 보면, 고트족의 로마제국에의 침입은 이미 소수림왕 시기 (371-384)부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위의 고국원왕 시기의 Ermanaric왕에 이은 시기의 고트족 활동이다. 이어서, 광개토태왕 시기의 훈족 이동, 장수왕 시기 아틸라 훈족의 이동을 감안하면, 흑해위 지역, 발트해 지역, 서부러시아지역은 계속된 고구려의 영역으로 판단된다. 아래의 아틸라제국의 영토를 보면 매우 확연하게 알 수 있다. 

 

Invasions of Roman Empire by Goths, Huns, Vadals, (source : Wikipedia)

 

또한 필자는 고구려 장수왕 시기 유연과 함께 분할 지배하려던 지두우가 서부 러시아 북쪽이 아닌가 추정했다. (아래 글 참조) 이는 위의 추정과 궤도를 같이 하는 추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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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장수왕이 유연과 함께 분할지배하려던 지두우는 어디인가?(수정본)

그동안 필자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3국의 역사의 무대가 유럽과 페르시아에 걸쳐 있었다고 주장해 왔다. 이번에는 유연과 함께 지두우를 도모한 고구려 장수왕 시기의 역사를 통해 다시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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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아틸라제국의 영역이 남부 스웨덴, 덴마크, 발틱해변, 서부러시아 및 흑해위 지역, 후일 볼가불가리아 지역까지 모두 포함한 것을 주목하자. 필자가 주장했던 한국사의 지역이 모두 포함된 것을 알 수 있다. 

 

Attila Empire in 453 AD

 

필자는 또한  Old Great Bulgaria (632-668)가 고구려의 말기 역사의 일부라고 추정했다. (아래 글 참조) 즉 고구려의 역사가 흑해위 지역에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는 것이다. 

 

https://lostcorea.tistory.com/1645

 

흑해 위 Old Great Bulgaria(632-668)는 고구려 말기 역사의 일부이다

흑해위 지역에는 AD 632년부터 불가리아가 나타난다. Old Grea Bulgaria, Kara Bulgar, Volga Bulgaria 등이 그것이다. 서양사에서는 Huns, 즉 훈족과 Bulgars, 즉 부여족을 아시아에서 온 부족으로 판단한다.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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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지도는 Old Great Bulgaria가 668년 망한 후의 이동 상황을 그린 지도인데, 필자는 이 러한 이동으로 묘사한 것은 고구려 멸망 후 발해가 동쪽으로 이동한 상황을 역으로 그린 것이 아닌가 한다. 서양사에서 Bulgars는 부여족으로 고구려, 백제가 이들의 후손이다. Bulgars, Huns, Goths 족은 유럽에 진출한, Tengrism(단군 사상)을 믿는 고구려 역사의 일부가 아닌가 한다. 

 

Old Great Bulgaria and migration of Bulgars

 

 

V. 인도 유역

 

이제 보다 동쪽으로 이동하여 중앙아시아, 인도 등을 살펴 보자.

인도는 고조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역으로 보인다.  산스크리트어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자료에서도 그렇다. 인도 동북부에 있는 보드가야 사찰에서는 Mangla-Gauri, Lama-Sila, Shrine-sthan를 숭배 대상으로 하고 있다. 막라지역은 인도 서북부 파키스탄에 있는 지역으로 여기에 고구려의 성곽모습이 남아 있다. 막라가 고구려  4대, 대무신왕의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즉 파키스탄의 카시미르, 펀잡지역에 있는, 막라지역의 아래 고구려 성곽 모습은 고구려가 이 지역까지 진출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지금은 대부분의 지역을 댐공사로 인하여 모두 물에 잠겨 있어 매우 큰 아쉬움을 준다. 역사 감추기의 일환일 지 모른다. 

 

Mangla Fort in Kashimir (Punjab) in Pakistan (source : Wikipedia)"

(자료 : 필자의 글, '춤으로 본 조상들의 활동 영역' 일부 인용)

 

아래 인도의 어디에 있는 4세기에 지은 성곽모습은 프랑스의 카르카손 성곽과 똑깥다. 그리고 역시 4세기에 지은 것이다. 광개토태왕 시기 지은 성이 아닌가 한다. 

 

Castle in India, 4 c built

 

 

VI. 중앙아시아 유역

 

필자는 '춤으로 본 조상들의 활동 영역'이란 글에서 인도 서북부 지역에서 고구려의 호선무 춤이 이 지역의 집시 춤으로 남아 있는 것을 거론하면서, 이 지역이 고구려의 지역이었을 수 있다는 것을 추정했다. (아래 글 참조)

 

https://lostcorea.tistory.com/1034

 

춤으로 살펴 본 조상들의 활동 영역

제목 : 춤으로 살펴 본 조상들의 활동 영역 그동안 필자는 고구려의 역사가 중앙아시아를 넘어 로마까지 진출했다고 주장했다. 훈족의 유럽진출 역사가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그것으로 추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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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추정은 중앙아시아에서 튀르크족의 역사가 고구려의 역사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는 Gokturk의 역사가 돌궐의 역사가 아니라 고구려의 역사가 아닌가 추정했다. 실제 아래 아프카니스탄의 카불에 있는 성곽 모습은 고구려의 성곽 모습을 하고 있다. 

Bala Hissar Castle (in 1879) in Kabul, Afghanistan (source : Wikipedia)

 

특히 이 성곽에 대한 위키피디아 아래 자료를 보면 이 성곽의 연대는 5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기록한다. 이 시기는 광개토태왕, 장수왕 시기이다. 광개토태왕은 동쪽으로 가서 6개의 성을 쌓았다 기록되어 있다. 

"The origins of the Bala Hissar fortress are obscure. Pre-Kushan pottery as well as Indo-Greek and Achaemenid coins have been recovered in its vicinity, indicating settlements in the area from at least the 6th century CE. Usage of the site as a citadel has been dated to a period as early as the 5th century; however, minimal evidence exists regarding its precise history.[2][3] " (source : Bala Hissar,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티스토리 블로그(lostcrea), 카테고리, 고구려)

 

VII. 동아시아지역의 고구려 성곽 모습

 

동아시아에는 고구려 고분벽화를 떠나서도 중공북부지역에 아래와 같은 고구려 성곽모습이 있다. 특히 아래 감숙성에 있는 용태(Yongtai)지역의 성곽모습은 전형적인 고구려 성곽모습이다. 이외에도 더 있을 법한데, 중공의 역사 감추기로 인해 더욱 파괴되고 숨겨졌을 수 있다고 본다. 

 

Ancient castle in North China

 

Turtle shaped Yongtai (용태) ancient city in Gansu (감숙성), China

 

 

VIII. 훈족의 활동 지역

 

이상의 유라시아에 걸친 고구려의 활동은 아래 훈족의 활동 영역이라는 지도에서 나타난다고 본다. 누가 어떤 근거로 이런 지도를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서양사가들은 훈족의 역사에 매우 인색한 입장인 것을 고려하면, 그들도 훈족의 역사가 동아시아까지 퍼져 있다는 지도를 그린 것은 어쩌면 알면서 감추고자 하는 마음을 드러낸 것은 아닌가 한다. 

 

Eurasian Steppe Huns Belt (source : Wikipedia)

 

IX. Gokturk의 영역

 

Gokturk의 영역도 유라시아에 걸친 고구려의 모습을 살필 수 있다고 필자는 추정한다. 7-8세기에 걸쳐 서쪽에 동쪽으로 이동한 Turkic Khaganate 모습은 고구려가 멸망후 동쪽으로 이동한 모습이 아닌가 하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아울러 Turk족이 고구려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Gokturk가 돌궐이 아니라 고구려라는 필자의 이런 생각을 뒷받침하는 논문을 한국분이 썼다는 것이 위키피디아에 기록되었다. (아래 인용자료 참조)

 

https://lainfos.tistory.com/181

 

Gokturk (고(高)씨 튀르크 ?)는 고구려인가?

1. 서 론 본 글에서는 'Gokturk (중공 사학자들은 돌궐이라 주장)가 고구려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검토해 보고자 한다. 필자는 페르시아가 신라라 추정했다. 그런데 7세기에 백제와 신라, 고구려와

lainfos.tistory.com

 

Gokturk 영역 (본홍색 : 서튀르크카칸국, 청색 : 동튀르크카칸국)(자료 : 위키피디아)

 

"필자는 Gokturk를 돌궐이 아닌 고구려라 추정했는데 (아래 글 참조), 이에 대해 논문을 쓴  한국인이 있었다. Gokturk와 고구려를 비교하며, Gokturk가 고구려와 비슷하다는 내용이라 한다. (아래 자료 참조)

 

"Many historians also point out a close non-linguistic relationship between Turkic peoples and Koreans.[57] Especially close were the relations between the Göktürks and Goguryeo.[58] "

[출처] <펌>Turkic languages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lainfos), 카케고리, 튀르크어)

 

주 57.  Babayar, Gaybullah (2004). "On the ancient relations between the Turkic and Korean peoples" (PDF). Journal of Turkic Civilization Studies (1): 151–155. Archived from the original (PDF) on 13 July 2019. Retrieved 24 April 2019.

58. Tae-Don, Noh (2016). "Relations between ancient Korea and Turkey: An examination of contacts between Koguryŏ and the Turkic Khaganate"Seoul Journal of Korean Studies. 29 (2): 361–369. doi:10.1353/seo.2016.0017hdl:10371/164838ISSN 2331-4826S2CID 151445857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4 April 2019. Retrieved 24 April 2019."

(출처: https://paulcgpark.tistory.com/94 [죽엽 단상:티스토리])

 

 

X. Turkic languages distribution map

 

Gokturk가 고구려라는 판단에 Turkic languages에 대해 관심을 가져 보았다. 한국어, 일본어, 몽골어 모두 튀르크어계통이며, 유사하다고 한다. 현재의 튀르크어 지도를 보니 중앙아시아에 주로 분포되어 있다. (아래 지도 참조) 즉 중앙아시아가 고구려의 영역이 아닌가 하는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지도이다. 

 

Turkic languages distribution map (source : Wikipedia)

 

그런데 튀르크어에 대한 설명에서 주목할 만한 내용이 있다. 튀르크어 계통의 몽골어, 한국어, 일본어 등이 튀르크어와 같은 계열인데, 몽골어가 튀르크어에서 차용한 단어가, 튀르크어가 몽골어에서 차용한 단어보다 많다는 것이다. (아래 자료 참조) 이말의 뜻은 튀르크족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했다는 의미이다. 필자는 스웨덴 남부에서 홀본, 홀본천이 있다고 추정했다. 즉 고구려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했다는 의미가 된다. Gokturk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한 역사를 보여주는 것과 같은 방향이다. 이는 현재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고구려에 대해, 훈족에 대해 평가하는 것과는 반대의 방향이 된다.  기원전 1000년대에는 어떤 방향으로 이동하여 서로 교류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인도 유럽어는 BC 4000년대, 흑해위지역,  코카서스에서 출발하여 동서 양쪽으로 펴져 나갔다고 함 : Kurgan Hypothesis, 아래 지도 참조), 고구려의 시기가 시작되는 시기에는 그렇다는 것이다. 

 

"Some lexical and extensive typological similarities between Turkic and the nearby Tungusic and Mongolic families, as well as the Korean and Japonic families has in more recent years been instead attributed to prehistoric contact amongst the group, sometimes referred to as the Northeast Asian sprachbund. A more recent (circa first millennium BC) contact between "core Altaic" (Turkic, Mongolic, and Tungusic) is distinguished from this, due to the existence of definitive common words that appear to have been mostly borrowed from Turkic into Mongolic, and later from Mongolic into Tungusic, as Turkic borrowings into Mongolic significantly outnumber Mongolic borrowings into Turkic, and Turkic and Tungusic do not share any words that do not also exist in Mongolic."

(source: Turkic languages,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카테고리, 튀르크어)

 

 

Scheme of Indo-European language dispersals from c. 4000 to 1000 BC according to the Kurgan hypothesis. Center: Steppe cultures   1: Anatolian languages (archaic PIE)   2: Afanasievo culture (early PIE)   3: Yamnaya culture expansion (Pontic-Caspian steppe, Danube Valley) (late PIE)   4A: Western Corded Ware   4B: Bell Beaker culture (adopted by Indo-European speakers)   4C: Bell Beaker   5A-B: Eastern Corded ware; 5C: Sintashta culture (proto-Indo-Iranian)   6: Andronovo   7: Indo-Aryans (A: Mittani; B: India)   8: Greek   9: Iranian   Proto-Balto-Slavic Not drawn: Armenian, expanding from western steppe (source : Wikipedia)

 

XI. 그외 아메리카 지역의 가능성 

 

필자는 북아메리카 부상국에 '대대로'란 고구려 직명이 있었다는 재야사학가들의 언급에서 북아메리카까지 고구려가 진출했었을 수 있다고 본다. 물론 강력한 수군활동에 힘입어 가능했을 것이다. 필자는 '상나라의 동방행은 어디까지인가?'라는 글에서 멕시코까지 상나라가 진출했었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아래 글 참조)

https://lostcorea.tistory.com/1278

 

상나라의 동방행은 어디까지인가?

다음 블로그의 글 ' 하나라, 상(은)나라, 주나라는 어디에 있었는가?' 및 '상나라의 수도 '박'은 이라크의 바그다드인가?'에서 필자는 상나라가 이집트 및 이란 이라크지역의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lostcorea.tistory.com

 

심지어 미국의 스미소니언 박물관 고고학자도 상나라의 아메리카진출(멕시코의 을멕문명)을 주장하고, 중공의 학자도 이를 주장한다. 상나라, 은나라는 중국의 한 나라이지만, 이들의 후예가 부여라는 것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백의 민족도 여기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중남미 재야 사학자 손성태 교수님의 주장에 의하면, 8세기에 맥족이 멕시코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이 시기는 고구려가 망한 후이다. 즉 고구려 유민이 바다를 건너 멕시코 지역에 도달했거나, 북아메리카에서 멕시코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이다. 

 

XII. 맺는말

 

이상으로 살펴 본 바에 의하면, 고구려의 영역은 서유럽의 대서양에서 동아시아의 태평양까지 유라시아 대륙을 걸쳐 활동한 것을 추정할 수 있으며, 나아가 북중미까지 진출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에 대한 자료가 뒷받침되고 있다.  지난 글 '신라의 동쪽 끝은 어디인가?'와 유사한 결론이 나는 것이다. 따라서 더욱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이는 또한 앞으로 '백제의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에 대한 글을 써보고자 하는 욕구를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