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12. 04:59ㆍ한국사/고구려
광개토태왕은 초기 392년에 거란을 정벌했다. 이 거란이 어디인가 하는 주제는 그래서 광개토태왕의 정벌 경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광개토왕의 정벌 기록과 훈족과 고트족의 당시 기록을 대조하며, 거란의 위치를 가늠하고자 한다.
《삼국사기》 광개토왕 본기
一年夏五月 광개토왕이 즉위하다 (AD 391)
二年秋七月 10개의 백제성을 빼앗다 (AD 392)
二年秋九月 거란을 정벌하다 (AD 392)
二年冬十月 백제 관미성을 빼앗다 (AD 392)
(자료 : 삼국사기, 인용출처 : 광개토태왕/생애, 나무위키)
"9월에는 반대 방향인 북쪽으로 거란을 정벌하고, 거란에 포로로 잡혔던 고구려 백성들을 되찾아 오는 것과 더불어 거란족 500명까지 전쟁포로로 사로잡아오는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사실 광개토대왕 원년의 북부 전선에서는 광개토대왕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갔다는 표현은 나오지 않는다. 광개토대왕은 여전히 남부 전선에 머물러 있고, 북부 전선에서는 다른 장수가 활약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관미성이 함락되고 남부 전선이 정리된 뒤에는 광개토대왕도 거란 전선에 합류했을 것이다.
위서 거란전에 따르면 거란은 388년에 북위가 동으로 고막해를 정벌하면서 고막해에서 분리되어 나온 세력이라 하고, 실제로 중국 사서에서 거란이라는 칭호는 5세기가 되어야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삼국사기》에는 이보다 10년 앞선 378년에 이미 거란이 고구려의 북변을 침탈하는 기록이 나온다. 이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의 거란은 아직 하나의 집단으로 형성되지 못한 초창기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거란 원정 때부터 광개토대왕의 지시로 더욱 발달한 개마무사들이 본격적으로 참전하게 된다.[8]"
(자료 : 광개토대왕/생애, 나무위키)
- 르네 그루세의 『유라시아 유목제국사』에서는 북위가 카롤루스 대제의 프랑크 왕국에 비견되는 '중국의 보호자'로 묘사되었다. 게르만족의 이동과 오호의 중원 침입을 유사한 선상에 놓고, 그러한 분열 양상을 통합하여 안정시킨 국가였던 프랑크 왕국과 북위로부터 일정한 알레고리를 포착해낸 듯하다.
- 북위는 고구려의 동방 지역 패자의 위치를 인정해 고구려 태왕에게 정동장군(征東將軍)이란 고위 관직을 하사했다. 또한 고구려 사신을 남조 사신 다음으로 대하였으며 489년(장수왕 77년, 북위 효문제 19년)엔 남조 사신과 고구려 사신을 동급으로 대해 남조 사신이 크게 항의한 바 있다.
(자료 : 북위, 나무위키)
"In 384, the Roman-Frankish general Flavius Bauto employed Hunnic mercenaries to defeat the Juthungi tribe attacking from Rhaetia. However, the Huns, rather than return to their own country, began to ride to Gaul: Bauto was forced to bribe them to turn back.[43] They then attacked the Alamanni.[40]"
(source : History of Huns, Wikipedia)
- 392-394년 고트족 왕 Alaric I의 기록
By 392, Alaric had entered Roman military service, which coincided a reduction of hostilities between Goths and Romans.[17] In 394, he led a Gothic force that helped Emperor Theodosius defeat the Frankish usurper Arbogast—fighting at the behest of Eugenius—at the Battle of Frigidus.[18] Despite sacrificing around 10,000 of his men, who had been victims of Theodosius' callous tactical decision to overwhelm the enemies front lines using Gothic foederati,[19] Alaric received little recognition from the emperor. Alaric was among the few who survived the protracted and bloody affair.[20] Many Romans considered it their "gain" and a victory that so many Goths had died during the Battle of Frigidus River.[21] Recent biographer, Douglas Boin, posits that seeing ten thousand of his (Alaric's) dead kinsman likely elicited questions about what kind of ruler Theodosius actually had been and whether remaining in direct Roman service was best for men like him.[22] Refused the reward he expected, which included a promotion to magisterium and command of regular Roman units, Alaric mutinied and began to march against Constantinople.[23]
(source : Alaric I, Wikipedia)
위서 거란전에 따르면 거란은 388년에 북위가 동으로 고막해를 정벌하면서 고막해에서 분리되어 나온 세력이라 하고, 북위는 고구려의 동방 지역 패자의 위치를 인정한 것을 보면, 북위와 거란은 고구려의 서쪽에 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상기 자료에서 고트족 Alaric I 왕이 Frankish 반란군 Arbogast를 격파했다는 기록이 이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프랑크왕국이 북위일 수 있다는 르네 그루세의 『유라시아 유목제국사』자료도 있다.
즉 북위는 고구려의 서쪽에 있으며, 북위가 동쪽으로 고막해를 정벌하면서 고막해에서 분리된 세력이 거란이라 하니까 거란도 고구려의 서쪽에 북위보다 가까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거란이 378년 소수림왕시 고구려를 침략하여 고구려인들을 잡아갔다 하니, 이때도 고구려가 여기까지 진출한 것으로 판단된다. 상기 훈족자료에서 384년 훈족이 Gaul 지역과 Alemanni를 공격했다는 기록을 보여 주는데, 다소 연대가 차이나지만, 소수림왕 시기의 이러한 역사를 나타낸다고 판단된다.
즉 거란은 Gaul지역 또는 Alemanni지역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후연의 모용희가 거란과 싸워 혼나고 후퇴했다는 기록을 우리는 연나라 후연의 위치 추정 글에서 본 바 있다. 즉 후연을 Gaul지역으로 추정한 것이 여기서 거란의 추정을 이 부근으로 하는 것과 상통한다는 것이다.
"그해(405년) 12월, 후연의 황제 모용희는 다시 거란을 정벌하러 용성을 출발해 이듬해 1월 형북에 이르렀다가 생각보다 강했던 거란의 위세에 놀라 퇴각하고 만다. "
(자료 : 광개토태왕/생애, 나무위키)
광개토태왕 시기 고트족과 반달족, 수에비족 등은 409년 Hispania까지 진출했다고 했다. 즉 광개토태왕 시기 Gaul지역 등에 있는 후연을 멸망 시키고 거란 등을 정벌하였음을 의미한다고 본다. 상기 자료에서 394년 고트족 Alaric I 왕이 Frankish 반란군 Arbogast를 격파했다는 기록이 이를 구체적으로 입증한다고 판단한다.
거란과 후연의 어느 쪽이 더 서쪽인지 동쪽인지 구체적 위치에 대해서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광개토태왕 이후 장수왕 시기, 문자왕 시기 등을 연구한 후 보다 자세히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광개토태왕 이후 시기에, 고트족은 이태리 반도와 그 서쪽 Hispania지역에 본격적으로 진출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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