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고구려

광개토태왕 비문의 송성(松城)은 어디인가?

CG PARK 2026. 10. 1. 13:45

I. 서 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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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이 백제로부터 공취한 성 중에서 송성이 있다. 송성의 송(松)은 소나무송자이다. 즉 소나무가 많이 있는 성이라는 것이다. 소나무가 많은 성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이곳이 주위에 비해 소나무가 유난히 많아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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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고트족왕 Alaric I을 광개토태왕으로 추정한다. 그래서 그의 원정 행로를 따라가며, 광개토태왕의 공취성을 찾아 보고 있다. 그런데 우연히 소나무가 많은 성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고, 또한 조그만 해안가의 성이지만 전략적인 위치에 있는 성을 알게 되었다. 이들의 위치는 북이태리와 아드리아해안의 크로아티아에 있는 성으로서, Alaric I이 Castle of Vecchio(in Verona)(신성)과 Castle of Pollenzo (남소성)에서 패한 후 동쪽으로 이동하여 발칸반도로 이동하는 중간의 위치에 있다.(아래 자료 참조)

 

또한 훈족은 395년 겨울 다뉴브강을 건너 발칸반도에 침입했다. 이후 396-398년기간 동안 백제의 왕은 항복하며 용서를 빌었다. 이 기간에 위례성이 함락되지 않았나 한다. 필자는 위례성을 Sirmium 에 위치하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아래 글 참조) 따라서 이 지역에 가까운 크로아티아 달마티아해안은 광개토태왕의 진격로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필자는 크로아티아 남쪽해안의 Dubrovnik성도 광개토태왕의 비문에 나오는 성(두비압잠(豆比鴨岑) 한(韓) : 간연 5가)이라 추정했다.  다뉴브강가에 있는 Serbia의 Golubac castle이 광개토태왕 비문의고립반성(古入般成)이라 추정했다. 또한 가까운 Venice에 광개토태왕으로 추정되는 Alaric I이 진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 자료 참조)

 

Beginning as early as AD 166–168, the Quadi and Marcomanni destroyed the main Roman town in the area, present-day Oderzo. This part of Roman Italy was again overrun in the early 5th century by the Visigoths and, some 50 years later, by the Huns led by Attila.

(source : Venice,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블로그 (lainfos), 카테고리, 이태리)

또한 달마티아지역은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고트족의 지배(Odoacer, 동고트족의 Theodore the Great (문자왕으로 추정))가 476-535기간동안 있었다는 아래 기록은 이 지역의 광개토태왕 진입을 옹호하게 된다. 

 

The collapse of the Western Empire left this region subject to Gothic rulers, Odoacer and Theodoric the Great, from 476 to 535, when it was added by Justinian I to the Eastern (Byzantine) Empire.

(source : History of Dalmatia,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크로아티아)

 

 

따라서 이 근처에 있는 송성이 광개토태왕의 비문에 나오는 송성이라 판단할 수 있다. 

 

 

https://lainfos.tistory.com/512

 

광개토태왕이 싸운 신성(新城)과 남소성(南蘇城)은 알프스산맥 아래 있었다.

I. 머리말 광개토태왕이 후연과 싸운 신성과 남소성의 싸움은 광개토태왕이 전투에서 패배한 기록으로 유일하다. 그래서 이러한 특징에 근거하여 신성과 남소성의 위치를 추정하고자 한다.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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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자료를 통한 위례성 추정 : S(III)

앞의 두글에서 필자는 위례성과 한산, 한산성, 한성 등에 대해서 백제와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살펴 보았는데, 그 중에서 위례성은 한성과는 다른 위치임을 알았다. 그래서 먼저 위례성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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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lostcorea.tistory.com/1558

 

로마사 자료를 통한 위례성, 한산의 추정 : S(IV)

부제 : 낙랑군 동부도위의 낙랑군은 발칸반도 트라키아(동예)의 좌측에 있었다. 부제 : 동예는 발칸반도의 트라키아다. 그동안 낙랑을 알아 보기 위해 다키언에서 출발해서 키메리언, 마사게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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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lostcorea.tistory.com/1459

 

광개토태왕 비문을 통한 정벌지역 추정 (updated)

광개토태왕 비문을 보면 광개토태왕이 공취한 성이름이 나온다. 특히 백제구역에서 공취한 성이름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수묘인제도에 나오는 수묘인 출신지 성(城)이름과 지역이름도 광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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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본 론

 

이제 송성을 아드리아 해안에서 찾아 보자. 아드리아해는 현재의 크로아티아가 서쪽에 접한 바다이다.  이곳에는 많은 섬들이 있다. 

 

1. 송성

 

이곳 아드리아 해안에서 소나무인 Pine tree가 있는 곳은 Hvar island, Korcula island이다. 따라서 하나씩 관련 자료를 보자. 

 

 

1) Hvar island

 

(1) Geography

 

Hvar섬의 위치는 아래 지도에서 보듯이 Dalmatia해안 앞에 있다. 

 

The island of Hvar lies in the Southern Adriatic Sea, off the Dalmatian coast, southern Croatia

 

그리고 그 위치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즉 Hvar 섬은 이태리와 지중해를 가로 지르는 아드리아해의 무역을 통제하는 중요한 거점 역할을 했다. 그러므로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하였고 신석기시대에는 독특한 도자기를 만드는  Hvar culture를 형성하였으며, 이어서 일리리언이 거주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384년에 여기 오늘날 Stari Grad라는 곳에 Pharos라는 식민지를 두었으며,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의 하나이다. 그들은  Stari Grad Plain에서 농사도 지었으며, 여기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의 장소가 되었다. 중세에는 Hvar타운이 베네티언 제국의 주요 해군기지가 되면서 중요해졌다. (아래 내용)

 

Hvar's location at the north east centre of the Adriatic sailing routes has long made this island an important base for commanding trade up and down the Adriatic, across to Italy and throughout the wider Mediterranean. It has been inhabited since prehistoric times, originally by a Neolithic people whose distinctive pottery gave rise to the term Hvar culture, and later by the Illyrians. The ancient Greeks founded the colony of Pharos in 384 BC on the site of today's Stari Grad, making it one of the oldest towns in Europe. They were also responsible for setting out the agricultural field divisions of the Stari Grad Plain, now a UNESCO World Heritage Site. In medieval times, the town of Hvar rose to importance within the Venetian Empire as a major naval base.

(source : Hvar,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블로그 (lainfos), 카테고리, 크로아티아)

 

The southern coast of Hvar near Sveta Nedjelja

 

Hvar Island Croatia 

 

(2) Pine Trees in Hvar Island

 

Hvar섬은 기원전 3세기에, 그리스 시인 Apollonius of Rhodes은  이 섬을 Piteyeia라 언급했는데, 이런 이름은 소나무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Pitys에서 연유되었다고 한다.  즉 오랜 역사속에서 소나무 숲이 존재하는 섬으로 알려졌다. (아래 내용 및 그림 참조)

 

As a Greek colony, the island initially was known as Paros (Πάρος) because it was colonized by Greeks from the island of Paros in Aegean,[19] and later as Pharos (Φάρος) "lighthouse". However, it is not clear if the name really comes from the Greek word for lighthouse. It was more likely an Illyrian word "Fara" that in modern Albanian, translates to seed!since it is unlikely that the lighthouse preceded the name for the island.

 

During the 3rd century BC, the Greek poet Apollonius of Rhodes referred to it as Piteyeia – a name derived from the Greek word pitys, meaning pine 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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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var섬은 (동서)길이가 약 68km(42.25마일)로서, Brac, Vis, Korcula섬 사이에 있으며, 아드리아해의 달마티아 해안에 근접해 있는 크로아티아 섬이다. 동서로 높은 화강암 산등성이 뻗어 있으며, 이 지역에서 드물게 넓고 기름진 해안평야가 있으며 맑은 샘물이 있다. 언덕에는 소나무로 덮혀 있으며, 농업지역에는 포도나무, 올리브나무, 과일 과수원, 아벤더농장이 있다. 날씨는 온화한 겨울과 따뜻한 여름의 특징이 있으며, 많은 시간 햇볕이 있다. 크로아티아 섬 중에서 4번째로 인구(2021년 10,678명)가 많은 섬이다.  (아래 내용)

Hvar (pronounced [xvâːr]; Chakavian: Hvor or For; Greek: Φάρος, romanized: Pharos; Latin: Pharia; Italian: Lesina) is a Croatian island in the Adriatic Sea, located off the Dalmatian coast, lying between the islands of Brač, Vis and Korčula. Approximately 68 kilometres (42.25 mi) long,[1] with a high east–west ridge of Mesozoic limestone and dolomite, the island of Hvar is unusual in the area for having a large fertile coastal plain, and fresh water springs. Its hillsides are covered in pine forests, with vineyards, olive groves, fruit orchards and lavender fields in the agricultural areas. The climate is characterized by mild winters, and warm summers with many hours of sunshine.[2] The island has 10,678 residents according to the 2021 census,[3] making it the fourth most populated of the Croatian is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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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섬은 전형적인 지중해성 식물이 자라고 있으며, 높고 가파른 지역에는 잡목으로 헐벗어 있으나,  낮은 경사지에는 Holm oak나무, Aleppo 소나무와 Black pines(소나무) 등의 소나무 숲으로 되어 있다. (아래 내용)

 

The island has a typical Mediterranean vegetation, mostly bare with woody scrub at higher, steeper elevations, turning to pine forests on the lower slopes with holm oak, Aleppo pines (Pinus halapensis) and black pines (Pinus nigra dalmatica).

(source : Hvar,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블로그 (lainfos), 카테고리, 크로아티아)

 

 Pine Trees in Hvar Island

 

(3) History in Hvar Island 

 

그럼 Hvar섬은 역사속에서 로마의 영역에 속했나 알아 보자. 

 

Hvar섬의 최초 거주자는 신석기시대인으로 이 섬과 지중해 동부해안을 연결하는 무역통로를 만들었다. Hvar 문화 (3500-2500 BC)가 있었으며, BC 4세기에는 그리스인이  식민지화했다. BC 384년에는 그리스 식민화에 저항하는 Hvar원주민에 의해 초청받은 Iadasinoi전사와 그들의 동맹을 그리스 Pharos가 격퇴했다. 이 전쟁후 Pharos가 발행한 최초의 동전은 뱀에 대항하여 서있는 염소를 그려 넣었다. 이 두 동물은 Pharian Greeks (염소)와 일리리언 (뱀)을 상징한다. 보다 많은 병력에 대한 이들의 승리는 가장 오래된 비문에 살아 있다. (아래 내용)

 

The first inhabitants of Hvar Island were Neolithic people who probably established trade links between Hvar and the eastern shores of the Mediterranean. The Hvar Culture lasted from 3500 to 2500 B.C. Beginning in the 4th century BC, the Greeks colonized the island.[16] In 384 BC the Greek colonisers of Pharos defeated Iadasinoi warriors and their allies, invited by the Hvar indigenes in their resistance to the Greek colonization. The first coins which Pharos minted after the war depicted a goat standing opposed to a snake. The two animals symbolize the Pharian Greeks (goat) and the Illyrians (snake).[17] Their victory over much larger forces was immortalized in one of the oldest known inscriptions of Croatia.

 

두번째 Illyrian war이후 기원전 219년에 로마공화국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스 이름 Pharos는 Pharia로 변경되었다. 서로마제국의 멸망이후 비잔틴제국의 소속이 되었다.  (아래 내용 참조)

Following Roman victory in the Second Illyrian War against Demetrius of Pharos, the island became a part of the Roman Republic in 219 BC and the Greek name Pharos was changed to Pharia. After the fall of the Roman Empire in the west, the island was under the control of the Byzantine or Eastern Roman Empire. The population increased in the Late Antiquity with an abundance of archaeological finds. A large number of new villa rustica in Stari Grad Plain and also on the previously vacant eastern shores were built.

 

이후 중세 초기에 슬라브족이 이 섬에 진출했다. 7세기 전반기에 Narentines이 이 섬을 차지했다. 베네티언 성원들은 남으로 항해하는 동안 이 섬의 Narentine 해적에 의해 위협 받았다.  11세기에 이 섬은 크로아티아왕국에 속하게 되었다. 12세기에는 베니스공화국이 포도나무와 포도주 경작을 들여와 중세의 이 섬의 주요 산업으로 꽃피웠다.  이 섬은 다시 비잔틴의 지배, 크로아티아왕국, 항가리의 지배하에 있게 되었다. 1331년 베니스인들은 해적의 위협으로부터 이 섬을 보호했다. (아래 내용)

 

In the early Middle Ages, Slavic tribes occupied the island. In the first half of the 7th century the Narentines took over the island. Venetian sailors saw the island while sailing towards the south and were threatened by the Narentine pirates from the island. In the 11th century the island joined the Kingdom of Croatia. In the 12th century, the rise of the Republic of Venice brought vines and wine cultivation which blossomed into a major industry for the island in the Middle Ages. The island eventually again fell under Byzantine rule, and then under the Kingdom of Croatia and Hungary. In 1331 the Venetians put the island under protection from threats of piracy.

 

(source : Hvar, wikipedia,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블로그 (lainfos), 카테고리, 크로아티아)

 

상기 기록에서는 언급이 없으나, 이 섬이 포함된 달마티아지역은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고트족의 지배(Odoacer, 동고트족의 Theodore the Great (문자왕으로 추정))가 476-535기간동안 있었다는 아래 기록은 짚고 넘어 가자. 

The collapse of the Western Empire left this region subject to Gothic rulers, Odoacer and Theodoric the Great, from 476 to 535, when it was added by Justinian I to the Eastern (Byzantine) Empire.

(source : History of Dalmatia,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크로아티아)

 


(4) Hvar Fortress

 

Hvar섬에는 그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현재 남아 있는 성곽은 Fortica Fortress 혹은 Spanish Fortress라 불리는 Venetian 형태의 성곽이 있다. 따라서 이 성곽이 오랜 역사 속의 잔재가 있는지 살피는 것이 송성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관건이다. 특히 로마의 성곽이라는 잔재가 필요하다. 

 

a) Fortica Fortress

 

이 성은 해변에서 100미터 높이의 산등성이에 있다 한다. (아래 자료 참조)

The Fortica, also known as the Spanish Fortress or Tvrdalj, stands on the ridge above Hvar Town on the island of Hvar in Croatia, at an elevation of approximately 100 metres above the waterfront. Climb at sunset for panoramic views over red-roofed town, yacht-filled harbor, and Pakleni Islands.

 

아래 그림을 보면 원형 형태의 Towers가 보인다. 그러나 그 형태가 베네치언 형식으로 상당히 두터운 원형 감시탑이다. 그리고 자료에도 12세기-16세기의 시대에 건축한 것으로 설명된다. 

 

Fortica (Spanish) Fortress in Hvar town (source : wikipedia )

 

Aerial view of Hvar fortress in Croatia

 

Hvar old fortress

 

아래 그림에서는 사각 타워만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모습으로 건축하기 전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아래에서 산정상까지 사각 감시탑과 성벽이 이어져 있다. 현재는 없는 모습이다. 

 

 

아래 Spanish Fortress란 이름은 스페인식의 성곽모습이라 해서 붙힌 이름이라 한다. 이 지역에 스페인인이 진출한 역사는 없다. 즉 베네치언이 원형타워를 세웠는데, 그 건축양식이 스페인의 성곽을 닮아서 붙힌 이름일 것이다. (아래 설명 참조) 그리고 그 이전에 존재하던 성곽자리에 지었다 한다. 상기 그림에서 이미 추정한 바와 같다. 

 

A Brief History of the Spanish Fortress

 

We are starting with a very brief history, and you can find much more information from other sources if you’re interested in a more detailed history of this stronghold. The Spanish Fortress (Fortica) was built in the 16th century during Venetian rule. Its main goal was to protect Hvar Town from potential attacks.

 

The older, medieval fortress already existed in the same place, and the new fort was built on top of these remnants. The architectural style was influenced by Spanish military architects, and that’s how this fortress in Hvar got its name. The Spanish Fortress played an important role in guarding the town and its harbor from Ottoman and pirate attacks. It has been restored and maintained over the past centuries, and it’s still proudly standing today as a testament to the rich history of Hvar Island. (source : Life and Ventures)

 

b) Examples of Spanish castles

 

그럼 실제 스페인의 성곽은 어떤 모습일까? 아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원형 감시탑의 모습을 가진 성곽인 것이다. 필자는 이들 성곽이 고구려로 판단되는 서고트왕국 시기의 성곽이 아닌가 한다. (아래 필자의 글 참조). 아니면 그후 리모델링한 것일 수 있다. 아래 Loarre castle은 원형타워와 사각타워가 공존하고 있다. 서고트왕국이 점령하기 전에 스페인지역 일부는 서로마제국의 영토였다. 

Avila city (source : Wikipedia)

 

 Loarre Castle, Spain (source : wikipedia)

 

https://lainfos.tistory.com/58

(제목 : 남프랑스와 이베리아반도에 있던 서고트왕국은 고구려이다)

 

 

즉 베네치언 성곽 모습은 왜 원형 타워를 취했는지 필자는 아직 모르겠다. 이들이 바다에서 활동하는 해양민족이란 점이 뭔가 조상들과 연관이 있지 않나 싶다. 베니스의 주민 오리진이 어디인가에 대한 설명은 Migration(4-5세기 게르만족의 이동시기)시대에 다른 로마지역에서 피난온 사람들의 집합이라 언급한다. 그러나 이 설명도 궁색하다. 뭔가 감추려는 의도가 보인다. 달마티아 해안의 섬들이 기원전 3500년전의 Hvar culture가 있는데, 이와 가까운 베니스에는 이와 관련 역사가 없다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한 베니스지역은 고트족의 왕 Alaric I의 원정경로에 있었다. 베니스의 성이 광개토태왕 비문의 한 성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이후 베니스를 포함한 이태리와 달마티아지역은 고트족의 지배하에 있었다. 때문에 고트족 양식인 원형타워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이후 진입한 비잔틴의 Justinian I (백제 성왕 추정)은 고트족의 건축물을 무너뜨리고 다시 건축했다 한다. 그래서 그 잔재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3세기의 베네티아 공화국의 건축물은 고딕양식 (고트족 양식)이라 한다. 여기에 필자의 베네티아 공화국의 정체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후일 이에 대한 연구 기회가 있을 것이다. 

 

 

c) Old remains of Spanish Castle in Hvar island

 

아래에서는 단편적인 사진으로써 이 성곽의 역사적 잔재를 알아 보고자 한다. 

 

Remains of Roman Castle's Tower

 

위 그림에서 사각 감시탑이 나타난다. 베네치아 공화국이 건축하기 전의 잔재가 아닌가 한다. 로마나 비잔틴제국의 감시탑일 수 있다. 

 

Remains of Old castle (right side)

상기 그림 오른쪽에 있는 Ruins은 상당한 시간을 지낸 모습이다. 로마시대의 그것이 아닌가 한다. 

 

Remains of Roman Castle's Tower

 

상기 그림에서도 우측에 사각 타워가 보인다.  중앙의 건축물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베네치아 공화국 이전의 모습으로 판단된다. 

 

Remains of Roman Castle's Tower

상기 그림의 오른쪽 담은 그 쌓은 모습이 매우 오래된 양식을 보인다. 필자는 이러한 성축 모습이 고조선의 시대에 많이 나타난다고 판단한다. 또한 켈트문화에서도 많이 보인다. 

 

 

d) Beach side old remains of Hvar island

 

Hvar섬은 산등성에 있는 성곽 모습이외에도 Beach에 성벽을 둘러싼 모습이 잔존한다. 아래 그림에서 그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이는 화강암으로 된 섬의 모습과 더불어 방어적 성곽의 모습이다.  베네치언 제국의 수군기지였다 하니 이해가 간다. 한편 BC 3500부터 있었던 오랜 역사를 고려해 볼때, 예전부터 있던 것의 일부일 수도 있다고 본다. 

 

 

Hvar섬 Beach에 있는 Ruins (자료 : 인터넷)

 

이상의 모습과 Hvar섬에 대한 역사를 볼 때, 이 Fortica Fortress는 송성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2) Korcula (island)

 

다음은 역시 소나무 숲이 많은 Korcula섬에 대해 알아 보자. Korcula섬은 Hvar섬의 바로 남쪽에 위치해 있다. (아래 지도 참조)

 

source : Google map

 

 

(1) Pine Tress in Korcula Island

 

Korcula 섬도 소나무숲으로 우거져 있는지 자료를 통해 확인해 보자.

 

이 섬은 소나무 숲을 포함한 지중해 식물군이 우거지고 있었다. (아래 자료 참조)

 

Main settlements on the island are towns of Korčula, Blato and Vela Luka. Villages along the coast are Brna, Račišće, Lumbarda and Prižba; Žrnovo, Pupnat, Smokvica and Čara are located inland. The island is divided into municipalities of Korčula, Smokvica, Blato and Lumbarda. The climate is Mediterranean; an average air temperature in January is 9.8 °C (49.6 °F) and in July 26.9 °C (80.4 °F); the average annual rainfall is 1,100 mm (43.3 in). The island is largely covered with Mediterranean flora including extensive pine fore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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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세기에 Korcula에 진출한 그리스인들은 이 섬을 Black Korkyra라 이름지었는데, 그들의 고향과 이섬의 많은 소나무를 따라 지은 이름이라 한다. (아래 내용 참조) 즉 기원전 6세기부터 소나무 숲이 유명하였던 것이다. 

 

Melaina Korkyra (Greek: Μέλαινα Κόρκυρα, lit. 'Black Korkyra') was the ancient Cnidian Greek colony founded on Korčula.[11] Greek colonists from Corfu formed a colony on the island in the 6th century B.C. The Greeks named it "Black Korkyra" after their homeland and the dense pine-woods on the island. Greek artifacts, including carved marble tombstones can be found at the local Korčula town museum.....

(source : Korcula, wikipedia,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크로아티아)

 

 

아래 사진들은 Korcula 섬의 울창한 소나무 숲을 보여 준다.

 

 Pine Tress in Korcula Island Beach (source : Internet)

 

(2) 오랜 역사 속의 Korcula

 

Ancient history

 

According to legend, the island was founded by Trojan hero Aeneas or his friend Antenor.[6]

 

The island was first settled by Mesolithic and Neolithic peoples. There is archaeological evidence at the sites of Vela Spila[7] and at Jakas Cave near the village of Žrnovo. The findings at Vela Spila are on display at the Center for Culture in Vela Luka. The fate of these peoples is not known but the sites do provide a window into their way of life.

 

전설에 의하면, 이 섬은 트로이의 영웅 Aenaeas 또는 그의 친구 Antenor에 의해 설립되었다 한다. (상기 내용 참조)

트로이 전쟁에서 패한 후 트로이 왕족들은 피난길에 나선다. 그 중의 하나인 Aenaeas는 카르타고에 들러 Dido와의 염문이 있었으나 이태리의 라틴지역으로 떠난다. 결국 이들이 로마공화국을 세운 사람들의 선조가 되었다 한다.

 

그러나 트로이 전쟁은 BC 13-12 세기경 있었으며, 라틴공화국이 세워진 것은 BC 753년이다.  로마공화국은 BC 330년 시작되었으므로, 상당한 세월의 격차가 있다. 따라서 자기들의 선조가 트로이의 Aenaeas라는 것을 내세워 미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참고로 Etruscan 문명은 기원전 900년경 시작되었는데, 이들이 늑대의 젖을 먹는 로물루스 동상을 만들었다. Etruscan은 Proto-Celtic이며 스키타인이다.

 

브리튼도 그들의 조상이 트로이의 Aenaeas와 연관있다 주장한다. Aenaeas는 시실리, 크레타 섬등도 들른 것으로 말하여진다. 즉 그의 피난 경로가 다양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 지역의 전설도 이러한 다양한 피난 경로의 한 지역일 수 있다고 본다.

 

참고로 Korcula섬에서 Hvar Culture (BC 3500-2500)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한다. 따라서 상기 전설은 아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상기 글에서도 중석기 신석기시대의 정착민이 이 섬의 첫번째 정착민이라 했다. 

 

 

The second wave of human settlement was by Illyrians,[8] documented around 1,000 BC.[9] They were semi-nomadic tribal people living from agriculture. There are numerous old stone buildings and fortresses (gradine) left behind by the Illyrians.[10]

 

이 섬에의 두번째 인류 정착 흐름은 일리리언에 의한 것이며, 기원전 1000년경으로 문서에 나타난다. 그들은 반농반목부족으로 농사를 짓고 살았다. 일리리언들에 의해 많은 석조건물과 요새가 남아 있다. (상기 내용)

 

A stone inscription found in Lumbarda (Lumbarda Psephisma) and which is the oldest written stone monument in Croatia,[12] records that Greek settlers from Issa (Vis) founded another colony on the island in the 3rd century BC. The two communities lived peacefully until the Illyrian Wars (220 BC to 219 BC)[13] with the Romans.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오래된 Lumbarda의 돌기념비문에 의하면, Vis섬의 그리스 정착민들이 이 섬에 기원전 3세기경 식민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두 집단은 로마와의 일리리언 전쟁(220-219 BC)까지는 평화롭게 살았다 한다. (상기 내용)

 

The island became part of the Roman province of Illyricum[14] after the Illyrian Wars. Roman migration followed and Roman citizens arrived on the island. Roman villas appeared through the territory of Korčula and there is evidence of an organised agricultural exploitation of the land. There are archaeological remains of Roman Junianum[15] on the island and old church foundations.[16]

In 10 AD, Illyricum was split into two provinces, Pannonia and Dalmatia.[17] Korčula became part of the ancient Roman province of Dalmatia.

 

이 섬은 일리리언 전쟁이후 로마 지역이 되었다. 로마인들이 들어 오고 로마식 빌라가 Korcula전 지역에 나타났다. 조직화된 농업 경작 증거도 있다. 로마의 유적들도 닜다. 기원후 10년에 일리리아 지역은 파노니아와 달마티아로 나누어졌다. Korcula지역은 달마티아지역에 속하였다. (상기 내용)

 

중세시대에는 6세기에 비잔틴의 지배가 되었다. 6-7세기의 대이동은 슬라브족의 침입을 초래하였다.  (아래 자료 참조)

Middle Ages

In the 6th century it came under Byzantine rule. The Great Migrations of the 6th and 7th centuries brought Slavic[18] invasions into this region. Along the Dalmatian coast the Slavic peoples including the Croats poured out of the interior and seized control of the area of the Neretva Delta, as well as the island of Korčula, which protects the river mouth. The Christianisation of the Croats began in the 9th century, but the early Croatian rural inhabitants of the island may well have fully accepted Christianity only later; in the early Middle Ages the Croatian population of the island was grouped with the pagan Narentines or Neretvians, who quickly learned maritime skills in this new environment and became engaged in piracy against Venetian trade ships.

 

(source : Korcula, wikipedia,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크로아티아)

 

 

상기 기록에서도 역시 언급이 없으나, 이 섬이 포함된 달마티아지역은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고트족의 지배(Odoacer, 동고트족의 Theodore the Great (문자왕으로 추정))가 476-535기간동안 있었다는 아래 기록을 또한 짚고 넘어 가자. 

 

The collapse of the Western Empire left this region subject to Gothic rulers, Odoacer and Theodoric the Great, from 476 to 535, when it was added by Justinian I to the Eastern (Byzantine) Empire.

(source : History of Dalmatia,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크로아티아)

 

 

(3) Korcula Fortress

 

상기의 오랜 역사에 비해 현재 남아 있는 성곽은 베네치언 시대의 아래 성벽을 제외하고는 별로 없다. 아래 그림은 원형 타워를 가진 성벽의 모습을 보인다. 

 

Korcula island

 

Korcula island

 

 

그러나 아래 그림은 또 다른 오래된 성곽이 있음을 보여 준다. 전통적인 칼춤, Moreska를 추는 모습이다. 

 

전통적 칼춤(Moreska)을 추는 Traditional festival in Korcula (source : wikipedia)

 

그래서 더 수소문해 본 결과 Korcula섬의 서쪽에 Hum Fortress 잔재가 있다. 

 

Hum Fortress Ruins in west side of Korcula island

 

 

상기 그림은 성벽과 옛 성곽의 잔재를 보여 준다. 

 

 

 

 

인터넷에서 찾은 상기 사진들은 성곽의 존재를 보여 준다. 그러나 어느 시대의 것인지 모르겠다. 그 규모가 그리 큰 것 같지는 않다. 원형 비슷한 감시탑은 보이나 그리 오래 된 것 같진 않다. 사각 감시탑은 모이지 않는다. 

 

 

 Hum Fortress Ruins in Korcula Island

 

상기 돌담 잔재들은 그 축조 양식이 매우 오래된 것임을 보여 준다. 필자는 이런 양식이 고조선으로 추정되는 켈트족 양식으로 많이 보아 왔다. 

 

 

이상으로 Korcula 섬에서의 성곽을 살펴 보았으나, 로마시대나 고트족의 성곽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즉 소나무가 많은 섬임에도 불구하고, 송성에 해당하는 성곽의 모습은 볼 수 없다는 것이다. 

 

 

 

III. 결 론

 

이상의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송성은 Hvar섬에 있는 Fortica (Spanish) Fortress가 아닌가 한다. Hvar 섬이나 Korcula섬 모두 신석기시대부터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현재의 남아 있는 성곽의 모습을 볼 때, 로마시대의 사각 타워가 있고, 베니치언 공화국 시기에 재건축한 모습의 원형타워가 공존하는 Hvar섬의 성곽이 광개토태왕 비문의 송성이 아닌가 한다. 물론 두 섬 모두에 소나무숲이 울창하게 있는 것은 송성이 될 수 있는 필요조건이라 하겠다. 

 

지중해 식물 중에 소나무가 포함되고 있으나, 이 섬들에  특히 소나무 숲이 많은 점, 그리고 이 지역 주위 베니스에 광개토태왕으로 추정되는 고트족의 Alaric I왕이 원정 경로가 된 점, 그리고 광개토태왕 비문에 나오는 고립반성이  Serbia의 Golubac castle으로 추정되는 점, 그리고 비문의 두비압잠성이 달마티아 해안 남쪽에 있는 Dubrovnik castle로 추정되는 점 등이 상기 지역의 송성 추정에 더 설득력을 더해 주고 있다고 판단한다. 

 

첨언 : 일부에서 광개토태왕 비문에 송성이 없다고 말하는데, 필자는 김덕중 저 태왕의 꿈이란 책 187페이지 본문 23에 송성이 나와 있는 것을 근거로 하였습니다. 비문이 훼손된 부분이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상기 책은 전문성을 가진 것으로 판단됩니다. (아래 사진 참조)

 

 

****************************   참고 자료   **************************************

 

 I. 광개토태왕 비문에 나타난 고구려가 공격한 백잔(백제)의 성 이름

 

 

 

"백잔(百殘)과 신라(新羅)는 옛부터 속민(屬民)으로서 조공(朝貢)을 해왔다. 그런데 왜가 신묘년(391년) 이래로 바다를 건너와 백잔과 ▨▨와 신라를 격파하고 신민(臣民)으로 삼았다. 영락(永樂) 6년(396년) 병신에 왕께서 친히 군사를 이끌고 백잔국을 토벌하셨다. 우리 군이 (3자 불명)[29] 하여 영팔성(寧八城), 구모로성(臼模盧城), 각모로성(各模盧城), 간저리성(幹氐利城), ▨▨성, 각미성(閣彌城)[30], 모로성(牟盧城), 미사성(彌沙城), ▨사조성(▨舍蔦城), 아단성(阿旦城), 고리성(古利城), ▨리성(▨利城), 잡진성(雜珍城), 오리성(奧利城), 구모성(句牟城), 고모야라성(古模耶羅城), 막▨▨▨▨성(莫▨▨▨▨城), ▨이야라성(▨而耶羅城), 전성(瑑城), 어리성(於利城)[31], 농매성(農賣城), 두노성(豆奴城), 비▨▨리성(沸▨▨利城), 미추성(彌鄒城), 야리성(也利城), 태산한성(太山韓城), 소가성(掃加城), 돈발성(敦拔城), ▨▨성, ▨루매성(▨婁賣城), 산나성(散那城), 나단성(那旦城), 세성(細城), 모루성(牟婁城), 우루성(于婁城), 소회성(蘇灰城), 연루성(燕婁城), 석지리성(析支利城), 암문▨성(巖門▨城), 미성(味城), ▨▨▨▨▨▨▨리성, 취추성(就鄒城), ▨발성(▨拔城), 고모루성(古牟婁城), 윤노성(閏奴城), 관노성(貫奴城), 삼양성(彡穰城), 증발성(曾拔城), 유▨노성(儒▨盧城), 구천성(仇天城), ▨▨▨성을 공취(攻取)하고, 그 수도를 … 하였다. 백잔(百殘)이 의(義)에 복종하지 않고 감히 나와 싸웠다. 왕이 위엄을 갖추고 크게 노하여 아리수(阿利水)를 건너 정예병을 보내 그 수도를 압박하였다. ... 중심을 공격하고 ... 나누어 성을 포위하였다. 이에 잔주(殘主)[32]가 곤란하고 급박해져, 남녀 생구(生口) 1천 명과 세포(細布) 천 필을 바치면서 왕에게 무릎 꿇고, 스스로 이제부터 영구히 왕의 노객(奴客)이 되겠다고 맹세하였다. 태왕은 (백잔주가) 이전에 미혹에 빠져 저지른 허물을 은혜로이 용서하고, 이후 순종해 온 정성을 기특히 여겼다. 이에 58성 700촌을 획득하고 백잔주(百殘主)의 아우와 대신 10인(大臣)을 데리고 수도로 개선하였다."

 

(자료 : 광개토왕릉비, 나무위키)

 

 

0. 영팔성(寧八城)

1. 구모로성(臼模盧城),

2. 각모로성(各模盧城),

3. 간저리성(幹氐利城),

4. ▨▨성,

5. 각미성(閣彌城)

6. 모로성(牟盧城),

7. 미사성(彌沙城),

8. ▨사조성(▨舍蔦城),

9. 아단성(阿旦城),

10. 고리성(古利城),

11. ▨리성(▨利城),

12. 잡진성(雜珍城),

13. 오리성(奧利城),

14. 구모성(句牟城),

15. 고모야라성(古模耶羅城),

16. 막▨▨▨▨성(莫▨▨▨▨城),

17. ▨이야라성(▨而耶羅城),

18. 전성(瑑城),

19. 어리성(於利城),

20. 농매성(農賣城),

21. 두노성(豆奴城),

22. 비▨▨리성(沸▨▨利城),

23. 미추성(彌鄒城),

24. 야리성(也利城),

25. 태산한성(太山韓城),

26. 소가성(掃加城),

27. 돈발성(敦拔城),

28. ▨▨성,

29. ▨루매성(▨婁賣城),

30. 산나성(散那城),

31. 나단성(那旦城),

32. 세성(細城),

33. 모루성(牟婁城),

34. 우루성(于婁城),

35. 소회성(蘇灰城),

36. 연루성(燕婁城),

37. 석지리성(析支利城),

38. 암문▨성(巖門▨城),

39. 미성(味城),

40. ▨▨▨▨▨▨▨리성,

41. 취추성(就鄒城),

42. ▨발성(▨拔城),

43. 고모루성(古牟婁城),

44. 윤노성(閏奴城),

45. 관노성(貫奴城),

46. 삼양성(彡穰城),

47. 증발성(曾拔城),

48. 유▨노성(儒▨盧城),

49. 구천성(仇天城),

50. ▨▨▨성

 

 

 

 

자료 : 태왕의 꿈, 김덕중, 덕산서원 2014

 

**공격하여 취한 성

 

1)구모려(로)성(臼模盧城)- 1. 구모로성(臼模盧城),

2)약모려(로)성(各模盧城)- 2. 각모로성(各模盧城)

3)여한궁리성

4)이(리)성(利城)

5)각미성(閣彌城)- 5. 각미성(閣彌城)

6)모려(로)성(牟盧城)-6. 모로성(牟盧城)

7)미사성(彌沙城)- 7. 미사성(彌沙城)

8)고사조성(古舍蔦城)-8. ▨사조성(▨舍蔦城

9)아차(且)성 - 아단성 ((阿旦城)

10)고리성(古利城)- 10. 고리성(古利城),

11)곤초성

12)잡미(彌)성 - 잡진성(雜珍城)

13)오리성(奧利城)-13. 오리성(奧利城)

14)구모성(句牟城)-14. 구모성(句牟城)

15)고수용성

16)라성 (羅城)

17)부산성(負山城)

18)미성(味城)- 39. 미성(味城)

19)가고룡라성

20)양성(楊)

21)취곡성(就谷城)-

22)우산성(禹山城)

23)사수성(沙水城)

24)고입(립)반성(古入般城)

25)용리조성

26)야리성(也利城)-24. 야리성(也利城)

27)태산한성(太山韓城)- 25. 태산한성(太山韓城),

28)순여성

29)수입노성

30)보려성

31)루매성(婁賣城) -29. ▨루매성(▨婁賣城)

32)신성(新城)

33)여성 (餘城)

34)송성 (松城)

35)세성(細城)- 32. 세성(細城)

36)모루성(牟婁城)- 33. 모루성(牟婁城),

37)미류성(彌流)- 23. 미추성(彌鄒城)

38)소각성 蘇刻- 35. 소회성(蘇灰城)

39)연루성 - 36. 연루성(燕婁城),

40)절지리성-37. 석지리성(析支利城),

41)암문성(巖門城)- 38. 암문▨성(巖門▨城),

42)고두성

43)성안성

44)안리성

45)남소성(南蘇城)

46)취추성(就鄒城) - 41. 취추성(就鄒城)

47)노리성(奴利城)

48)윤노성(閏奴城)- 44. 윤노성(閏奴城)

49)채려성

50)영상획성

51)압로구천성 - 구천성(仇天城)

52)두노성(豆奴城)- 21. 두노성(豆奴城),

 

 

II. 왜와 전투에서 언급된 지명 및 성

 

1) 석성도 (石城島) ; 고구려에서 대방계(미천왕이후 고구려지역)로 갈 수 있는 바다의 해군기지 섬

2) 구만성(句글귀귀, 滿찰만) : 왜의 지역

3) 사비성(沙모래사 卑낮을 비)

4) 루성(婁별이름루)

5) 동룡성(東龍城)

 

 

III. 수묘인성 : 선조의 묘를 지킴

 

1) 매구여민 : 국연 2, 간연 5

2) 동해고 : 국연 3, 간연 5

3) 한성 (韓城): 간연 14가

4) 궁성 (弓城): 간연 1가

5) 비리성(碑利) : 국연 2가

6) 평양성민(平壤城民) : 국연 1, 간연 10

7) 도련(島連) : 간연 2가

8) 가루성(佳婁) : 국연 1, 간연 42

9) 홀곡(忽谷) : 2가 간연

10) 양성 (梁城): 2가 간연

11) 안실련(安失連) : 24가 간연

12) 개곡(改谷) : 3가 간연

13) 신성 : 3가 간연

14) 남소성 : 1가 국연

15) 사수성 (韓濊) : 국연 1, 간연 1

16) 루모성 : 2가 간연

17) 황도 압잡한 : 5가 간연

18) 구모객두(구모액) : 2가 간연

19) 영저한 : 1가 간연

20) 사조성 (한예) : 국연 3, 간연 21가

21) 고룡라성 (古龍羅城) : 1가 간연

22) 영백성 : 국연 6, 간연 3

23) 객현 : 1가 간연

24) 아단성, 잡진성 : 10가 간연

25) 파노성 : 9가 간연

26) 약모려성 : 4가 간연

27) 고모려성 : 2가 간연

28) 모수성 : 3가 간연

29) 보려성 : 국연 2, 간연 5

30) 미소성 (彌少城): 국연 7, 간연 7

31) 둔방도 굉리성 : 3가 간연

32) 두모성 : 국연 1, 간연 2

33) 오리성(奧利城) : 국연 2, 간연 8

34) 수미성(須彌城) : 국연 2, 간연 5

35) 석잔(石殘) 남거한(南居韓) : 국연 1, 간연 5

36) 태산한성(太山韓城) : 6가 간연

37) 농매성 (農賣城) : 국연 1, 간연 1

38) 윤노성(閏奴城) : 국연 2, 간연 22

39) 고모루성 : 국연 2, 간연 8

40) 양성(楊城) : 국연 1, 간연 8

41) 미성 (味城) : 6가 간연

42) 취자(就咨)성 (취곡성) : 5가 간연

43) 평양성 (平壤) : 24가 간연

44) 산나성(散那) : 1가 국연

45) 나단성 (那旦) : 1가 간연

46) 구모성(句牟) : 1가 간연

47) 어리성 (於利) : 8가 간연

48) 비리성 (比利) : 8가 간연

49) 세균성(細均) : 3가 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