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 14

<펌>오락후 - 나무위키

몽골 고원과 중국 북부에 존재했던 동호계 유목민족이다. 烏羅渾​(오라혼) 또는 烏洛侯(오락후)라고도 불린다.동호계 실위에서 갈라졌으며, 선비 탁발부가 세운 북위의 기록에 나온 걸로 볼 때 남북조시대부터 있었던 민족으로 추정된다. 수나라, 당나라 시기에도 있었으며, 당대에는 오락후국이라는 연맹왕국 수준의 소국이 있었다.북쪽으로는 동호계 오환(烏丸)[1], 남쪽으로는 동호계 거란, 서쪽으로는 돌궐(쾩튀르크), 동쪽으로는 퉁구스계 말갈과 접했다고 한다.[2] 지금의 중국 내몽골자치구 후룬베이얼 시에 해당된다.유목민족이었지만 당나라의 기록에 따르면 사냥을 잘했고, 여름에는 목축과 약간의 농업도 했으며, 겨울에는 땅굴을 파서 방을 만들었다는 걸 보면 정주생활을 한 사람들도 있었던 듯 하다. 풍습은 동쪽의 말갈과 ..

<펌>습족 - 나무위키

1. 개요 2. 상세 3. 여담 1. 개요[편집]습족(霫族, 또는 백습)은 중국 남북조 시대에 활동했던 북방의 소수 유목민족이다.2. 상세[편집]동호계 거란과 풍속이 비슷하며, 튀르크계 철륵(퇼레스)과 함께 돌궐에 복속되었다.647년 당나라가 그 땅에 안주(기미주, 羈縻州)를 설치하고, 백습의 족장을 자사로 삼은 것을 보면 이때 당나라에 흡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습족은 해족과 거란에게 흡수되었고, 훗날 요나라를 구성하는 주요 부족 및 민족이 되었다.기록으로 보면 활쏘기나 사냥을 잘 했다고 한다. 즉 사냥을 하는 유목민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나 북방유목국가 등에게 붉은여우 모피를 조공했다는 기록도 있다.위치는 대략 시라무렌 강 유역과 츠펑시 근처로 보이며, 동쪽은 말갈, 서쪽은 돌궐, 남쪽..

<펌>습족 - 위키백과

습족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습족(霫族) 또는 백습(白霫)은 고대 중국 남북조시대, 만주 서부 시라무렌 강 츠펑에서 살았던 유목민족으로, 수렵과 유목이 주 생활이었다. 나중에는 해족에게 귀속되었다.위치[편집]남쪽으로는 해족과 거란, 서쪽으로는 돌궐, 동쪽으로는 말갈, 북쪽으로는 오라혼과 접해 있었다.[1]생활과 풍속[편집]수렵을 했던 유목민족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수렵을 잘했고, 붉은 가죽으로 의복의 가장자리에 선을 넣는 것을 좋아했다. 부인들은 구리 팔가락지를 귀하게 여겨서 옷의 깃아래위로 작은 동종방울들을 매달았는데, 풍속은 대략 거란과 같았다.[2]같이 보기[편집]해족거란각주[편집]↑ 《구당서 동이전》:「東接靺鞨,西至突厥,南至契丹,北與烏羅渾接。」↑ 《구당서 동이전》: 「人多善射獵,好以赤..

<펌>비려 - 위키백과

비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비려(碑麗) 또는 패려(稗麗)는 거란의 한 갈래라고 여겨지는 염수(鹽水, 시라무렌 강) 유역의 유목민 집단이다.395년,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이를 정벌하여 3개의 부락(部洛)과 6~700개의 영(營)을 무찔렀으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소 · 말 · 양 등의 가축을 노획하였다.

광개토태왕이 싸운 신성(新城)과 남소성(南蘇城)은 알프스산맥 아래 있었다.

I. 머리말 광개토태왕이 후연과 싸운 신성과 남소성의 싸움은 광개토태왕이 전투에서 패배한 기록으로 유일하다. 그래서 이러한 특징에 근거하여 신성과 남소성의 위치를 추정하고자 한다. 단 그동안 필자는 아래 글에서와 같이 광개토태왕이 고트족의 Alaric I왕과 동일 인물이라는 것, 그리고 훈족과 고트족의 유럽에서의 역사는 그러므로 고구려의 역사라는 것을 밝혔으므로 이에 근거하여 추정하고자 한다. 또한 필자는 압록수인 요수가 프랑스의 론강이라는 것과 동서로 천리에 걸쳐 있는 장백산이며, 태백산이며, 동시에 백두산은 알프스의 몽블랑산이라는 것을 아래 글과 같은 연구를 통해 확인했다. 또한 아래 글과 같이, 패수는 라인강이며, 살수는 Saar river, 그리고 흉노의 시조 삭정을 봉한 고조선 시기의 약..

한국사/고구려 2025.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