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 자료를 통한 백제의 한성 위치 추정 (1)

2021. 8. 22. 00:53한국사/백제

 

한성백제의 한성(漢城)은 백제의 수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나라 한자가 들어가 있다. 그래서 필자는 한(漢)나라지역에 있던 도시라고 추측하고 있었는데, 그 실체를 파악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필자는 본 블로그 글, '한(漢)나라와 조선의 경계인 패수는 독일의 라인강이 아닌가?'에서 중국(衆國)지역이 라인강 서쪽인 지역이라 추정했다. 중국이란 표현도 가운데 중(中)이 아니라 여러 나라가 있었다는 의미의 중국(衆國)이 아닌가 한다. 아메리카 합중국의 중국(衆國)표현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프랑스에 있다면 가운데가 아니라 서쪽 한쪽에 치우친 지역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이런 주장은 본 블로그 글, '압록수인 요수는 프랑스의 론강이다', '요수가 론강이라면 갈석산은 어디인가?', '동서로 천리에 걸쳐 뻗어 있는 백두산은 알프스산맥에 있다', '장수왕이 공격한 풍홍의 북연은 프랑스 Gaul지역에 있었다' 등의 글에서 이미 이러한 중국(衆國)의 위치를 추정한 바 있다. 

 

그동안 북위가 북연의 남쪽에 있으니, 북위가 프랑스지역 Toulouse를 수도로 하는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갈석산에서 군신들에게 잔치를 베푼 북위의 문성제의 황산궁은 그래서 Toulouse에 있지 않나 추정했다. 그런데 북위로 추정되는 서고트족은 수도를 Toulouse로 하고 있었다. 

 

백제는 동성왕시 484, 488, 490년에 걸쳐 북위와 전쟁을 하였다. 484년에 대패했지만, 488, 490년에는 크게 승리했다고 한다. 즉 백제는 그 영토의 일부가 북위와 인접하여 있었다는 것이다. 

 

백제의 한성백제는 475년 고구려에 의해 점령 되었다고 삼국사기 장수왕 시기에 기록된다. 그러나 506년 문자왕 시기의 고구려는 한성에서 백제와 싸워 이기지 못했다고 다시 기록된다. 동성왕 시기의 백제가 다시 한강유역을 회복했다고 하는 기록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무위키).

 

그래서 필자는 북위로 추정되는 서고트족의 기록을 더 자세히 살피게 되었다. 광개토태왕으로 추정되는 Alaric I 직계 계열인 Balt Dynasty는 서고트족의 가문 계보이다. 이들은 주로 Gaul지역 및 히스파니아지역을 점령한 서고트왕국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북위가 고구려가 아닌가 하는 추정도 해본다. (이는 별도의 글에서 언급할 것이다). 더 나아가 남조도 이베리아반도지역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바, 이들도 고구려계가 아닌가 한다. 그래서 남북조의 아침조(朝)가 사용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서고트족은 475-507기간동안 프랑스의 Clermont (클레르몽)지역을 점령했었다. 이것이 동양사에서 어떤 사건에 해당하는지 검토하고자 한다. 

 

첫째, 프랑스 클레르몽 점령사건이 고구려의 백제 한성을 점령한 사건인가 하는 분석이다.  한성인지 분석하려면 아래 내용을 검토해야 한다. 

 

 

1) 백제 온조왕 시기 위례성(BC 18)에 나라를 세웠지만, 얼마 후 한산(BC 5)으로 수도를 옮겼다는 기록이다. 

 

『고전기(古典記)』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동명왕(東明王)의 셋째 아들 온조가 전한 홍가(鴻嘉) 3년 계묘(기원전 18)에 졸본부여에서 위례성에 이르러서는 수도를 정하고 왕이라 칭하였다. 14년 병진(기원전 5)에 한산(漢山)으로 수도를 옮겨 389년을 지냈다."

 

(자료 : 『삼국유사』 제2권 기이 제2 남부여ㆍ전백제ㆍ북부여) (인용출처 : 온조, 나무위키, 본블로그 카테고리, 펌글 참조)

 

 

 

 

 

 

4) Clermont지역은 한산지역인가? 

 

아래 기록을 보면 Clermont지역을 로마가 점령한 후, 도시 이름을 Augutus 이름을 딴 Augustonemetum으로 하였다고 기록된다. 그리고 Clermont은 로마 Gaul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고 한다. 한성의 가능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After the Roman conquest, the city became known as Augustonemetum sometime in the 1st century[BC or AD?], a name which combined its original Gallic name with that of the Emperor Augustus. Its population was estimated at 15,000–30,000 in the 2nd century, making it data-one of the largest cities of Roman Gaul."

 

(source : Clermont, Wikipedia, 본 블로그, 카테고리, Goths, 펌글 참조)

 

 

 

2. 개로왕 시기 위례성과 한성의 위치

 

475년 개로왕은 고구려 장수왕이 보낸 제중걸루 등에게 사로 잡혀 왕족과 왕이 살해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동시에 한성백제가 망했다고 기록된다. 

 

그래서 문주왕이 웅진백제로 옮겼다고 한다. 

 

필자는 위례성과 한성을 별도로 추정한다. 

 

 

475년 서로마가 망한 해이므로 한성이 이태리반도의 어디인가 하는 의구심도 가졌었다. 그러나 한성의 한자는 한(漢)나라 한자이므로, 그동안  여러 분석을 통해 한(漢)나라의 위치를 라인강 서쪽으로 추정한 것과 이는 매칭되지 않는다. 그래서 고민하던차, 서고트족의 활동지역에서 Clermont이 한성일 가능성을 찾은 것이다. 

 

"Clermont went through a dark period after the disappearance of the Roman Empire and during the whole High Middle Ages, marked by pillaging by the peoples who invaded Gaul. Between 471 and 475, Auvergne was often the target of Visigothic expansion, and the city was frequently besieged, including data-once by Euric. Although defended by Sidonius Apollinaris, at the head of the diocese from 468 to 486, and the patrician Ecdicius, the city was ceded to the Visigoths by emperor Julius Nepos in 475 and became part of the Visigothic kingdom until 507.

(source : Clermont, Wikipedia, 본 블로그, 카테고리, Goths, 펌글 참조)

 

아래 Gergovie plateau에서 연을 날리고 있는 Cervolix 축제 사진을 보라. 서양에서 연을 날린다. 자고로 연(=kite) 날리는 것은 동양에서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모습이다. 왜 이런 풍습이 아직도 남아 있는가? 왜 Clermont 주위에 이런 풍습이 있는 것인가? 필자가 한성지역이 이곳이 아닌가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Cervolix 2006 on Gergovie plateau near Clermont-Ferrand, France (source : Wikipedia)

 

Cervolix

"Cervolix" - an association of kite fliers and kite surfers on the plateau. It is also used, since 1995, by remote-controlled aircraft fliers.

 

507년 Battle of Vouille가 있었던 Poitiers지역은 Clermont지역이다. 그런데 이 지역은 Occitan지역이다. 

 

 

3. 507년 문자왕 시기의 기록에 고구려는 한성에서 백제와 싸워 이기지 못했다는 기록이 있다.

 

"507년 고로(高老)를 시켜서 말갈군과 함께 백제의 한성(漢城)을 공격하려 하였으나, 횡악(橫岳)과 싸우다가 물러났다."

 

(자료 : 문자명왕, 위키백과, 본 블로그, 카테고리, 고구려하, 인용글 참조)

 

상기 위키피디아 기록에서 서고트족은 Clermont을 475년 점령하여 507년까지 점하고 있었다고 한다. 즉 507년이후로는 서고트족이 점하고 있지 못했다는 것이다. 문자왕 시기의 한성기록 기록과 일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