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 론
필자는 광개토태왕이 공취한 백제의 아단성을 찾고자 상당히 오래 전부터 고민을 해왔는데, 본 글에서 그 본질을 파악하고자 특별히 더 자세히 살펴 보자.
지난 책계왕 시기의 아단성 추정 글에서 살펴 보았듯이, 아래 3가지 점이 이러한 추정의 지역을 좁히는 계기가 되었다.
첫째는 한국사에서 아단성과 관련하여, 백제, 고구려, 신라에서 언급되었다는 것이다. 백제의 책계왕 시기 286년 아단성을 중수하였고, 광개토태왕의 백제성 중 공취한 것중의 하나인 것은 물론이고, 고구려 장수왕 시기 476년 아단성을 중수하였다고 하는 기록과, 고구려 평안왕 말 시기 590년에 온달장군이 신라군과 아단성 전투에서 활에 맞아 죽었다는 기록이다. 이러한 기록은 아단성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접경 근처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이번 글에서는 광개토태왕 시기에 대해 집중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둘째, 책계왕의 기록에 아단성과 사성(蛇城, snake castle)을 중수하였다고 하였다. 따라서 사성과 인접한 아단성을 추정할 수 있다. 지난 글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아단성(Adana castle)과 사성(Yilankale)이 튀르키예의 Adana 지방에서 바로 이웃하여 있었다.
셋째는 아단성이 잡진성과 함께 광개토태왕 비문의 수묘인 성으로 거론되었다는 점이다. 아단성과 잡진성을 함께 간연 10가로 정한 기록인 것이다. 이는 아단성과 잡진성이 인접하여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백제의 책계왕이 중수한 아단성과 사성은 튀르키예 Adana province에 있었다.
I. 서 론 필자는 광개토태왕이 공취한 백제의 아단성을 찾고자 상당히 오래 전부터 고민을 해왔다. 그리스 아테네를 간 Alaric I(광개토태왕 추정)의 행적을 바탕으로 아테네성이 아닌가 하기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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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본 론
1. 고구려 광개토태왕이 백제로부터 공취한 아단성
1) Adana castle의 이름 역사
Adana castle을 아단성으로 추정하는 만큼, 음가차용의 아단(Adana)에 대한 이름의 역사를 알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아래 글을 보면 그 이름의 역사가 매우 오래 되었으며, 이는 아단성이 수묘인제의 한 성으로 된 연유를 생각하게 한다.
"Etymology
One theory holds that the city name originates from a hypothetical Indo-European term; a danu (English: on the river). Many river names in Europe were derived from the same Proto-Indo-European root: Danube, Don, Dnieper and Donets.[6] The earliest time Adana was mentioned was around 2000 BC in the Hittite tablets. With a history of at least four millennia, Adana is one of the oldest continuously used place names and had only pronunciation changes under different rules.
Adana란 도시이름은 인도유럽어 danu (on the river)에서 왔다고 하는 주장이 있다. 유럽의 많은 강이름은 같은 인도유럽어 뿌리에서 왔다는 것이다 : Danube, Don, Dnieper, Donets. 아주 오래전 Adana는 약 기원전 2천년경의 히타이트 타블렛에서 언급되었다. 적어도 4천년의 역사를 가진 Adana란 이름은 지역이름으로서 계속하여 쓰여진 가장 오래된 이름 중의 하나이며, 여러 법칙에 의해 다른 발음을 가졌을 뿐이다. (상기 내용)
In Homer's Illiad, the name of the city is mentioned as Adana. For a short while during the Hellenistic era, the city was known as Ἀντιόχεια τῆς Κιλικίας (English: Antioch in Cilicia) and as Ἀντιόχεια ἡ πρὸς Σάρον (English: Antioch on Sarus). On some cuneiforms, the city name was mentioned as Quwê, and as Coa in some other sources which could be the place Solomon had obtained his horses as per Bible (I Kings 10:28; II Chronicles 1:16).
호머의 일리야드에서, 도시이름 Adana가 언급된다. 헬레니즘 시대에 잠시 이 도시이름은 Antioch in Cilicia, Antioch on Sarus로 알려졌다. 몇몇 설형문자에서, 이 도시이름은 Quwe로 언급되었으며, 성경에서 솔로몬왕이 그의 말들을 얻었다는 지역으로 언급되는 다른 자료에서는 Coa로 언급되었다. (상기 내용)
Under Armenian rule, the city was known as Ատանա (Atana) or Ադանա (Adana).
아르메니언 지배시기에는 이 도시는 Atana 또는 Adana로 알려졌다. (상기 내용)
An ancient Greco-Roman legend mentions that the name of Adana originates from Adanus, the son of the Greek god Uranus, who founded the city next to the river with his brother.[7] His brother's name, Sarus, was given to the river. An older legend, in Accadian, Sumerian, Babylonian, Assyrian and Hittite mythologies, originates the city's name to the Storm and rain god Adad who lived in the surrounding forests. There are Hittite manuscripts that were founded in the region regarding this legend. The legend had survived as the Storm and rain god continued to create rain and abundance. The locals had great admiration towards the God and called the region Uru Adaniyya (English: Adana region) in his honour. The city inhabitants were called Danuna.
고대 그리스-로마신화에서는 Adana 이름이 Adanus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Adanus는 Uranus라는 그리스신의 아들로서, 그의 형제와 함께 강옆에 이 도시를 건설했다 한다. 아카디아, 수메르, 바빌로니아, 앗시리아, 히타이트의 더 오래된 신화에서는 Adana란 도시이름이 둘러 싸인 숲속에 사는 폭풍과 비의 신 Adad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이 신화와 관련하여 이 지역에서 히타이트 금석문이 발견되었다. 이 신화는 계속 전해져 비와 풍요를 폭풍과 비의 신이 준 것이라 믿는다. 지역에서는 이 신에 대한 큰 경배를 가지고 그의 이름을 기념하기 위해 이 지역을 Uru Adaniyya (Adana region)라 불렀다. 이 도시에 사는 주민들은 Danuna 라 불리웠다. (상기 내용)
It is also believed that it is related to the "Danaoi", the name for Greeks of the Trojan War in Homer and Thukydides.[9]
이 도시이름은 또한 호머와 투키디테스의 그리스 트로이전쟁에서의 이름 "Danaoi"와 관련된 것으로 믿어진다. (상기 내용)
(source : Adana (city),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Cimmerians/Gomer)
Adana란 이름은 고대로부터 상당히 신성시된 이름으로 판단된다. Adanus란 그리스 신의 이름 또는 Adad란 아카디아, 수메르, 바빌로니아, 앗시리아, 히타이트의 비와 폭풍의 신과도 연관이 있다 한다. Adana란 이름은 트로이 전쟁의 Danaoi와 연관성도 언급된다.
또한 Adana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Danuna라 불리웠다고 했다. 그래서 Adana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왜 Danuna라 부르는지, 그리고 트로이전쟁에서 언급되는 Danaoi가 왜 연관이 있는지 알아 보고자 한다.
이는 상당히 옆길로 샐 수 있지만, 지난 책계왕 시기의 아단성과 사성에 관한 글에서 어느 정도 아단성이 Adana castle이라는 점이 밝혀진 만큼, 광개토태왕이 왜 아단성을 수묘인제의 성으로 선택했는지 알아 보고자 함이다. 수묘인제의 성들은 고조선시대부터의 조상들의 묘가 있어 이를 보호하는 취지에서 정한 것으로 필자는 이해한다. 그리고 여기서 Danuna, Danaoi 등 단군의 Dan과 연관된 이름의 뉴앙스를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이러한 관련 연구는 고조선의 영역을 파악하는데, 어느 정도 힌트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2) Danuna (=Denyen) and sea peoples
아래 자료를 보면 Danuna, 즉 Adana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seas peoples의 일부라 한다. 필자는 Sea peoples의 정체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다. 한때는 Dorians을 도이(島夷) 즉 왜의 일부라 판단했지만, 지금은 Dorians이 sea peoples이지만, 미케네문명을 무너뜨린 그들은 왜가 아니라 해양활동이 강한 스키타인 세력이 아닌가 한다. 서양사가들은 그리스가 스키타인이라 주장한다. 광개토태왕의 비문에 나타난 수묘인제 지역중에 도련(島連)이 있다. Dorians 지역이 아닌가 한다. sea peoples이며 스키타인이라는 단군조선의 후예가 아닌가 한다.
"The Denyen (Egyptian: dꜣjnjnjw) is purported to be one of the groups constituting the Sea Peoples.
Danuna(Denyen)는 sea peoples을 구성하는 그륩의 하나로 주장된다.
They were raiders associated with the Eastern Mediterranean Dark Ages who attacked Egypt in 1207 BC in alliance with the Libyans and other Sea Peoples, as well as during the reign of Ramesses III.[2] The Twentieth Dynasty of Egypt allowed them to settle in Canaan, which was largely controlled by the Sea Peoples into the 11th century BC.[2]
그들은 동지중해의 암흑시대와 관련이 있는 침입자들과 관련이 있는데, 리비언과 다른 sea peoples들과 함께 연합하여 기원전 1207년 이집트를 공격했으며, 람세스 III세의 지배시기에도 그랬다. 이집트의 20왕조는 이들이 가나안 지방에 정착하는 것을 허락했는데, 가나안지역은 기원전 11세기에 sea peoples에 의해 대부분 통제되었다. (상기 내용)
(source : Danuna,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 카테고리, Cimmerians/Gomer)
Sea peoples은 바다를 누비는 해양활동이 강한 집단인데, 가나안지역을 지배한 것으로 설명된다. 즉 가나안 지방도 단군조선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스라엘지역에서 Dan지명, Dan tribe언급을 확인했다.
즉 Adana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Danuna라 불리며, 이들은 sea peoples이라는 것이며, 이는 단군조선의 세력으로 판단된다.
상기 내용 중에 기원전 1207년에 리비언과 다른 sea peoples이 연합하여 이집트를 공격하였다 기술되었다. 필자는 이들이 기원전 12세기경 등장하는 스키타인 세력이 아닌가 한다. 필자는 스키타인, 사카, 키메리언 모두 단군조선의 세력이 아닌가 하는 글을 썼다. (아래 필자의 글 참조)
사카, 스키타인, 키메리언 활동지역으로 추정해보는 단군조선의 영역
필자는 요즈음 사카에 이어, 스키타이에 대한 연구에 한창이다. 그리고 과거 키메리언의 역사 연구까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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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bc 1200년경 흉노의 세력이 색불루 단군왕이 내용을 환단고기 연구에서 보았는데, 흉노의 색블루 단군왕검을 Danes족의 창시자이며 흉노인인 Humblue왕으로 추정하였으며, 이들이 후손이 덴마크의 Danes족이며, 그 자손의 일부는 Anglo족의 선조가 되었다. 이들은 Dan이란 왕을 두었다 했다. (아래 필자의 글 참조)
덴마크의 Danes족 유전자 분포지역은 고조선 영역인가?(I-II)
I. 머리말 Danes족은 덴마크지역을 홈랜드로 하는 부족이다. 필자는 이 지역이 단군과 관련 있는 지역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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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연구는 흉노를 봉한 약수 위치 관련 아래 연구와 더블어 그 설득력을 더했다.
또한 상기 주제와 관련되어, 북부여의 지역에 돌아간 두막루 세력이 덴마크에 있었다는 글을 써서 같은 맥락의 글을 썼다. (아래 글 참조)
즉 sea peoples이 스키타인으로 추정되며, 이들이 단군조선의 세력이라는 추정이다. 이러한 필자의 추정은, 이후 아래에서 계속되는 연구에서, Adana province지역과 Isaurians과 연관되며, 스키타인이라는 추정과 연관된다.
"Origin

Map of Mycenaean cultural areas, 1400–1100 BC (unearthed sites in red dots).
It has been proposed that the Denyen and Tanaju of the Egyptian records may relate to the Greek ethnonym Danaoi (Ancient Greek: Δαναοί, romanized: Danaoí); also attested in the Homeric epics.[3] The earliest textual reference to Mycenaean Greece is in the Annals of Thutmosis III (c. 1479–1425 BC), which refers to messengers from the king of the Tanaju, c. 1437 BC, offering greeting gifts to the Egyptian king, in order to initiate diplomatic relations, when the latter campaigned in Syria.[3] Tanaju is also listed in an inscription at the Mortuary Temple of Amenhotep III. The latter ruled Egypt in c. 1382–1344 BC. Moreover, a list of the cities and regions of the Tanaju is also mentioned in this inscription; among the cities listed are Mycenae, Nauplion, Kythera, Messenia and the Thebaid (region of Thebes, Greece).[3] "
이집트의 기록에 나오는 Denyen, Tanaju는 호머의 서사시에 나오는 Danaoi, 그리스 이름과 관련이 있다고 제시된다. 미케네 그리스에 대한 가장 최초의 기록은 Thutmosis III (1479-1425 bc) 연대기에 언급되는데, 1437bc에 Tanaju의 왕이 이집트와 외교관계를 맺기 위해, 이집트가 시리아를 원정할 시기에, 이집트왕에게 알현 선물을 주러 왔다는 메신저를 언급하였다. Tanaju는 Amenhotep III의 무덤 사원 금석문에도 리스트되어 있다. 아멘호테프 III 파라오는 이집트를 1382-1344 bc 기간에 다스렸다. 더구나 이 금석문에는 Tanaju의 도시와 지역 리스트가 언급되었다; 도시중에는 Mycenae, Nauplion, Kythera, Messenia, Thebaid (그리스의 Thebes)가 언급되었다. (상기 내용)
(source : Danuna,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 카테고리, Cimmerians/Gomer)
상기 내용은 그리스의 미케네문명이 Tanaju, Denyen, Danuna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sea peoples이라는 것이다. 서양사가들은 그리스인들이 스키타인이라 추정한다.
필자는 미케네문명이 상나라의 그것이 아닌가 했다. (아래 글 참조)
현재 필자의 판단은 미케네문명은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상나라를 포함한 단군조선의 나라일 것으로 판단된다. 즉 Danuna, Tanaju는 미케네문명과 관련이 있으며, 이는 곧 단군조선과 관련이 있으며, 따라서 Adana지역도 단군조선과 관련이 있다는 추론이 된다. 또한 sea peoples은 단군조선의 세력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The Denyen have also been identified with the people of Adana in Cilicia, who existed in late Hittite Empire times. They are also believed to have settled in Cyprus. A Hittite report[4] speaks of a Muksus, who also appears in an eighth-century bilingual inscription from Karatepe bilingual stele in Cilicia, which also mentions the king of the "Danunians" (Phoenician: 𐤃𐤍𐤍𐤉𐤌 dnnym)."
Dananu는 히타이트제국 시기에 존재했던 Cilicia의 Adana 부족과 또한 동일시되어 왔다. 그들은 사이프러스에도 정착한 것으로 믿어진다. 히타이트 보고서는 Muksus를 말하는데, Muksus는 기원전 8세기 이중언어의 금석문, Cilicia의 Karatepe 비석에도 나타나는데, 여기서도 Danunians의 왕을 언급한다. (상기 내용)
(source : Danuna,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 카테고리, Cimmerians/Gomer)
상기 내용은 Cilicia의 Adana부족과 사이프러스의 정착민이 Dananu라는 것과 결국 단군조선의 지역으로 연계된다.
또한 Adana는 트로이 전쟁에서 언급되는 Danaoi와도 연관이 있다 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자료도 아래에서 더 살펴 보자.
3) Danaoi (=Achaeans) and Greeks and Trojan war
Adana지명은 호머의 그리스의 트로이전쟁(BC 1194-1184)에 관한 이야기에서 언급되는 Danaoi와도 관련이 있다 했다. Danaoi는 Achaeans으로서 미케네 그리스인으로 추정된다. (아래 자료 참조)
"The Achaeans or Akhaians (/əˈkiːənz/; Ancient Greek: Ἀχαιοί, romanized: Akhaioí, "the Achaeans" or "of Achaea") is one of the names in Homer which is used to refer to the Greeks collectively.
Achaeans or Akhaians (romanized; Akhaioi, "the Achaeans" or "of Achaea")는 Homer의 서사시에서 단체적으로 그리스인을 일컫는 말로 쓰인 이름 중의 하나이다. (상기 내용)
The term "Achaean" is believed to be related to the Hittite term Ahhiyawa and the Egyptian term Ekwesh which appear in texts from the Late Bronze Age and are believed to refer to the Mycenaean civilization or some part of it.
"Achaen"이란 단어는 히타이트 단어 Ahhiyawa와 이집트 단어 Ekwesh와 관련된 것으로 믿어지는데, 이들은 말기 청동기 시기의 문서에 나타나며, 미케네문명 또는 그 일부를 칭하는 것으로 믿어진다. (상기 내용)
In the historical period, the term fell into disuse as a general term for Greek people, and was generally reserved for inhabitants of the region of Achaea, a region in the north-central part of the Peloponnese. The city-states of this region later formed a confederation known as the Achaean League, which was influential during the 3rd and 2nd centuries BC.
역사시기에는 이 단어는 그리스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인 단어로 쓰이진 않았고, 일반적으로 Achaea지역의 주민들을 말하는 것이다. Achaea지역은 펠로폰네소스의 북부 중부의 부분의 지역이다. 이 지역의 도시국가들은 후에 Achaean 리그 - 기원전 3세기-2세기동안에 영향력 있었던 - 로 알려진 연합체를 형성했다. (상기 내용)
(source : Achaeans(Homer),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 카테고리, 고대그리스)
Danaoi, Achaeans 모두 그리스인, 그리고 미케네문명과 관련이 있으며, 아나톨리아의 서쪽 Ahhiyawa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위에서 살펴본 Dananu와 동일한 내용이다. 즉 단군조선의 활동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
(1) Homeric versus later use (호머와 그 이후 시기의 사용)
See also: Achaeans (tribe)
"In Homer, the term Achaeans is one of the primary terms used to refer to the Greeks as a whole. It is used 598 times in the Iliad, often accompanied by the epithet "long-haired". Other common names used in Homer are Danaans (/ˈdæneɪ.ənz/; Δαναοί Danaoi; used 138 times in the Iliad) and Argives (/ˈɑːrɡaɪvz/; Ἀργεῖοι Argeioi; used 182 times in the Iliad) while Panhellenes (Πανέλληνες Panhellenes, "All of the Greeks") and Hellenes (/ˈhɛliːnz/;[4] Ἕλληνες Hellenes) both appear only once;[5] All of the aforementioned terms were used synonymously to denote a common Greek identity.[6][7] In some English translations of the Iliad, the Achaeans are simply called the Greeks throughout."
호머는 Achaeans을 전반적으로 전체적인 그리스인으로 언급했다. 일리아드에서 598번 언급했는데, 별칭으로 "긴머리의 사람" (long-haired)를 자주 언급했다. 호머에서 쓰인 다른 일상적인 이름은 Danaans (Danaoi, 일리아드에서 138번 사용)와 Argives (Argeioi, 일리아드에서 182번 사용)인 반면, Panhellenes ("모든 그리스인")와 Hellenes는 모두 딱 한번 나타난다; 모든 위의 단어들은 일반적인 그리스인 정체를 나타내는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일리아드의 어느 영문번역에서는 Achaeans은 단순히 그리스인으로 불리웠다. (상기 내용)
(source : Achaeans(Homer),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 카테고리, 고대그리스)
상기 내용은 Dananu, Danaoi, Danaans, 모두 같은 것으로 그리스 Achaeans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long-haired 사람이란 표현이 눈길을 끈다.
"Later, by the Archaic and Classical periods, the term "Achaeans" referred to inhabitants of the much smaller region of Achaea. Herodotus identified the Achaeans of the northern Peloponnese as descendants of the earlier, Homeric Achaeans. According to Pausanias, writing in the 2nd century AD, the term "Achaean" was originally given to those Greeks inhabiting the Argolis and Laconia.[8]
그후, Archaic(고대의) and Classical(그리스-로마시기) 시기에는, Achaeans 단어는 Achaea의 보다 작은 지역의 주민들을 일컬었다. 헤로도투스는 펠로폰네소스의 Achaeans을 호머의 Achaeans의 후손으로 인식하였다. Pausanias에 의하면, 2세기에 쓴 글에서, Achaean란 단어는 원래 Argolis와 Laconia (펠레폰네소스에 있는 도시들)에 사는 그리스인을 말하는 것이었다. (상기 내용)
(source : Achaeans(Homer),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고대그리스)
상기 내용에서, 후에는 Achaeans란 단어가 보다 작은 지역 Argolis와 Laconia지역에 사는 그리스인을 말한다 하였는데, 아래에서 언급되는 도리언의 침범으로 강제 이주된 지역이 아닌가 한다.
"Pausanias and Herodotus both recount the legend that the Achaeans were forced from their homelands by the Dorians, during the legendary Dorian invasion of the Peloponnese. They then moved into the region later called Achaea."
Pausanias와 Herodotus는 모두 Achaeans이 도리언의 펠로폰네소스 침입기간동안 도리언에 의해 고향에서 나중에 Achaea라 불리는 지역으로 강제 이주했다는 전설을 이야기했다. (상기 내용)
(source : Achaeans(Homer),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고대그리스)
상기 내용은 Danaoi, 즉 Achaeans은 펠로폰네소스지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설명이다. 도리언 침입으로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내에서 강제 이주 당했다는 언급이다.
아래 히타이트 문서에서는 Ahhiyawa지역이 Achaeans이 진출한 지역으로 언급된다 한다. 특히 미케네문명시기에 진출한 지역으로 언급된다.
(2) Hittite documents (히타이트 문서)

Map showing the Hittite Empire, Ahhiyawa (Achaeans) and Wilusa (Troy) in c. 1300 BC. (source : Wikipedia)
"Some Hittite texts mention a nation to the west called Ahhiyawa (Hittite: 𒄴𒄭𒅀𒉿 Aḫḫiyawa).[14] In the earliest reference to this land, a letter outlining the treaty violations of the Hittite vassal Madduwatta,[15] it is called Ahhiya. Another important example is the Tawagalawa Letter written by an unnamed Hittite king (most probably Hattusili III) of the empire period (14th–13th century BC) to the king of Ahhiyawa, treating him as an equal and implying Miletus (Millawanda) was under his control.[16] It also refers to an earlier "Wilusa episode" involving hostility on the part of Ahhiyawa. "
몇몇 히타이트문서는 서쪽의 Ahhiyawa라 불리는 나라를 언급한다. 이 땅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문서 - 히타이트 속국인 Madduwatta와의 조약 위반을 대략 설명하는 편지 - 에서는 Ahhiya라 불리웠다. 또 다른 중요한 예는 익명의 히타이트 제국 (14-13c BC)의 왕 (아마도 Hattusili III)이 Ahhiyawa왕에게 쓴 편지 Tawagalawa letter이다. 이 편지에서 히타이트왕은 Ahhiya왕을 동급으로 취급하며 Miletus(Millawanda)가 그의 통제하에 있다는 것을 암시하였다. 또한 Ahhiyawa의 일부에 대한 적개심을 가진 이전의 Wilusa 일화를 언급한다. (상기 내용)
"Ahhiya(wa) has been identified with the Achaeans of the Trojan War and the city of Wilusa with the legendary city of Troy (note the similarity with early Greek Ϝιλιον Wilion, later Ἴλιον Ilion, the name of the acropolis of Troy)."
Ahhiya(wa)는 트로이전쟁에서의 Achaeans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Wilusa도시는 전설의 Troy도시로 인식되어왔다. (고대 그리스 Wilion과 이후의 Troy의 성채이름 Ilion의 유사성 주목) (상기 내용)
(source : Achaeans(Homer),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고대그리스)
상기 내용에서 Ahhiyawa도시는 트로이전쟁에서도 Achaeans으로서 참여한 것을 언급하고 있다.
"Emil Forrer, a Swiss Hittitologist who worked on the Boghazköy tablets in Berlin, said the Achaeans of pre-Homeric Greece were directly associated with the term "Land of Ahhiyawa" mentioned in the Hittite texts.[17]
스위스 히타이트연구자인 Emil Forrer는 베를린의 Boghazkoy tablets에 대해 연구했는데, 호머이전의 그리스의 Achaeans은 히타이트문서에서 언급된 "Ahhiyawa의 땅"이란 단어와 직접 연관되어 있다 말했다. (상기 내용)
......
More recent research based on new readings and interpretations of the Hittite texts, as well as of the material evidence for Mycenaean contacts with the Anatolian mainland, came to the conclusion that Ahhiyawa referred to the Mycenaean world, or at least to a part of it.[19]
미케네인들이 아나톨리아 본토에 접촉한 물리적 근거뿐만 아니라, 히타이트 문서의 최근 논문과 해석에 근거한 좀더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Ahhiyawa는 미케네 세상 또는 적어도 그 일부를 언급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상기 내용)
Scholarship up to 2011 was reviewed by Gary M. Beckman et al. In this review, the increasing acceptance of the Ahhiyawa-Mycenaeans hypothesis was noted............
2011년까지의 연구를 리뷰한 Gary M Beckman은 Ahhiyawa-미케네인 가정이 점차 더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상기 내용)
In fact, the authors state that "there is now little doubt that Ahhiyawa was a reference by the Hittites to some or all of the Bronze Age Mycenaean world", and that Forrer was "largely correct after all".[20]
사실, 연구자들은 히타이트인에 의해 언급된 Ahhiyawa는 청동기시기의 미케네 세상 전부 또는 일부를 말하는 것이라는 것에 대해 거의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상기 내용)
(source : Achaeans(Homer),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고대그리스)
상기 내용에서 히타이트 기록에서 언급되는 Ahhiyawa는 Achaeans을 나타내는 말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 단어는 히타이트 왕국의 서쪽에 있는 나라로 인식되었으니, 그리스의 미케네문명을 가리키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트로이 전쟁에서 참여하여 Troy (Wilusa)의 반대진영인 Achaeans에 참여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이 자료도 Dananu, Danaoi, Danaans으로 추정되는 그리스의 Achaeans이 아나톨리아 서쪽에도 진출한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바다쪽의 도시에 진출한 것은 sea peoples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Adana 지역도 지중해에 접하였으므로 sea peoples의 진출지역일 수 있다고 본다. 또한 Sea peoples은 스키타인으로 추정되는 바, Adana 지역은 스키타인의 단군 조선지역일 수도 있다고 본다. 그래서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이 수군을 통해 확보한 지역이 아닐까 한다.
Danaoi, 즉 Achaeans에 대한 히타이트 자료에 이어, 이집트의 자료를 아래에서 살펴 보고자 한다. 이집트에서는 이들을 Ekwesh라 언급하였다 한다.
(3) Egyptian sources (이집트 자료)
See also: Sea Peoples

Map of Mycenaean cultural areas, 1400–1100 BC (unearthed sites in red dots). (source : Wikipedia)
"It has been proposed that Ekwesh of the Egyptian records may relate to Achaea (compared to Hittite Ahhiyawa), whereas Denyen and Tanaju may relate to Classical Greek Danaoi [21] The earliest textual reference to the Mycenaean world is in the Annals of Thutmosis III (c. 1479–1425 BC), which refers to messengers from the king of the Tanaju, c. 1437 BC, offering greeting gifts to the Egyptian king, in order to initiate diplomatic relations, when the latter campaigned in Syria.[21]
이집트기록의 Ekwesh는 Achaea(히타이트 Ahhiyawa에 비교하여)와 연관될 수 있다고 추정된다. Achaea라는 곳에서 Denyen과 Tanaju부족이 그리스-로마시대의 그리스인 Danaoi와 연관될 수 있다. 미케네 세상 관련하여 가장 오래된 관련 문서는 Thutmosis III (1479-1425 bc)연대기에 있는데, 1437bc에 Tanaju의 왕이 이집트와 외교관계를 맺기 위해, 이집트가 시리아를 원정할 시기에, 이집트왕에게 알현 선물을 주러 왔다는 메신저를 언급하였다. (상기 내용)
(source : Achaeans(Homer),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고대그리스)
이집트 기록의 Ekwesh는 Achaea, 히타이트의 Ahhiyawa와 연관된다. Danaoi, Tanaju부족이 관련된다. BC 1479-1425 BC 기간의 재위기간을 가진 Thutmosis III 시기에 Tanaju왕이 외교관계를 위해 사신을 파견했다는 것이다. 즉 이시기부터, 이집트와 그리스 문명권이 교류를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Tanaju is also listed in an inscription at the Mortuary Temple of Amenhotep III. The latter ruled Egypt in c. 1382-1344 BC. Moreover, a list of the cities and regions of the Tanaju is also mentioned in this inscription; among the cities listed are Mycenae, Nauplion, Kythera, Messenia and the Thebaid (region of Thebes).[21]
Tanaju는 Amenhotep III의 무덤 사원 금석문에도 리스트되어 있다. 아멘호테프 III 파라오는 이집트를 1382-1344 bc 기간에 다스렸다. 더구나 이 금석문에는 Tanaju의 도시와 지역 리스트가 언급되었다; 도시중에는 Mycenae, Nauplion, Kythera, Messenia, Thebaid (그리스의 Thebes)가 언급되었다. (상기 내용)
(source : Achaeans(Homer),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고대그리스)
Tanaju(Danaoi)는 Amenhotep III (BC 1382-1344 BC) 시기 금석문에도 언급된다. 심지어 도시 리스트도 있다. 이는 단순한 교류를 넘어 그리스와 이집트 18왕조가 한 공동체가 아니었나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필자는 그리스 미케네문명이 이집트 18왕조와 공동체가 아닌가 하는 것과 이들이 고조선의 구성원이 아닌가 하는 아래 글들을 썼었다. (필자 아래 글 참조)
상나라는 이집트 18왕국을 포함하고 있었다
상나라는 이집트 18왕국을 포함하고 있었다
나는 상나라의 위치에 대해서 본 블로그에 올린 글, "하나라, 상나라, 주나라는 어디에 있었는가?", 그리고 "상나라의 수도 '박'은 이라크의 바그다드인가?" 에서 상나라가 중앙아시아 또는 그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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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두의 지역으로 추정해 보는 고조선의 영역(II):이집트
아래 지난 글에서 편두의 지역에 대해 개괄적으로 살펴 보았다. 이번 글에서부터는 각 지역에 대한 보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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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신왕국의 18왕조 아케나텐 파라오 이후 이집트는 그리스 미케네문명으로부터 독립된 후 그리스와 전투를 한 상황을 아래 글은 보여주는 것 같다.
"During the 5th year of Pharaoh Merneptah, a confederation of Libyan and northern peoples is supposed to have attacked the western delta. Included amongst the ethnic names of the repulsed invaders is the Ekwesh or Eqwesh, whom some have seen as Achaeans, although Egyptian texts specifically mention these Ekwesh to be circumcised. "
Merneptah 파라오(bc 1213-1203 bc) 5년차에, 리비언과 북쪽 부족들의 연합이 서쪽 델타지역을 공격한 것으로 추정된다. 격퇴된 침입자들의 민족 이름중에 Ekwesh or Eqwesh가 포함되었는데, 이들을 어떤 이들은 Achaeans으로 보고 있다. 비록 이집트 문서는 이러한 Ekwesh가 포경수술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특별히 언급하고 있지만. (상기 내용)
(source : Achaeans(Homer),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 카테고리, 고대그리스)
상기 글에서 리비언과 북쪽 부족들의 연합이 이집트를 침입했다 하였다. 이들 침입세력이 누군인지 잠시 살펴 보자. 어쩌면 단군조선의 세력의 일부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리비언은 바로 이집트 나일강 서쪽의 Garamantes세력을 말하지 않나 생각된다.
(4) Garamantes in Lybia
필자는 리비아지역의 Garamantes가 qanat 라는 관개수리 시스템을 가진 고대문명인 것을 서북 아프리카의 Berber족 연구를 하면서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집트와 싸우는 리비아의 세력에 대해 더 궁금해졌다.
"The Garamantes (Ancient Greek: Γαράμαντες, romanized: Garámantes; Latin: Garamantes) were ancient peoples, who may have descended from Berber tribes, Toubou tribes, and Saharan pastoralists[1][2][3] that settled in the Fezzan region by at least 1000 BC[4] and established a civilization that flourished until its end in the late 7th century AD.[5] The Garamantes first emerged as a major regional power in the mid-2nd century AD and established a kingdom that spanned roughly 180,000 km2 (70,000 sq mi) in the Fezzan region of southern Libya. Their growth and expansion was based on a complex and extensive qanat irrigation system (Berber: foggaras), which supported a strong agricultural economy and a large population.
가라만테스족은 적어도 기원전 1000년에 Fezzan지역에 정착한, 베르베르족, Toubou족, 사하라의 유목민들의 후손인 고대 부족들이다. 이들은 문명을 이루어 기원후 7세기말까지 번창했다. 가라만테스는 기원후 2세기 중반에 지역의 주요 세력으로 처음 등장해서 남부 리비아 Fezzan지역 주위 약 18만 제곱킬로 (7만 제곱마일)로 뻗어나간 왕국을 건설했다. 이들의 성장과 확장은 매우 복잡하고 넓은 qanat관개수리 체제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농업경제와 많은 인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상기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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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and prehistory
The Garamantes may have descended from Libyco-Berber tribes, Toubou tribes, and Saharan pastoralists,[1][2][3] who settled in an area of the Fezzan region by at least 1000 BC.[4] At Takarkori rockshelter, Final Pastoral peoples restructured their society and created burial sites for several hundred individuals that contained non-local, luxury goods and drum-type architecture in 3000 BP, which made way for the development of the Garamantian kingdom.[6]
Takarkori rockshelter에서의 마지막 유목민부족은 그들의 사회를 재구성하였고, 수백명이 묻힌 묘지장소를 만들었는데, 이들 무덤속에는 3000년전의, 지역외물건들, 호화스러운 물건들, 드럼형식의 건축물을 포함하였으며, 이것이 가라만테스 왕국으로 발전하는 길을 만들었다. (상기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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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Portion from the Zliten mosaic found in the Villa of Dar Buc Ammera depicting the execution of Garamantian prisoners through damnatio ad bestias in the Amphitheatre of Leptis Magna, c. 70 CE.
The earliest known written record to document the Garamantes dates to the 5th century BC.[1] Herodotus includes the Garamantes in his description of the ancient Libyan tribes, describing them as "a very great nation" who herded cattle and farmed dates.[10] According to Herodotus the Garamantes used four-horse chariots to hunt "Troglodyte Ethiopians"[11] in their quest for slaves.[12] Herodotus states that "the Libyans in the north and the Ethiopians in the south of Libya are aboriginal, the Phoenicians and Greeks are later settlers”; Libya being the Greek name for Africa west of the Nile.[13][14]
가라만테스에 대한 기록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5세기이다. 헤로도투스는 고대의 리비아 부족에 대한 서술에서 가라만테스를 포함하며, 그들은 소를 키우며 농업을 하는 "매우 위대한 국가"라 묘사했다.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가라만테스는 Troglodyte Ethiopians을 노예로 삼기 위해 네마리 말이 끄는 마차(전차)를 이용했다고 한다. 헤로도투스는 말하기를 북쪽의 리비아인과 리비아 남쪽의 에티오피아인들이 원주민이고, 후에 페니키아인, 그리스인이 정착했다고 했다. 리비아는 나일강 서쪽의 아프리카를 말하는 그리스 이름이다. (상기 내용)
(source : Garamantes,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북아프리카/Garamantes)
가라만테스인은 관개수로 체계를 가진 농축문명이며, 네마리 말이 이끄는 전차를 이용하였으며, 봉분속에 호화로운 물건, 지역외 물건 등을 보이며, 문자와 언어를 사용하는 문명의 흔적을 보였다. 적어도 기원전 1000년의 시기에서 시작하였다는 것은 혹시 고조선의 문명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집트에서는 이들을 Nine Bows의 하나로 생각했는데, 활을 쓰는 부족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집트의 투탕카멘 파라오는 sea peoples의 침입을 격퇴했는데, 이집트에서는 침입하는 외국인을 Nine Bows라 BC 3200-3000 시기부터 언급하고 이들을 밟고 있는 동상을 건축하곤 했다. 투탕카멘도 이같은 동상으로 이를 보여 준다. (아래 그림 참조). 그래서 이들이 누군지 잠시 살펴 보고자 한다. 어쩌면 이를 통해 리비아의 가라만테스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5) Nine Bows and Egypt
Nine Bows라는 표현은 이집트에서 기원전 3200년때부터 외국인 세력을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 한다. 즉 이집트를 침입하는 적들을 표현한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하는 적들이 변화하면 그 의미도 변화하는 것이다. (아래 내용 참조)
"The Nine Bows is a visual representation in Ancient Egyptian art of foreigners or others.[2][3] Besides the nine bows, there were no other generic representations of foreigners.[3] Due to its ability to stand in for any nine enemies to Ancient Egypt, the peoples covered by this term changed over time as enemies changed, and there is no true list of the nine bows.[3]
Nine Bows는 외국인 또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고대 이집트의 예술에서 보여주는 표현이다. nine bows외에 외국인에 대한 다른 포괄적인 표현은 없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어떤 아홉의 적들에 대해서도 방어할 수 있었기에, 이 단어에 의해 표현되는 부족들은 적들이 변화함에 따라 변하였고, 이들에 대한 어떤 진정한 리스트도 없다. (상기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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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nces of the nine bows appeared as early as the late predynastic period (3200-3000 BCE). Discovered in Hierakonpolis or Nekhen, here the nine bows were carved on the head of a scepter.[5] As time progressed, the use of the nine bows expanded to other mediums of art..........
nine bows에 대한 사례는 왕조이전의 시기말(3200-3000 BC)까지 올라간다. Nekhen (Hierakonpolis)에서 발견되었는데, scepter(왕권을 상징하는 홀)의 머리에 nine bows가 새겨졌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nine bows의 사용은 다른 예술의 매체에 확대되었다. (상기 내용)
이집트의 고왕국 3왕조의 Djoser 파라오 시기인 기원전 2600년대에는 나일강 상류지역의 Nubians (에티오피아, 수단지역)이 Nine Bows를 지칭하는 대상이 되었다 한다. (아래 내용 참조)
Pharaoh Djoser (r bc 2686-2648 bc, 고왕국, 3왕조)
One of the oldest representations of the nine bows, and the first representation of the nine bows fully developed, is on the seated statue of Pharaoh Djoser. His feet rest upon part of the nine bows, which may have referred to Nubians during his reign because of their use of bows and arrows.[2][7]
nine bows에 대한 가장 오래된 표현 중의 하나이며, 가장 잘 표현된 첫번째 표현은 Djoser파라오의 앉아 있는 동상에 있다. 그의 발은 nine bows의 일부 위에 멈주어 있는데, 이는 그의 재위중에 Nubians(나일강 상류지역(수단,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을 일컬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활과 화살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상기 내용)
이집트 신왕국의 람세스 2세의 시기에도 Nine Bows를 발아래 두는 동상이 있었다. 그런데 이 시기에는 Keftiu인이 포로로 묶여 있는 모습을 그려 놓아, 당시의 Nine Bows가 이들 세력임을 나타낸다 (아래 글 참조)
Pedestal of Ramses II

Alabaster pedestal of Ramses II found in Antinoopolis. Ramses II's feet can be seen on top on the nine bows
The pedestal of Ramses II was found in Antinoopolis, El-Minya, Egypt. It is rectangular in shape and made of Egyptian alabaster. [5] The engravings found on three sides are carved using Bas-relief, which is indicative of the New Kingdom and Ramses II's reign.[5] Along with the nine bows depicted on top of the pedestal underneath Ramses II's feet, the pedestal also includes engravings of Ramses II's cartouche along with his Horus name and legends of Ramses II's rule.[5]
람세스 II의 받침대가 이집트 El-Minya, Antinooplos에서 발견되었다. 모양은 4각형이고 이집트 석고로 만들어졌다. 삼면에 새겨진 양각 무늬는 신왕국과 람세스 II의 시대를 나타낸다. 람세스II의 발아래 받침대의 위에 새겨진 nine bows와 함께, 이 받침대는 람세스 II의 Horus name과 그의 치세 신화와 더불어 람세스 II의 표지판을 새겨 놓았다. (상기 내용)
(source : Nine Bows,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이집트 신왕국)
상기 아비도스에 있는 람세스 II세 신전에 Keftiu가 묶여 있는 사진을 볼 수 있다. Nine Bows의 하나인 전쟁 포로의 모습인데, Keftiu가 누구인지 알아 보자.
(6) Keftiu and Crete
아래 자료에서 고대 이집트자료에서 Keftiu인은 크레타섬을 주로 언급하며, 또한 크레타섬을 포함한 미노언-미케네문명인을 언급하고 있다.
"Keftiu (Middle and Late Egyptian Keft, Keftu, Kaftu, Kafta, Kefdet, Keftju;[1] Old Testament kaphtor; Akkadian kaptaritum; Assyrian kaptara; Ugaritic kptwr, kptr; Mycenaean kapte?[a]) in ancient Egyptian sources referred to the region of Crete and, among other things, its Minoan-Mycenaean inhabitants and trading ships, which had a range as far as Crete.[b]
고대 이집트 자료에서 Keftiu (Kaptara)는 크레타섬지역을 말하였고, 그증에서도 크레타섬까지 포함하는 미노언-미케네 정착민과 무역선박들을 언급한다. (상기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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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graphical attestation
In Amenhotep III's list of Aegean place names, the villages belonging to Keftiu are mentioned: Kenesch (Knossos), Byschty (Phaistos), Amnesch (Amnissos), Keteny (Kydonia) and Leket (Lyktos).
아멘호텝 III의 에게지방이름에서, Keftiu에 속하는 마을들이 언급된다; Kenesch(Knossos), Byschty(Phaistos), Amnesch(Amnissos), Keteny (Kydonia) and Leket(Lyktos). (상기 내용)
Texts from Ugarit mention the ancient Egyptian Memphis as the "hereditary (세습된) land of Crete", together with a geographical description of the location of Crete (kaphtor).
Ugarit 문서는 고대 이집트의 멤피스를 "크레타인의 세습된 땅"이라 언급하며, 크레타의 지리적 위치를 묘사하고 있다. (상기 내용)
(source : Keftiu, wikipedia, 인용출처 : ,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이집트 신왕국)
Ancient Egyptian depictions of the Keftiu (Keftiu에 대한 고대 이집트인의 묘사)
The surviving reliefs from the tombs of Theban officials from the New Kingdom date from the reigns of Hatshepsut to Amenhotep II and show the keftiu as gift bearers. The earliest depictions can be seen in the tomb of Senenmut. There, the beardless representatives of the keftiu wear long black hair in a noble appearance. The brownish-reddish skin color corresponds to that of an Egyptian.
신왕국 시기 Hatshepsut에서 Amenhotep II까지의 치세기간의 테베 관료의 무덤의 조각이 Keftiu를 선물 지참자로 묘사한다. 가장 빠른 묘사는 Senenmut무덤에서 볼 수 있다. 여기서는 Keftiu의 수염없는 모습과 긴 검은 머리의 귀족모습으로 나타난다. 갈색-붉은색의 피부색은 이집트인의 모습이다. (상기 내용)
In the tomb of Amunuser (TT131), the Keftiu, their costume and their gifts are also depicted in an almost culturally accurate manner.[4] In the tomb of Rekhmire, the Cretan envoys were initially depicted with Minoan-Cretan aprons, long open hair and forelocks.[5] Peter Haider dates the vases depicted to the period between 1462 and 1455/50 BC. The subsequent overpaintings, which were carried out by 1436 B.C. at the latest, show the envoys in typical Mycenaean festival style with knee-length aprons decorated with fringes.
Amunuser(TT131)의 무덤에서, Keftiu의 의상과 선물이 문화적으로 거의 정확하게 묘사되었다. Rekhmire의 무덤에서, 크레타인 사절은 미노언-크레타인 앞치마를 두르고, 날리는 긴머리와 앞머리를 가진 것으로 묘사되었다. Peter Haider는 그 항아리들을 1462-1455/50 BC의 시기로 본다. 연이은 덧칠 페인트는 늦어도 1436BC에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둘레를 실로 장식한 무릎 길이의 앞치마를 두른 전통적인 미케네 축제 스타일의 사절 모습을 보여 준다. (상기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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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are many other linkages between Keftiu (Kaphtor), the Philistines, and other civilizations of the Bronze Age. Of particular note are the so-called "Keftiu Cup" found at the Temple/Palace at Knossos, and what appear to be Philistine war helmets on the famous Phaistos Disc.
Keftiu(Kaphtor)와 Philistines과 다른 청동기 시기의 문명의 다른 연계관계도 많다. 그중 특별한 것은 Knossos 궁전/신전에서 발견된 Keftiu Cup이라 불리는 것과 유명한 Phaistos Disc에 있는 Philistine 전쟁 헬멧이다. (상기 내용)
(source : Keftiu, wikipedia, 인용출처 : ,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이집트 신왕국)
상기 내용에서 Keftiu는 크레타섬을 비롯한 미노언-미케네 문명의 사람으로서, 긴머리와 수염없는 검은 머리를 가진 앞치마를 두른 사람들이라 한다. 역시 Nine Bows의 한 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미노언-미케네문명 사람도 수메르인과 같이 검은 머리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상기 글에서 Ugarit 문서는 이집트의 멤피스는 크레타인의 세습된 땅이라 했다 한다. 즉 미노언-미케네문명의 그리스인이 이집트에 진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는 고대 이집트(기원전 2000년대)의 파라오 모습이 편두를 하지 않았나 하는 추정으로 이들이 고조선지역이 아닌가 하는 추정을 했다. 즉 미케네문명이전에는 이집트와 그리스지역이 하나의 문명권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필자는 신왕국의 18왕조 아케나텐왕이 그리스에서 온 세력이 아닌가 하는 추정을 하였는데, 이러한 가능성을 밑받침하는 자료라 생각한다. 리비아의 Garamantes인들도 이들 고조선의 일부가 아닌가 한다.
앞에서 Achaeans이 그리스인이라 했다. 그런데 이집트에 침입한 리비아와 연합한 sea peoples 중에서 포로가 되거나 죽은 자중에 circumcision(포경수술, 할례)을 한 자가 있어, Achaeans이 그리스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문을 가진다 한다. 그래서 이런 관습이 어떤 그룹을 의미하는지 알아 보고자 한다.
(7) Circumcision (포경수술, 할례)
Circumcision(포경수술)은 그리스에서는 안하지만, 이집트인, 페니키아인, 에티오피아인, 시리아인, Cochians등이 했다고 기원전 5세기의 헤로도투스는 말하고 있다. 사하라 아프리카인, 아라비아인, 셈족, 수메르인, 호주 원주민, 폴리네시아, 아즈텍, 마야인 등도 하였다 한다. (아래 자료 참조)
"Circumcision likely has ancient roots among several ethnic groups in sub-equatorial Africa, Egypt, and Arabia, though the specific form and extent of circumcision has varied. Ritual male circumcision is known to have been practiced by South Sea Islanders, Aboriginal peoples of Australia[which?], Sumatrans, and some Ancient Egyptians.[1]
포경수술은 적도이하의 아프리카, 이집트, 아라비아의 몇몇 민족 그룹에서 오래전부터의 뿌리가 있으며, 그 정도와 특수한 형태는 지역에 따라 변화가 있다. 종교적 의례의 포경수술은 남쪽의 바다 섬주민들, 호주의 원주민들, 수마트라인들, 그리고 일부 고대 이집트인들에 의해 행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상기 내용)
Today it is still practiced by Jews, Samaritans, Druze,[2][3] Coptic Christians,[a][4][5] Ethiopian Orthodox,[a][6] Eritrean Orthodox,[a][7] Muslims, and some tribes in East and Southern Africa. Other countries with significant rates of circumcision include the United States, South Korea, and the Philippines.[8][9][10]
오늘날은 아직도 유태인, 사마리아인, 드루즈, 곱틱기독교인, 에티오피아 정통파, 에트리아 정통파, 무슬림, 그리고 동아프리카, 남아프리카의 몇몇 부족들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 상당한 비율로 포경수술을 하는 다른 나라들은 미국, 대한민국, 필리핀이 있다. (상기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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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odotus, writing in the 5th century BCE, lists first of all the Egyptians being the oldest people practicing circumcision then Colchians, Ethiopians, Phoenicians, and Syrians as circumcising cultures.
기원전 5세기에 쓴 글에서 헤로도투스는 모든 이집트인이 포경수술을 하는 가장 오래된 부족으로 첫째로 들고 있으며, 그 다음으로 Colchians (코카서스지역), 에티오피아인, 페니키아인 그리고 시리아인들이 포경수술을 하는 문화가 있다고 하였다. (상기 내용)
(source : History of circumcision,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고대종교관습)
"The history of the migration and evolution of circumcision is known mainly from the cultures of two regions. In the lands south and east of the Mediterranean, starting with Central Sahara, Sudan and Ethiopia, the procedure was practiced by the ancient Egyptians and the Semites, and then by the Jews and Muslims.
이동의 역사와 포경수술의 진화는 두 지역의 문화로부터 주로 알려진다. 지중해의 남쪽 육지지역과 지중해의 동쪽지역에서, 중앙 사하라, 수단, 에티오피아에서 출발하여, 이 수술은 고대 이집트인 그리고 셈족에 의해 행해졌고 그후 유대인과 무슬림에 의해 행해졌다. (상기 내용)
In Oceania, circumcision is practiced by the Australian Aboriginals and Polynesians.[90] There is also evidence that circumcision was practiced among the Aztec and Mayan civilizations in the Americas,[2] but little is known about that history.[27][28]
오세아니아에서는, 호주 원주민과 폴리네시아인에 의해 포경수술이 행해진다. 아메리카의 아즈텍과 마야문명에 의해 포경수술이 행해졌다는 증거가 있는데, 그 역사는 알려진 것이 없다. (상기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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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ultural practice of circumcision may have spread from the Central Sahara, toward the south in Sub-Saharan Africa and toward the east in the region of the Nile.[91] Based on engraved evidence found on walls and evidence from mummies, circumcision has been dated to at least as early as 6000 BCE in ancient Egypt.[93] Some ancient Egyptian mummies, which have been dated as early as 4000 BCE, show evidence of circumcision.[90]: 2–3 [94]
포경수술의 문화적 관습은 중앙 사하라로부터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 그리고 나일강의 동부지역으로 퍼졌다. 벽애 그려진 증거와 미라들의 증거에 의하면, 포경수술은 적어도 고대 이집트에서 기원전 6천년으로 올라간다. 기원전 4천년까지 올라가는 몇몇 고대 이집트 미라들은 포경수술을 한 것을 보여 준다. (상기 내용)
Evidence suggests that circumcision was practiced in the Middle East by the fourth millennium BCE, when the Sumerians and the Semites moved into the area that is modern-day Iraq from the North and West.[27] The earliest historical record of circumcision comes from Egypt, in the form of an image of the circumcision of an adult carved into the tomb of Ankh-Mahor at Saqqara, dating to about 2400–2300 BCE.
기원전 4천년대의 중동에서도 포경수술이 행해진 증거가 있다. 이때는 수메르인과 셈족이 북쪽과 서쪽으로부터 현대의 이라크지역으로 이동했다. 포경수술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약 2400-2300 시기의 이집트 Saqqara지역의 Ankhmahor무덤에 새겨진 이미지 형태이다. (상기 내용)
(source : Circumcision,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고대종교관습)
포경수술의 관습은 기원전 6천년전의 이집트에서 출발하였으며,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도 하였다 한다. 그리고 셈족의 레반트지역, 지중해 남부 사하라 아프리카지역, 나일강 남부와 서부지역 등 광범위하게 퍼졌던 관습으로 기술된다. 어쩌면 고조선의 영역에서 행해졌을 가능성도 있다. 호주 원주민, 폴리네시아인, 아메리카의 아즈텍, 마야문명에서도 행해졌다 한다. 현대에서는 미국, 대한민국, 필리핀에서 아직까지 행해진다 한다.
미노언-미케네문명에서도 행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데, 미이라로 남아 있는 증거가 없어서인지 모르나, 그리스인들은 포경수술은 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어떤 근거로 말하는지 궁금하다.
여하튼 Achaeans과 Ekwesh의 연관성을 알기 위해, Ekwesh의 침입이 있었던 이집트의 Merneptah파라오 시기로 다시 돌아 가자.
"An inscription on the Athribis Stele, now in the garden of Cairo Museum, declares "His majesty was enraged at their report, like a lion", assembled his court, and gave a rousing speech. Later he dreamed that he saw Ptah handing him a sword and saying "Take thou (it) and banish thou the fearful heart from thee." When the bowmen went forth, says the inscription, "Amun was with them as a shield." After six hours the surviving Nine Bows threw down their weapons, abandoned their baggage and dependents, and ran for their lives.
카이로 박물관의 정원에 있는 Athribis 비석에 쓰여진 바에 의하면, 파라오는 쳐들어온다는 보고에 사자같이 화를 내며, 궁정에 모으고 사자후의 연설을 했다. 후에 파라오는 꿈을 꾸었는데, Ptah신이 그에게 칼을 건네주며 이것으로 그들을 쳐부수라 했다. 화살부대가 앞으로 향하였을 때, Amun신이 그들을 보호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6시간후 Nine Bows세력은 그들의 무기를 버리고 그들의 짐과 가족들을 버리고 살고자 도망갔다. (상기 내용)
Merneptah states that he defeated the invasion, killing 6,000 soldiers and taking 9,000 prisoners. To be sure of the numbers, among other things, he took the penises of all uncircumcised enemy dead and the hands of all the circumcised, from which history learns that the Ekwesh were circumcised, a fact causing some to doubt that they were Greek people."
Merneptah파라오는 그가 6천명의 적군을 죽이고 9천명의 포로를 잡으며 침입을 격퇴했다고 말한다. 숫자를 확인하기 위해, 그는 죽은 적군의 비포경수술자들의 성기를 취했고 모든 포경수술자의 손들을 취했다. 이러한 역사로부터 Ekwesh인들이 포경수술을 하였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그들이 그리스 부족이라는 것을 일부가 의심하게 했다. (상기 내용)
(source : Merneptah,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이집트 신왕국)
상기 Merneptah 파라오의 글에서 이 전쟁에서 침입자 사망자 6천명에서 포경수술을 한 자와 안한 자를 구분했다 했다. (상기 자료 참조). 그런데 Ekwesh인들도 포경수술을 하였다 한다. 필자는 이것이 미케네 그리스인들도 포경수술을 한 것을 의미하지 않나 생각한다.
또한 트로이 전쟁 시기에 그리스와 이집트의 깊은 연관관계를 나타내는 기록이 있어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8) Trojan war and Helen of Greece
"Homer mentions an Achaean attack upon the delta, and Menelaus speaks of the same in Book IV of the Odyssey to Telemachus when he recounts his own return home from the Trojan War. Some ancient Greek authors also say that Helen had spent the time of the Trojan War in Egypt, and not at Troy, and that after Troy the Greeks went there to recover her.[22]
호머는 델타지역에 대한 공격을 언급하고 Menelaus Sparta 왕은 오딧세이 4권에서, 트로이전쟁에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Telemachus에게 말할 때, 같은 내용을 언급한다. 어떤 고대 그리스 저자들은 Helen이 트로이 전쟁때 트로이가 아닌 이집트에 머물렀으며,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그리스인들이 그녀를 데리러 이집트로 갔었다고 말한다. (상기 내용)
(source : Achaeans(Homer),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고대그리스)
트로이 전쟁이 있던 시기는 BC 1194-1184 BC기간으로 기원전 12세기에 해당한다. 이때는 스키타이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이시기에도 그리스의 Helen은 이집트에 잠시 피해있던 것을 언급한다. 즉 그리스와 이집트의 밀접한 관계를 말해 준다.
이보다 전의 시기인 이집트 투탕카멘 파라오 시기 sea peoples이 침입해 전투를 하였다는데, 이들 sea peoples이 그리스의 스키타인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후에도 이집트의 델타지역의 일부에 그리스의 식민지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멤피스가 크레타인의 세습지였다는 기록을 우리는 위의 keftiu연구에서 확인했다.
필자는 이집트의 나일델타지역에서 사카(Sakha, Xois의 고대이름)라는 지명을 알게 되었다. (아래 자료 참조) 14왕조시기 즉 힉소스에 의한 이집트지배이전의 시기의 일이다. 즉 사카에 의한 나일델타지역의 지배를 암시하는 자료이다. 힉소스(Hyksos)도 레반트지역의 Canaanites(가나안 사람)라 하는데, 이스라엘지역에서 필자는 Dan city, Dan tribe의 흔적을 보았다. 서양사에서는 이스라엘인을 스키타인으로 보고 있다.
"Sakha, also known by the ancient name of Xois (Arabic: سخا, Koine Greek: Ξόις, Coptic: ⲥϦⲱⲟⲩ[1] Strabo xvii. p, 802; Ptolemy iv. 5. § 50; Ξόης, Stephanus of Byzantium s. v.) is a town in Kafr El Sheikh Governorate of Egypt. Located near the center of the Nile Delta, it is a city of great antiquity, identified with the ancient Egyptian city of Ḫꜣsww(t) (Khasut or Khaset).
.....
The Fourteenth Dynasty of Egypt consisted, according to Manetho, of 76 Xoite kings. This dynasty immediately preceded that of the Hyksos during the Second Intermediate Period. It seems possible, therefore, that Xois, from its strong position among the marshes of the Nile Delta formed by the intersecting branches of the river, could have held out during the occupation of the Delta by the Hyksos, or at least compromised with the invaders by paying them tribute.
This hypothesis, however, is not shared by most Egyptologists today, who believe that the Fourteenth Dynasty was based in Avaris in the eastern Delta.[4]
(source : Sakha,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고대이집트)
또한 앞에서 Danuna에 관해 살펴본 아래자료에서 보듯이, 이집트의 20왕조는 sea peoples이 가나안지역에 정착하도록 허락했다고 한다. 가나안 지역은 기원전 11세기에 sea peoples에 의해 대부분 통제되었다고 말한다. 이 시기의 sea peoples이 스키타인이 활발히 활동한 시기이다. 즉 상기 사카의 이름이 나일강 델타지역에 14왕조 시기에 있었다는 것은 스키타인, 사카인이 이 지역을 점하였다는 증거라고 본다.
그들은 동지중해의 암흑시대와 관련이 있는 침입자들과 관련이 있는데, 리비언과 다른 sea peoples들과 함께 연합하여 기원전 1207년 이집트를 공격했으며, 람세스 III세의 지배시기에도 그랬다. 이집트의 20왕조는 이들이 가나안 지방에 정착하는 것을 허락했는데, 가나안지역은 기원전 11세기에 sea peoples에 의해 대부분 통제되었다. (source : Danuna, wikipedia, 인용출처: 본블로그, 카테고리, Cimmerians/Gomer)
이상과 같은 점들을 고려하면, 트로이 전쟁시기 그리스의 Helen이 이집트에 잠시 피신했다는 것은 당시의 그리스세력이 이집트 델타지역에도 식민지가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판단한다.
즉 이제까지의 연구를 통해, Achaeans, Danuna, Danaoi, Ahhiyawa, Ekwesh, sea peoples, scythians이 모두 연계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들이 Adana란 이름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필자가 추정한 바와 같이, BC 12c부터 단군조선의 왕(색불루)이 된 흉노의 세력인 스키타인이 왕성한 해상활동을 하는 sea peolples로 나타나 이집트와 그리스 지역에서 활동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이들 스키타인인 sea peoples이 Adana지역에 진출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래서 광개토태왕은 고조선지역인 이들 지역에 수묘인제를 두었다 추정된다.
이제 Achaeans에 대한 검토의 마지막 순서로 그리스 신화에서의 내용을 살펴 보자.
(9) Greek mythology (그리스 신화)
"In Greek mythology, the perceived cultural divisions among the Hellenes were represented as legendary lines of descent that identified kinship groups, with each line being derived from an eponymous ancestor. Each of the Greek ethne were said to be named in honor of their respective ancestors: Achaeus of the Achaeans, Danaus of the Danaans, Cadmus of the Cadmeans (the Thebans), Hellen of the Hellenes (not to be confused with Helen of Troy), Aeolus of the Aeolians, Ion of the Ionians, and Dorus of the Dorians.
그리스 신화에서는, Hellenes중에 문화적으로 분리되는 것은 확인된 친족 그룹이 각기 이름있는 조상을 따라 내려온 전설적인 혈통들을 나타내는 것이다. 지역 그리스인 이름은 각각의 조상들을 기념하기 위해 이름지어진 것이다: Achaeans의 Achean, Danaans의 Danaus, Cadmeans (Thebans)의 Cadmus, Helleses의 Hellen (Troy의 Helen과 혼동말것), Aeolians의 Aeolus, Ionians의 Ion, 그리고 Dorians의 Dorus. (상기 내용)
(source : Achaeans(Homer),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고대그리스)
그리스의 각 지역의 부족이름은 전설적인 조상들의 이름을 따라서 지어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상기 기록에서 Achaeans의 Achaean, Danaans의 Danaus라 했다. Achaean, Danaus란 인물이 존재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아래 자료에서 Danaus는 이집트, Cadmus는 페니키아 출신이며, 그리스의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즉 이 시기에 한 문화권이 이집트, 레반트, 그리스에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Danaus에 대한 자료 (본블로그,카테고리, 고대이집트)를 잠시 살펴 보면, Danaus는 이집트왕 Belos의 아들(Aegyptus, Danaus)중 하나로서, 많은 자손을 가진 것으로 신화에 나오는데, 미케네 문명은 식민지로서 이집트, Rhodes섬, 등을 가지고 있었다는 Strabo의 기록이 있었다 한다.
그리스에 테베시가 있는데, 이집트에도 테베시가 있다. 즉 이는 같은 조상 페니키아의 Cadmus의 후손들이라는 의미이다. Cadmus는 포세이돈과 리비아의 후손이며 테베시의 founder라 한다. 따라서 이집트와 그리스, 레반트지역, 리비아지역의 밀접한 관계를 나타내며, 그동안 필자의 추정이 맞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판단한다.
"Cadmus from Phoenicia, Danaus from Egypt, and Pelops from Anatolia each gained a foothold in mainland Greece and were assimilated and Hellenized. Hellen, Graikos, Magnes, and Macedon were sons of Deucalion and Pyrrha, the only people who survived the Great Flood;[23] the ethne were said to have originally been named Graikoi after the elder son but later renamed Hellenes after Hellen who was proved to be the strongest.[24] Sons of Hellen and the nymph Orseis were Dorus, Xuthos, and Aeolus.[25] Sons of Xuthos and Kreousa, daughter of Erechthea, were Ion and Achaeus.[25]
According to Hyginus, 22 Achaeans killed 362 Trojans during their ten years at Troy.[26][27]"
페니키아의 Cadmus, 이집트의 Danaus, 아나톨리아의 Pelops, 모두 그리스 본토에서 발판을 얻었으며, 동화되고 헬레니즘화되었다. Hellen, Graikos, Magnes, Macedon은 Deucalion 와 Pyrrha의 아들들이며, 대홍수에서 살아 남은 유일한 사람들이다; ethne는 원래 큰아들을 따라 Graikoi라 불렸으나, 후에 Hellen이 가장 강력한 자로 증명됨에 따라 Hellenes로 이름이 바뀌었다. Hellen과 님프 Orseis와의 아들들은 Dorus, Xuthos, Aeolus이다. Xuthos와 Kreousa(Erechthea의 딸)의 아들은 Ion 과 Achaeus이다. Hyginus에 의하면, 22명의 Achaeans이 트로이전쟁 10년동안 362명의 트로이인을 죽였다 한다. (상기 내용)
(source : Achaeans(Homer),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고대 그리스)
상기 글에서 페니키아, 이집트, 아나톨리아, 그리스 본토와의 연관성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이제까지 살펴본 Danuna, Achaeans, Ahhiyawa, Ekwesh, Danaoi가 모두 연관성을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Achaeans이 트로이전쟁에서 트로이인의 10배이상의 전투력을 가졌다고 판단되는 상기 Hyginus의 언급은 Achaeans이 전투력이 강한 스키타인임을 보여준다고 판단된다.
이제까지 아단성이 있는 Adana지역이 오래전부터 Danuna, Danaoi, Achaeans, sea peoples, 미노언-미케네문명, 스키타인과 관련된, 어쩌면 고조선 지역이라는 가능성을 가늠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제는 광개토태왕 시기에 현실적으로 튀르키예의 Adana지역에 진출했는가를 살펴 보자.
4) 훈족의 Cappadocia, Armenia, Syria 진출
훈족이 이 지역에 진출한 것은 아래 글에서 자세히 살펴 보았다. 여기서 간단히 언급한다면, 아래 위키자료와 같다.
"In 395 the Huns began their first large-scale attack on the Eastern Roman Empire.[62] Huns attacked in Thrace, overran Armenia, and pillaged Cappadocia. They entered parts of Syria, threatened Antioch, and passed through the province of Euphratesia.[63]
395년 훈족은 대규모의 공격을 동로마에게 가하기 시작했다. 훈족은 트라키아를 공격하고 아르메니아를 침범하고 카파도키아를 유린했다. 그들은 시리아의 일부로 진입했으며, 안티오크를 위협했으며, 유프라테스지역을 지나갔다. (상기 내용)
(source : Huns,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Huns)

Cappadocia was the border of Byzantine between 7c-10c (source : Wikipedia)
상기 지도를 보면 훈족의 395년 공격 루트에서 Cilicia지역이 포함되고 있다. 즉 카파도키아에서 안티오크로 가는 길에 이 지역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광개토태왕 시기에 이 지역에 있는 아단성, 잡진성을 공취했을 가능성이 높다.

Diocese Orientis (of the East) in 400 AD
필자는 이전의 암문성 관련 글에서 광개토태왕의 진로는 상기 지도의 시리아에서 안티오크를 훨씬 지나 Amman city인 Philadelphia(암문성)까지 공취한 것으로 추정했으며, 더 나아가 그 남쪽의 페트라(Petra)까지 진출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아래 필자의 글 참조)
5) List of Comites Orientis

Original dioceses of the Roman Empire, created by emperor Diocletian (284–305).
- Quintus Flavius Maesius Egnatius Lollianus (330–336)
- Felicianus (335–?)
- Nebridius (354–358)
- Domitius Modestus (358–362)
- Iulianus (362–363)
- Aradius Rufinus (363–364)
- Eutolmius Tatianus (c. 370)
- Tuscianus (381)
- Philagrius (382)
- Proculus (383–384)
- Icarius (c. 384)
- Irenaeus (431–435)
- Ephraim of Amida (c. 522–c. 525)
- Asterius (587–588)
- Bacchus (588–589)
- Bonosus (c. 609–610)
(source : Diocese of the East,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아나톨리아)
상기 기록을 보면 특히 384년이후 431년까지 공백으로 되어 있다. 광개토태왕의 시기는 392-413년 시기이다. 따라서 광개토태왕의 이 지역 공취후에 장수왕 시기 430년까지 계속 고구려의 지역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 이후 일시적 회복을 하였다가 435년 다시 빼앗겼을 것이다. 그래서 장수왕 시기 476년에 이 지역에 있는 아단성이 중수되었을 것이다. 이후 522년이후 부터는 백제의 성왕(523-554), 위덕왕 (554-598), 무왕 (600-641)의 시기이며, 신라의 법흥왕 (514-540), 진흥왕 (540-576), 진평왕 (579-632) 시기이다. 고구려가 상대적으로 약한 시기이다. 따라서 이 지역은 신라와 백제의 싸움터가 되었을 것이다.
6) 훈족의 사사니언 페르시아 수도 Ctesiphon 진출
훈족의 동쪽 공격은 고구려군의 일부로서, 반달족, 고트족 등의 서쪽 공격도 고구려의 공격으로 필자는 판단한다.
" First large scale attack on Rome and Persia
In 395 the Huns began their first large-scale attacks on the Romans. In the summer of that year, the Huns crossed over the Caucasus Mountains, while in the winter of 395, another Hunnic invasion force crossed the frozen Danube, pillaged Thrace, and threatened Dalmatia.[56] Sinor argues that these two events were likely not coordinated,[57] but Kim believes they were.[48] The forces in Asia invaded Armenia, Persia, and the Roman provinces in Asia.
395년 훈족은 로마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시작했다. 이해 여름 훈족은 코카서스산맥을 넘었고, 이해 겨울에는 다른 훈족 공격군은 얼은 다뉴브강을 건너 트라키아를 유린하고 달마티아를 위협했다. Sinor는 두 사건이 협동되지 않았다 하나, Kim은 협동되었다 믿는다. 아시아의 훈족 병력은 아르메니아, 페르시아를, 그리고, 아시아의 로마지방을 침범했다 (상기 내용)
One group crossed the Euphrates and was defeated by a Roman army, while two armies, recorded in later sources as under the leadership of Basich and Kursich, rode down the Euphrates and threatened the Persian capital of Ctesiphon. One of these armies was defeated by the Persians, while the other successfully retreated by Derbend Pass.[57]
한 그룹은 유프라테스강을 건넜으나, 로마군에 의해 패배했으며, 다른 두 그룹은, Basic과 Kursich의 지휘아래였던 것으로 후일 자료에 의하면, 유프라테스강을 따라 내려가 페르시아의 수도 크테시폰을 위협했다. 이중 한 그룹은 페르시아에 의해 패배했고, 다른 그룹은 Derbend Pass를 통해 성공적으로 퇴각했다. (상기 내용)
A final group of Huns ravaged Asia Minor.[58] The Huns devastated parts of Syria and Cappadocia, threatening Antioch.[59] The devastation was worse because most Roman forces had been moved to the West due to Roman power struggles there.[60]
훈족의 마지막 그룹은 소아시아를 유린했다. 훈족은 시리아의 일부와 카파도키아를 황폐화했고 안티오크를 위협했다. 황폐화는 더욱 심했는데, 이는 대부분의 로마군이, 서쪽에서의 권력다툼 때문에 서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었다. (상기 내용)
(source : History of Huns,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Huns)
필자는 웨일즈, 잉글랜드 등 서로마제국의 일부 영토를 400-410년 사이 잃어버린 것도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공격으로 판단한다. (아래 글 참조)
광개토태왕이 정복한 백제의 각미성은 Wales의 Caer Gybi fort이다
I. 머리말 그동안 고구려 광개토태왕이 백제의 각미성(광개토태왕 비문 속의 이름)(관미성:삼국사기 속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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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상기 소아시아 공격, 메소포타미아 공격도 고구려군의 공격으로 판단한다. 단 크테시폰은 사사니언 페르시아 수도로서 동신라의 수도로 보는 바, 금성인지 아닌지는 확실하게 판단이 안선다. 위키피디아의 다른 기록에서는 훈족의 크테시폰 공격이 점령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스스로 물러났다는 언급을 고려하면, 신라의 대한 고구려의 공격이지만, 백제에 대한 공격과는 그 적대적 태도가 다른 것으로 보인다.
III. 결 론
광개토태왕 시기에 백제로 부터 공취한 아단성과 잡진성이 간연 10가의 수묘인제도의 대상의 성이 된 것은 이 지역이 조상들의 무덤 즉 고조선 선조들의 무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따라서 지난 글의 백제 책계왕 시기의 아단성에 대한 글과 달리, 이 지역이 고조선의 지역일 수 있는가에 대해 심층적으로 연구했다.
위의 연구에서 본 바와 같이 Adana지역은 고대로부터 역사가 있는 지역으로,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Danuna라 불렀다 하며, 이러한 이름은 그리스의 Achaeans과 연관되고, 이들은 미노언-미케네 문명과 연관된다 하였다. 더 나아가 히타이트 문서에서 언급되는 아나톨리아 서쪽의 Ahhiyawa, 그리고 이집트의 Ekwesh란 단어와 연관된다 하였다. 그리고 그리스 신화를 통해 나타난 바에 의하면, 리비아지역, 이집트 델타지역과 연관이 있으며, 이는 Danuna인들이 미노언-미케네 문명, 이집트 델타지역, 아나톨리아 서쪽 지역, 리비아지역, 레반트지역 등에 진출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들은 또한 sea peoples이라는 것과, 스키타인의 활동이 강하였던 고조선의 영역이 아니었나 하는 판단을 하게 한다. Danuna, Danaoi, Danaus 등의 Dan과 관련되어 보이는 이름등이 나타나는 것도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또한 훈족의 이 지역 진출과 이 지역의 로마 관리 파견의 공백시기 내용은 이 지역이 고구려의 점령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정을 하게 한다. 따라서 역사적으로도 이 지역의 고구려의 진출 가능성을 강력하게 보인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튀르키예의 Adana castle은 광개토태왕이 공취한 아단성이라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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