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백제

비류가 세운 미추홀의 비류국은 어디인가?

CG PARK 2023. 10. 20. 08:48

I. 머리말

 

백제의 비류는 동생 온조와 달리 주변의 건의에도 불구하고 남으로 더 내려가 바닷가 미추홀에서 나라를 세웠다 하였다. 그러나 습하고 짠 물 때문에 온조가 십제 나라를 세운 지역을 와서 보고 그 융성함에 자결을 하고, 비류의 백성을 흡수한 온조는 나라이름을 백제로 바꾸었다 하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간단하게 기술한 역사의 내용이다.

 

그런데 아래 청화수님 (아래 유튜브 내용 참조)은 비류에 대해 일반인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른 뉴앙스를 전달한다. 그것도 사서 내용을 언급하면서이다. 즉 비류는 고주몽이 활약할 때 많은 활동을 한 것 같은 내용이다. 고주몽이 송양의 비류국을 정복할 때 매우 힘들었다 한다. 그만큼 어렵고 힘든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비류국, 비류 이름 등을 거론하며, 이들간에 어떤 연관관계가 있지 않나 했다. 

 

https://youtu.be/nwExLfEwIac?si=Whr3YSIjVPcxEoCo

 (청화수, 백제 진짜 시조 비류?)

 

II. 비류가 건국한 미추홀 지역 추정의 근거

 

필자가 비류의 미추홀 지역 추정에 나선 것은 아래의 비디오 내용 때문이다. 즉 청하수님이 일본서기의 내용을 바탕으로 처음 듣는 이야기를 소개했기 때문이다. 

 

https://youtu.be/FbxFQ5ZmWX0?si=gabYN4vq3VHhO7jE 

(청화수, 소서노와 일본 역사의 숨겨진 관계)

 

 

상기 청하수님의 비디오에서 소서노와 일본 역사의 숨겨진 관계 내용이라며, 일부 일본서기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즉 소서노 일행으로 보이는 세력이  남으로 육지로 내려와 신라를 거쳐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 갔다고 한다. 이는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 들어 보지 못한 내용이다.

 

우선 소서노 일행은 고구려나 백제 세력이다. 그런데 남으로 신라를 거쳐 갔다는 내용이다. 이는 신라가 백제나 고구려의 속국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청하수님은 신라의 2대 남해왕이 이 시기의 왕으로서 소서노 일행이 신라에 머물며 일시적인 왕이 되지 않았나 추정한다. 

 

 

III. 신라는 이태리 반도에 있었다. 

 

신라의 초기 역사는 매우 의문이 많은 시기이다. 우선 박혁거세의 정체가 그렇다. 박혁거세는 사지가 절단 되는 죽음을 맞이했다. 여러 은유적 표현이 적혀 있다. 그리고  이 시기의 신라가 필자는 이태리 반도에 있었다 추정한다. (아래 필자의 글 참조). 패수를 건넌 위만이 도읍한 진공상하장, 왕험성을 필자는 스위스 지역으로 추정한다. 패수는 독일의 라인강을 추정했다. (아래 필자의 글 참조). 즉 진한(秦韓)지역이 이곳 이태리 반도가 아닌가 한다. 왕망이 세운 신(新)나라의 신(新), 신라(新羅)의 신(新), 그리고 진흥왕이 점령하고 설치한 신주(新州)의 신(新)은 새로운 땅이라는 의미이기보다, 신(新)이라 불리는 지역이름인 것으로 판단된다. 이 신(新)지역이 이태리반도 북부지역이 아닌가 한다. 중국사에서도 지역이름을 말하는 단어가 매우 많았다. 수, 당, 모두 지역이름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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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漢)나라와 조선의 경계인 패수는 독일의 라인강인가?

제목 : 한(漢)나라와 조선의 경계가 되는 패수(浿水)는 독일의 라인강(Rhine River)인가? 우리는 패수에 대해 여러 기록이 있음을 안다. 그 중에서도 한나라와 조선 (위만조선)과 관련된 기록을 살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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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이태리반도에도 있었다

I. 서론 그동안 신라의 위치에 대해 고심해왔다. 파사이사금이 있으니 페르시아 지방에 있는 것 확실하여, 그동안 페르시아 역사로 비교하며, 신라가 사산왕조 페르시아라는 것을 밝혔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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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2대 남해왕은 차차웅이란 부차적인 왕이름을 가졌는데, 이는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었다 한다. 카스트제도의 브라만 같은 계급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남해왕은 일찌기 석탈해에게 권한을 주며, 다음 왕으로의 준비를 시켰다. 실질적인 권력의 소유자가 석탈해였는지 모른다. 그런데 아래 글에서 보듯이 석탈해는 금관가야의 김수로왕에게 바다 건너 해전 원정을 간 것 같다. 그리고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 즉 금관가야와 신라(당시 계림)은 바다로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신라의 위치가 이태리반도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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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야한국, 가라인 금관가야는 튀니지아의 카르타고인가?

머리말 '한단고기 고구려본기 중 협보가 마한의 산중에 살았는데 그를 따라서 사는 자가 수백여집이나 되었다. 여러해 동안 흉년이 들어 떠돌아 다니다가 장혁을 알게 되었다. 이에 무리를 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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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왕 부인 허황옥과 카르타고의 Dido 여왕

제목 : 김수로왕 부인 허황옥과 카르타고의 Dido 여왕 I. 머리말 우리는 김수로왕의 부인이 된 허황옥이 인도에 있는 아유타국의 공주가 와서 금관가야의 부인이 되었다고 일반적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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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신라가 이태리 반도에 있었다는 이러한 필자의 추정을 고려할 때,  청하수님이 언급한 일본서기에 나오는 소서노일행의 남으로 신라를 거쳤다는 내용은 소서노일행이 이태리반도인 신라를 거쳤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필자는 이미 위에서 고구려의 주몽의 홀본부여가 북부여인 덴마크지역이라 추정했다. 즉 소서노가 북부여인 덴마크지역에서 남으로 이동하여, 이태리 반도에 있는 신라를 거치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당연히 육지로 이동한 경로이다.

 

그리고 상기 일본서기의 내용에서 소서노와 비류의 일행은 남으로 신라를 지나 바다를 건너 동쪽으로 갔다고 했다. 이태리반도에서 동쪽으로 바다는 아드리아해이다. 그리고 아드리아 바다를 건너 동쪽으로 가면 발칸반도의 그리스지역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온조로 추정되는 옥타비우스(아우구스투스)와 비류로 추정되는 마크 안토니우스의 결정적 전투인 악티움해전이 이 발칸반도의 그리스지역에서 벌어진다. 비류로 추정되는 마크 안토니우스는 악티움해전에 패하여 결국 자살하게 된다. 그리하여 '십제'라 일컫던 온조의 나라는 이들 지역을 흡수하여 '백제'라 했다 한다. '이십제', '오십제'도 아닌 '백제'는 '십제'시의 영토보다 훨씬 큰 지역을 통합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온조와 소서노일행의 관계를 먼저 살펴 보자. 

 

III.  온조와 소서노의 관계

 

상기 비류에 관한 청하수님의 유튜브 비디오에서는 비류가 고주몽 시기에 많은 활동을 하였을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송양의 나라를 복속하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래서 비류가 많은 힘을 주몽에게 보태어 비류국이라 이름 지었는지 모른다고 암시하고 있다. 그래서 비류에 관련하여 알려면, 온조왕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들의 모친 소서노에 대해서도 알 필요가 있다.  

 

https://youtu.be/JMtZrTA9dVM?si=3bjKoI_PU3PdKXdr

 (청화수, 온조와 소서노의 관계)

 

상기 온조와 소서노의 관계에 관한 청하수님의 해석은, 온조는 비류와 갈라섰을 때, 소서노와 같은 세력이 아니었다는 것을 여러 가지 삼국사기 기록의 암묵적 내용을 참고하여 말하고 있다. 삼국사기는 워낙 추상적인 내용으로 묘사해 이 시기를 자세히 알 수 없고, 대충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하기 온조 기록에서 BC 6년 호랑이가 성안으로 들어 오고, 이어 왕의 노후가 죽었다. 이어서 천도를 하는 상황이 계속된다. 뭔가 불안정한 상황을 말하고 있다. 청하수님은 이런 상황이 비류-소서노 세력과  온조세력과의 충돌로 일어 나는 불안정한 상황이라 해석했다. 할머니가 남장을 하고 나타났다는 기록도 있는데, 이는 소서노가 무장을 하였다는 해석을 하였다. 즉 온조가 비류 세력을 흡수하면서 초래되는 혼란으로 해석한다. 필자도 십제가 백제가 되는 상황에서 작은 나라가 더 큰 나라를 흡수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十三年春二月 호랑이가 성 안으로 들어오다 (BC 6)

十三年 왕의 모후가 죽다 (BC 6)

十三年夏五月 하남 위례성으로 천도를 계획하다 (BC 6)

十三年秋七月 하남 위례성으로 백성을 이주시키다 (BC 6)

十三年秋八月 마한에 사신을 보내 도읍 옮긴 사실을 알리다 (BC 6)

十三年秋九月 성과 대궐을 쌓다 (BC 6)

十四年春一月 도읍을 옮기다 (BC 5)

十四年春二月 백성을 위로하고 농사를 장려하다 (BC 5)

十四年秋七月 한강 서북방에 성을 쌓고 주민을 이주시키다 (BC 5)

十五年春一月 궁궐을 새로 쌓다 (BC 4)

十七年 낙랑이 침입하여 위례성을 불태우다 (BC 2)

十七年夏四月 사당을 세우고 국모를 제사지내다 (BC 2)

.......

二十四年秋七月 웅천책을 세우자 마한이 항의하다(AD 6)

二十五年春二月 한성의 민가에서  를 낳다 (AD 7)

二十六年秋七月 마한 병합을 계획하다 (AD 8)

二十六年冬十月 마한을 기습하여 합병하다 (AD 8)

二十七年夏四月 마한을 멸망시키다 (AD 9)

 

또한 온조는 상기 기록에서 도읍을 옮기는 것이 두번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처음에는 하남 위례성으로 BC 6년 도읍을 몲긴다. 그전에는 위례성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BC 5년과 BC 4년에 다시 도읍을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BC 5년에는 근처에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BC 4년은 한강 서북방에 주민을 이주 시키고 BC 4년 궁궐을 새로 쌓았으니, 한강 서북방근처로 옮긴 것이다. BC 2년에 낙랑이 침범하여 위례성을 불태웠다 하니, 낙랑과 위례성은 가깝다고 추정된다. 그리고 AD 7년 갑자기 한성이 언급된다. 그러나 한성이 수도였다는 언급은 없다. 

 

필자는 BC 6년 수도로 옮긴 위례성이 발칸반도 위쪽(Sirmium or Salona)에 있지 않나 한다. (아래 필자의 글 참조). 비류의 세력과 가까이 있는 지역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불안정한 상황에서 다시 BC 4년 한강 서북방으로 다시 도읍을 옮기지 않나 한다. 이는 스페인의 서북방에 있는 지역으로 판단된다. 필자는 최근에 한강 (=한수)을 스페인의 에브로강(=중국사의 장강)의 지류인 아라곤강으로 추정했다. (아래 필자의 글 참조). 그리고 한성은 프랑스의 Clermont Ferrand으로 추정했다. 

 

https://lostcorea.tistory.com/1556

 

서양사 자료를 통한 위례성 추정 : S(III)

앞의 두글에서 필자는 위례성과 한산, 한산성, 한성 등에 대해서 백제와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살펴 보았는데, 그 중에서 위례성은 한성과는 다른 위치임을 알았다. 그래서 먼저 위례성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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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lostcorea.tistory.com/1558

 

로마사 자료를 통한 위례성, 한산의 추정 : S(IV)

부제 : 낙랑군 동부도위의 낙랑군은 발칸반도 트라키아(동예)의 좌측에 있었다. 부제 : 동예는 발칸반도의 트라키아다. 그동안 낙랑을 알아 보기 위해 다키언에서 출발해서 키메리언, 마사게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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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lostcorea.tistory.com/1805

 

중국사의 장강은 스페인의 에브로강이다.

부제 1: 한수는 에브로강의 지류 아라곤강이다. 부제 2: 파촉지역은 피레네산맥 서쪽지역이다 필자는 지난 글에서 중국의 장강이 프랑스의 르와르강이 아닌가 했다. 그러나 황하는 이 당시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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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온조와 옥타비우스

 

그래서 필자는 로마사와 비교하여 온조, 비류, 주몽의 관계를 추론해 보고자 한다. 필자는 로마사가 백제와 연결된다고 추정한다. 로마사와 이 당시 고주몽, 온조, 비류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 고주몽 : Julias Caesar, 암살의 공통점

- 온조 : 옥타비아누스, 고주몽과 Julias Caesar 양자의 공통점

- 비류 : 마크 안토니우스, 고주몽과 Julias Caesar의 지원, 그리고 자살의 공통점

 

- 백제 온조의 건국지역 대방의 위치 : 요수인 론강의 주위,  말갈과 낙랑과의 대결

 

- Augustus(옥타비우스)의 이베리아 점령, 아나톨리아 점령, 발칸반도 지역 머뭄

 

- 우태, 구태 직함이 존재 :  백제 시조,  부여 왕자 

 

- 우태, 구태와 아우구스투스 직함의 공통성

 

 

V. 비류와 마크 안토니우스

 

(1) 고구려와 백제의 연속성? 

 

- 고주몽, 동명성왕을 시조로 추모하는 백제 

- Julius Caesar와 Octavianus Augutus의 연속성 

 

(2) 비류와 마크 안토니우스

 

- 비류는 고주몽의 비류국 정벌에 일조 가능

- 마크안토니우스는 Julius Caesar의  Gaul지역 정복에 참여

- 줄리우스 시저는 마크 안토니우스에게 이태리지역  통치 맡김

- 이태리북부 지역 (온조 건국지역)에서 육지로 남쪽으로 내려간

 이태리 지역은 당시 신라 (BC 57 -)

- 비류, 소서노 일행은 이후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 이동 (일본서기 내용) 건국 (BC 18)

- 이태리반도에서 아드리아해를 건너 그리스지역 Nicopolis지역으로 이동?

- 이곳에서 옥타비아누스와 마크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와의  악티움 해전(BC 31)

- 즉 온조가 비류와 소서노의 미추홀지역을 전투후에 합병?

- 패전후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자살

- 비류의 자살과 소서노의 죽음

- 클레오 파트라(소서노)와 Julius Caesar(고주몽)의 아들 존재: 둘 사이의 결혼 존재

- 클레오파트라(소서노)와 마크 안토니우스(비류)의 동행, 일본서기의 내용과 동일

 

VI. 미추홀의 비류국과 그리스의 Nicopolis

 

상기 일본 서기 내용에서 비류 관련세력은 신라를 지나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 갔다 했다. 이곳이  그리스의 Nicopolis가 아닌가 한다. 즉 이태리반도는 신라지역이 되는 것이다.  필자는 이태리반도에 신라가 있었다는 것을 여러 거지 상황을 분석하여 주장하였다. 

 

그리스의 Nicopolis지역은  비류가 건국했던 바닷가의 미추홀 지역처럼 땅이 습하고 짠물이 있는 곳이며, 농사가 불가한 곳이다. 

 

Map of Roman cities founded in Greece (source : Nicopolis, Wikipedia)

 

Communities participating in the synoecism of Nikopolis and the boundaries of the territory

 

VII. 맺음말

 

워낙 많은 이슈가 걸린 주제라 임시적인 결론을 내는 방향으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그러나 신라를 이태리 반도로 추정하는 필자는 이 일본서기의 내용이 주는 의미는 크다고 본다. 즉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비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으며, 관련 국내 자료가 거의 전무한 만큼, 로마사 자료가 많이 참조가 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로마의 줄리어스 시져가 고주몽이 되는 주제, 아우구스투스가 온조인가 하는 문제, 그리고 비류가 마크 안토니우스인가 하는 문제는 더욱 많은 연구를 요하는 방대한 주제이다. 물론 필자는 심증을 가지고 있고, 상기에 열거한 몇가지 가능성있는 조건을 보이지만, 구체적인 연구는 미래를 기약한다.

그리고 클레오파트라가 소서노인가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있는 조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조건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픽션이 개입해 있어서 진실을 알기 어렵다 판단된다. 또한 로마사를 미화하는 사가들이 진실을 밝히기 보다는 왜곡하는 경우가 많아 더욱 진실을 알기 힘들다. 그런데 필자는 클레오파트라가 자살하지 않고, 인도서부지역으로 도주하여 거기서 생을 마쳤다는 기록도 보았다. 일단 소서노에 대해서는 과제로 남기고자 한다. 그러나 비류와 같이 행동한 그 당시의 로마사에서는 마크 안토니우스가 유일하고, 또한 클레오파트라가 줄리어스 시져와 사이에 낳은 아이가 정통 계승자라며, 지금의 지중해변에 접한 중동지역에서 활동을 한 기록이 있는 것은 소서노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훗날 옥타비아누스는 이 계승자라는 어린 아이를 죽인다.

 

그러나 안토니우스가 이태리를 통치하도록 율리우스 캐사르가 맡긴 것은 비류가 남쪽으로 이동하여 신라를 거친 후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 갔다는 일본서기의 내용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마크 안토니우스 이야기와 일치한다. 정말 역사는 암흑의 역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기록 하나만으로도 한반도 주변의 역사 추정은 허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