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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불루 단군은 북유럽지역에서 활동했나?

I. 서 론 https://lostcorea.tistory.com/1937 유럽에서의 훈족할동은 적어도 기원전 12세기이다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역사 지식은 훈족이 AD 4-5세기 유럽에 진출하여 게르만민족의 대이동을 촉발했다고 알고 있다. 과연 그럴까? 필자는 이에 대해 몇몇 글에서 이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lostcorea.tistory.com 얼마 전 상기 글을 쓰면서 훈족의 Humblus가, 기원전 1200년경, 단군조선의 단군이 된 색족의 색불루가 아닌가 하는 추정을 하였다. 본 글에서는 이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분석을 해 보고자 한다. II. 색불루 단군의 역사 (환단고기) 필자는 이미 환단고기의 일부 내용에 대한 검토를 통해 삼한의 위치에 대해 추정한 바 있다. (필자의 아래 ..

한국사/공통 2026.02.17

중국 사서에 의하면 마한은 한반도에 없었다.

중국 사서 후한서 동이전 한조에 마한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나온다. 그런데 그 설명을 보면 한반도에 마한을 상정하는 제도권 반도사학자나, 한단고기를 전하는 재야사학자나 모두 한반도에 마한을 설정하고 있는 것이 이해가 안간다. https://lostcorea.tistory.com/1923 사서를 근거로 추정해 본 유럽의 마한 위치 추정I. 머리말 필자는 오래 전부터 유럽에서의 한국사를 주장해 왔다. 그러나 아직도 그런 사관에 대한 검토를 계속하는 중이다. 워낙 기존의 사관과 다르고, 서양의 역사관과도 다른 추정이기에 계lostcorea.tistory.com 후한서 동이전 한조에 나오는 마한의 묘사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그런데 이들 조건을 만족 시키는 지역은 한반도가 아니라 대서양에 접한 서유..

한국사/공통 2026.01.29

삼국사기 내용과 다른 한반도 지형과 지리

https://lainfos.tistory.com/525 한반도 지형은 한국사와 일치하지 않는다.I. 머리말 필자는 한국사가 동아시아의 역사라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해왔다. 이는 단순히 '환빠'라 불리는 환단고기의 기록을 믿는 것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고구려 광개토태lainfos.tistory.com 상기 글에 이어진 글입니다. 16) 낙랑과 대방 지역 광개토태왕의 비문에서 대방지역에서 왜와 싸운 이야기가 나온다. " 제위 14년 갑진년(403년?)에 왜가 국법을 어기고 대방계(帶方界)에 침입하니 태왕은 병사를 인솔하고 석성도(石城島)에서 배를 띄워 빠르게 바다를 건너서 대방에 도착하니 왜는 도망을 치는데 구만성(句滿城)까지 뒤를 쫓아 서로 마주치니 왕은 겁을 주고 요새에 몰아 넣고 ..

한국사/공통 2026.01.27

한반도 지형은 한국사와 일치하지 않는다.

I. 머리말 필자는 한국사가 동아시아의 역사라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해왔다. 이는 단순히 '환빠'라 불리는 환단고기의 기록을 믿는 것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고구려 광개토태왕비문의 기록에서 나오는 여러 기록들이 동아시아에서 나올 수 있는 기록들이 아닌 것에서 회의를 가지기 시작했다. 또한 서유럽에서 훈족의 역사가 있었고 5세기에 그들은 대제국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들이 누구인가? 독일방송에서는 그들이 동쪽의 한국에서 온 것 같다는 ZDF의 방송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본격적으로 파헤치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다. 이때만 해도 경주의 다보탑 석가탑이 신라의 그것인양 믿고 있었고, 석굴암은 인도의 영향을 받은 신라의 그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포석정이 경주의 어느 조그만 연못이라고 교과서에서 배..

한국사/공통 2026.01.17

광개토태왕이 공취한 아단성은 튀르키예의 Adana province에 있었다

I. 서 론 필자는 광개토태왕이 공취한 백제의 아단성을 찾고자 상당히 오래 전부터 고민을 해왔는데, 본 글에서 그 본질을 파악하고자 특별히 더 자세히 살펴 보자. 지난 책계왕 시기의 아단성 추정 글에서 살펴 보았듯이, 아래 3가지 점이 이러한 추정의 지역을 좁히는 계기가 되었다. 첫째는 한국사에서 아단성과 관련하여, 백제, 고구려, 신라에서 언급되었다는 것이다. 백제의 책계왕 시기 286년 아단성을 중수하였고, 광개토태왕의 백제성 중 공취한 것중의 하나인 것은 물론이고, 고구려 장수왕 시기 476년 아단성을 중수하였다고 하는 기록과, 고구려 평안왕 말 시기 590년에 온달장군이 신라군과 아단성 전투에서 활에 맞아 죽었다는 기록이다. 이러한 기록은 아단성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접경 근처에 있는 것이 ..

한국사/고구려 2025.11.21

백제가 말갈과 싸운 지역인 곤미천, 청목산은 웨일즈에 있었다.

I. 서 론 필자는 각미성은 사방이 바닷물과 절벽으로 되어 있는 섬에 있다는 서술에 기인하여 웨일즈의 Holy Island에 있는 Gybi Fort라 했다. (아래 글 참조) https://paulcgpark.tistory.com/111 드디어 각미성을 찾았다I. 머리말 그동안 고구려 광개토태왕이 백제의 각미성(광개토태왕 비문 속의 이름)(관미성:삼국사기 속의 이름)이 어디인지 궁금하였는데, 최근 광개토태왕이 점령한 성들의 위치를 찾는 과정에paulcgpark.tistory.com 또한 이 근처 Gwynedd지역에 있는 Segontium Fort가 수곡성이라 추정했다. (아래 글 참조) https://blog.naver.com/lainfos/223966161009 광개토왕 시기 고구려와 백제의 전투지역..

한국사/백제 2025.08.18

<펌>말갈이 북쪽 국경을 침입하다 ( 기원전 9년 10월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삼국사기>

말갈이 북쪽 국경을 침입하다 ( 기원전 9년 10월 ) 〔10년(B.C. 9)〕 겨울 10월에 말갈이 북쪽 경계를 노략질하였다. 왕이 군사 200명을 보내 곤미천(昆彌川)註 001 가에서 막아 싸우게 하였다. 우리 군사가 거듭 패배하여 청목산(靑木山)註 002에 의지해서 스스로를 지켰다. 왕이 친히 정예 기병 100명을 이끌고 봉현(烽峴)註 003으로 나가서 구원하니 적들이 보고서 곧 물러갔다.註) 001곤미천(昆彌川) :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지만 예성강으로 비정하는 견해(李丙燾, 355쪽)와 임진강 상류로 보는 견해(酒井改藏, 1970)가 있다.〈참고문헌〉酒井改藏, 1970, 「三國史記の地名考」, 『朝鮮學報』 54, 朝鮮學會李丙燾, 1977, 『國譯 三國史記』, 乙酉文化社註) 002청목산(靑木山)..

광개토태왕이 함락한 백제의 가루성은 웨일즈에 있었다

I. 서 론그동안 필자는 이 지역 근처에서 백제와 고구려 관련 여러 성들을 찾았다. 광개토태왕이 정복한 각미성, 관미성, 수곡성 등이 그것이고, 백제 온조왕 시기부터 말갈과 싸웠던 지역인 곤미천, 청목산, 그리고 고구려와 백제가 4-5세기 접전을 벌였던 청목진, 청목령이 모두 이 지역에 있는 것을 밝혔다. (아래 자료 참조) https://paulcgpark.tistory.com/111 드디어 각미성을 찾았다I. 머리말 그동안 고구려 광개토태왕이 백제의 각미성(광개토태왕 비문 속의 이름)(관미성:삼국사기 속의 이름)이 어디인지 궁금하였는데, 최근 광개토태왕이 점령한 성들의 위치를 찾는 과정에paulcgpark.tistory.com https://blog.naver.com/lainfos/2239686602..

한국사/고구려 2025.08.11

<펌>오락후 - 나무위키

몽골 고원과 중국 북부에 존재했던 동호계 유목민족이다. 烏羅渾​(오라혼) 또는 烏洛侯(오락후)라고도 불린다.동호계 실위에서 갈라졌으며, 선비 탁발부가 세운 북위의 기록에 나온 걸로 볼 때 남북조시대부터 있었던 민족으로 추정된다. 수나라, 당나라 시기에도 있었으며, 당대에는 오락후국이라는 연맹왕국 수준의 소국이 있었다.북쪽으로는 동호계 오환(烏丸)[1], 남쪽으로는 동호계 거란, 서쪽으로는 돌궐(쾩튀르크), 동쪽으로는 퉁구스계 말갈과 접했다고 한다.[2] 지금의 중국 내몽골자치구 후룬베이얼 시에 해당된다.유목민족이었지만 당나라의 기록에 따르면 사냥을 잘했고, 여름에는 목축과 약간의 농업도 했으며, 겨울에는 땅굴을 파서 방을 만들었다는 걸 보면 정주생활을 한 사람들도 있었던 듯 하다. 풍습은 동쪽의 말갈과 ..

<펌>습족 - 나무위키

1. 개요 2. 상세 3. 여담 1. 개요[편집]습족(霫族, 또는 백습)은 중국 남북조 시대에 활동했던 북방의 소수 유목민족이다.2. 상세[편집]동호계 거란과 풍속이 비슷하며, 튀르크계 철륵(퇼레스)과 함께 돌궐에 복속되었다.647년 당나라가 그 땅에 안주(기미주, 羈縻州)를 설치하고, 백습의 족장을 자사로 삼은 것을 보면 이때 당나라에 흡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습족은 해족과 거란에게 흡수되었고, 훗날 요나라를 구성하는 주요 부족 및 민족이 되었다.기록으로 보면 활쏘기나 사냥을 잘 했다고 한다. 즉 사냥을 하는 유목민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나 북방유목국가 등에게 붉은여우 모피를 조공했다는 기록도 있다.위치는 대략 시라무렌 강 유역과 츠펑시 근처로 보이며, 동쪽은 말갈, 서쪽은 돌궐, 남쪽..

<펌>습족 - 위키백과

습족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습족(霫族) 또는 백습(白霫)은 고대 중국 남북조시대, 만주 서부 시라무렌 강 츠펑에서 살았던 유목민족으로, 수렵과 유목이 주 생활이었다. 나중에는 해족에게 귀속되었다.위치[편집]남쪽으로는 해족과 거란, 서쪽으로는 돌궐, 동쪽으로는 말갈, 북쪽으로는 오라혼과 접해 있었다.[1]생활과 풍속[편집]수렵을 했던 유목민족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수렵을 잘했고, 붉은 가죽으로 의복의 가장자리에 선을 넣는 것을 좋아했다. 부인들은 구리 팔가락지를 귀하게 여겨서 옷의 깃아래위로 작은 동종방울들을 매달았는데, 풍속은 대략 거란과 같았다.[2]같이 보기[편집]해족거란각주[편집]↑ 《구당서 동이전》:「東接靺鞨,西至突厥,南至契丹,北與烏羅渾接。」↑ 《구당서 동이전》: 「人多善射獵,好以赤..

<펌>비려 - 위키백과

비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비려(碑麗) 또는 패려(稗麗)는 거란의 한 갈래라고 여겨지는 염수(鹽水, 시라무렌 강) 유역의 유목민 집단이다.395년,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이를 정벌하여 3개의 부락(部洛)과 6~700개의 영(營)을 무찔렀으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소 · 말 · 양 등의 가축을 노획하였다.

광개토태왕이 싸운 신성(新城)과 남소성(南蘇城)은 알프스산맥 아래 있었다.

I. 머리말 광개토태왕이 후연과 싸운 신성과 남소성의 싸움은 광개토태왕이 전투에서 패배한 기록으로 유일하다. 그래서 이러한 특징에 근거하여 신성과 남소성의 위치를 추정하고자 한다. 단 그동안 필자는 아래 글에서와 같이 광개토태왕이 고트족의 Alaric I왕과 동일 인물이라는 것, 그리고 훈족과 고트족의 유럽에서의 역사는 그러므로 고구려의 역사라는 것을 밝혔으므로 이에 근거하여 추정하고자 한다. 또한 필자는 압록수인 요수가 프랑스의 론강이라는 것과 동서로 천리에 걸쳐 있는 장백산이며, 태백산이며, 동시에 백두산은 알프스의 몽블랑산이라는 것을 아래 글과 같은 연구를 통해 확인했다. 또한 아래 글과 같이, 패수는 라인강이며, 살수는 Saar river, 그리고 흉노의 시조 삭정을 봉한 고조선 시기의 약..

한국사/고구려 2025.07.04

<펌>거란-한국민족문화대백과

지명 5세기 중엽부터 1125년까지 퉁구스와 몽골의 혼혈족으로 알려진 동호(東胡)계의 한 종족명이자 국가명.이칭이칭요(遼), 키탄(Qitan), 키타이(Qitay), 대요(大遼), 대거란(大契丹)지명/고지명제정 시기5세기 중엽폐지 시기1125년지역북중국 및 만주 일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거란은 5세기 중엽부터 1125년까지 퉁구스와 몽골의 혼혈족으로 알려진 동호(東胡)계의 한 종족명이자 국가명이다. 요하 상류인 시라무렌[西刺木倫]의 남쪽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여러 부족으로 이루어진 민족이다. 거란국은 당나라 말과 오대십국의 혼란기를 틈타 8부족을 통일한 태조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에 의해 9..

<펌>거란 -나무위키

1. 개요2. 명칭2.1. 어원과 파생2.2. 한국어 표기와 발음3. 생활사4. 역사4.1. 기원과 형성4.2. 요나라의 건국과 전개4.3. 요-서요 멸망 이후4.4. 후예5. 한국사와의 관계5.1. '고구려 계승' 낭설6. 요나라 이전의 거란족 추장 및 기타 인물7. 여담8. 거란족의 국가 목록9. 관련 문서10. 둘러보기1. 개요[편집]거란(契丹)은 요하와 시라무렌강 유역을 중심으로 분포했던 준몽골어족[2] 동호계 유목민 또는 반유목민 집단이다.2. 명칭[편집]2.1. 어원과 파생[편집]언어별 명칭거란어/*kʰitai(n)/ 또는 /*kʰitan/[3]영어Khitan중세 중국어契丹 (/kʰeitɑn/, /kʰɨt̚tɑn/)중국어契丹 (ㄑㄧˋ ㄉㄢ, Qìdān)중세 몽골어ᠬᠢᠲᠠᠳ (Qitad)몽골어ᠺ..

<펌>거란 - 위키백과

거란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유목민의 생활거란(거란대자: , 거란소자: Kitai, 한국 한자: 契丹 글단) 또는 키탄(Khitan)은 4세기 중엽부터 서만주와 남몽골의 시라무렌 강 유역에 나타나 거주하던 동호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생활 방식은 주로 정주 농경과 목축을 하고 유목도 하였다. 언어와 문화는 기록이 적어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일단 언어적이나 문화적으로 볼 땐 몽골계 민족이나 고구려에 가깝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치 않으며 고구려어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자신들이 사용한 명칭은 '키탄'이며, '키타이'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이는 이란식 이름이다. 지금은 사라진 민족이며,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인 다우르족(達斡爾族, Daur)이 거란족의 후예로 추정된다. 남몽골, 몽골, 랴오닝성, ..

편두의 지역인 아메리카는 고조선의 영역인가?

​​Worldwide distribution of skull modification practices.J.Thomas, Author provided (source : J. Thomas, Cranial deformation, Science Society, 인용출처; 본 블로그, 카테고리, 고대 종교 관습)​​I. 아메리카지역에서의 편두​​​아메리카에서는 마야문명, 잉카문명에서 발견되는데, 마야문명에서는 특히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마야문명은 BC 2000년경 시작되었다. 즉 고조선 시대의 지역으로 고려할 수 있다. ​북아메리카에서도 일부 서북지역, 동남지역 인디언들에서 이러한 관습이 발견되었다. (아래 자료 참조)​"In the Americas, the Maya,[17][18][19] ..

한국사/공통 2024.12.06

압록수 (요수)는 동아시아에 없었다

우연히 역사 유튜브를 보다가 삼백강 원장의 주장을 듣게 되었다. (아래 유튜브 자료 참조) 쿠릴타이 TV님의 유튜브인데, 삼백강원장님의 주장을 소개하고 있었다. 필자는 나름대로 중국사의 허점을 주장하는 삼백강 원장님의 연구를 주목한다.  특히 그분이 언급했다는 중국사의 면적은 그리 크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셨다는 말을 매우 의미있게 받아 들인다. 그러면서 왜 그러한 주장을 하셨는지 배경이 되는  자료가 궁금하다. 그러나 아직 접해지 못해 아쉽다. 쿠릴타이님은 이러한 자료를 소개해 주셨으면 한다.  https://youtu.be/zqQvshSONcM?si=JGWgzWQEHvfQaNTs   상기 유튜브 자료에서는 사고전서와 시문헌을 통해 요수의 위치를 북경 서쪽에 있었다고 삼백강 원장이 주장하였다고 소개 한다..

한국사/공통 2024.11.22

Danes족 유전자 분포 지역은 고조선 영역인가?(III)

부제 : 스키타이 활동지역은 고조선의 영역과 관계가 있는가? Danes족의 유전자 분포지역이 고조선의 영역인가? 라는 주제로 시작한 글이 그 조상들의 지역 유전자 분포지역 연구로 이어졌고(아래 필자의 글 참조), 이제 스키타이 지역이 이들과 연관성이 있는가를 알아 보고자 한다.   https://paulcgpark.tistory.com/101 Danes족의 유전자 분포 지역은 고조선 영역인가?I. 머리말 Danes족은 덴마크지역을 홈랜드로 하는 부족이다. 필자는 이 지역이 단군과 관련 있는 지역이 아닌가 추정한다. 덴마크지역이 기원후 500년경의 두막루가 있던 지역으로 추정된다. 두막paulcgpark.tistory.com  https://lostcorea.tistory.com/1912 Danes족의 조..

한국사/고구려 2024.08.23

김해(金海)는 금관가야와 신라 사이의 바다이다

석탈해가 금관가야의  김수로왕에게 도전했다가 실패한 일화가 있다. 그런데 그후 석탈해가 물러 나는 장면이 특이하다. 김수로왕의 병선이 석탈해의 수군들을 쫓다가 계림이 보이자 물러났다는 일화이다. 즉 금관가야와 신라 사이는 바다로 갈라져 있다는 것이다. 김해(金海)란 지명이 말 그대로 이 바다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현재 한반도에는 김해지역이 육지에 있다. 즉 현재 한반도에 가야가 없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아니 한반도는 역사 속의 한국사 일부 지역일 수 있어도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래 내용은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내용이라 한다.  "이 때 갑자기 완하국(琓夏國) 함달왕(含達王)의 부인(夫人)이 아기를 배어 달이 차서 알을 낳으니, 그 알이 화해서 사람이 되어 이름을 탈해(脫解)라 했는..

한국사/가야 2024.07.14

북부여는 볼가 우랄지역을 포함했나?

최근 스키타인에 대한 연구에서 스키타이제국의 말기라 흔히 말하는 시기에 Sarmatians에 의해 스키타인제국이 흡수되는 것으로 서양사는 말한다. 이 당시 Sarmatians은 볼가 우랄지역에 있었다. 이 지역에서 흑해위 Pontic Steppe지역으로 내려와 스키타이제국을 흡수했다고 한다. 이 시기가 BC 3 - BC 2세기 시기이다. (아래 자료 참조) "Originating in the central parts of the Eurasian Steppe, the Sarmatians were part of the wider Scythian cultures.[1] They started migrating westward around the fourth and third centuries BC, comin..

한국사/부여 2024.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