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10. 02:02ㆍ한국사/기타
지난 글 중앙아시아의 Massagetae에 대한 분석에 이어, 같은 스키타인이면서도 중앙아시아가 아닌 흑해주변, 코카서스산맥, 아나톨리아 및 유럽에서 활동한 Cimmerians에 대해서 보다 상세하게 검토해 보고자 한다. 본 글은 The History Files에 실린 'Kigdom of Anatolia - Cimmerians'의 글 자료를 주로 바탕으로 하여 소개하며, 이에 대한 필자의 검증자료와 판단을 추가한다.
1. 스키타인의 일원인 Cimmerians의 정체성 분석
먼저 이들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
그 다음에 BC 12c부터 나타나는 이들의 활동에 대해 알아 보고자 한다.
1) BC 9c부터의 Cimmerians에 대한 기록 및 그들의 고향
호머는 이미 기원전 9세기에 Cimmerians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후로 기원전 5세기의 헤로도투스를 포함한 여러 고전학자들이 이들을 언급했으나, 이들에 대한 의견은 다양하게 혼재한다.
Cimmerians의 고향에 대해서는 코카서스 북쪽의 Koban Culture와 이어서 흑해 북쪽의 우크라이나와 남부러시아의 Chernogorovka and Novocherkassk cultures와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Herodotus도 이것을 확인했다. Cimmerians은 기원전 9-8세기에 근동의 확립된 문명의 강력한 도시국가들을 격파하는 놀라움을 보여 주며 역사에 등장한다. 이들은 패배할 때까지 정복과 약탈을 계속한다. 여러 그룹으로 나누어지는데, 그중 하나는 지금의 아나톨리아의 카파도키아인 Tabal에 정착했고, 다른 이들은 발칸반도의 트라키아에 정착했다. AD 6세기이후 도달한 Gokturk제국의 투르크족이 이 지역에 진출함에 따라, 현재의 Crimea의 기초가 되었다. (아래 자료 참조)
"Homer, writing in the ninth century BC, noted the existence of the Cimmerians (or Kimmerioi in Greek texts). Many other Classical writers in subsequent years also mentioned them, including Herodotus in the fifth century BC, but the subject of the Cimmerians is a complicated one. In terms of their origins they are generally associated with the Koban culture of the northern Caucuses, and then the subsequent Chernogorovka and Novocherkassk cultures of Ukraine and southern Russia. They burst onto the historical stage in the ninth and eight centuries BC, surprising the established civilisations of the Near East with their ability to defeat powerful city states. They conquered and looted until they were defeated themselves. After that they appear to have broken up into various groups, at least one of which may have settled in Tabal (Classical Cappadocia) in Anatolia, and others in Thrace. But that's just half the story.
Although the Cimmerians cannot specifically be located in any single location before their appearance in Anatolia, it is generally agreed that they originated in the Pontic-Caspian steppe (the steppe lands to the north of the Black Sea and Caspian Sea). This region had long been a breeding ground for pastoral horse-borne warrior groups, ever since the Yamnaya Horizon of the mid-fourth millennium BC saw the sudden expansion and migration of the Indo-European tribes. Herodotus provided a very clear perspective of the peoples whom he said lived to the north of the Black Sea, and he also placed the Cimmerians on the Pontic steppe. More specifically, though, it was suggested by Isaac Asimov in his massive historical work that 'Cimmerium', the homeland of the Cimmerians, gave rise to the Turkic toponym, Qırım. Through the spread of Turkic tribes into the Pontic-Caspian steppe after the sixth century AD arrival of the Göktürk empire, this became the basis of the name 'Crimea'. Whether this was the core of the Cimmerian homeland is doubtful, but it probably fell within their sphere of influence."
(Source : Kingdom of Anatolia - Cimmerians, The History Files, 본 블로그, 카테고리, Cimmerians/Gomer, 펌글 참조)
필자는 지난 글 '중앙아시아의 Massagetae, Dahae는 낙랑조선인가?(I)'에서, 헤로도투스의 말을 빌어 키메리언들이 소아시아 아나톨리아로 이동한 연유는 스키타인들의 공격에 의해서라 했다. 그리고 키메리언은 메디아제국으로 이동하기까지 했다고 했다. 그런데 위의 글은 키메리언들은 코카서스북쪽과 흑해 북쪽이 고향이라 언급한다.
"Herodotus에 의하면 중앙아시아의 Massagetae는 근처의 스키타이인들을 공격했는데, 스키타이인들은, 그 반응으로 코카서스산맥아래의 Aras River를 넘어 Cimmerians 나라로 침범했고, 이에 키메리언들은 소아시아 터어키의 아나톨리아로 이동 하였으며, 스키타이인들은 키메리언을 추격하다가, 페르시아지역의 Medes (BC 678-549 BC)(메디아제국)까지 침범하게 되었다 한다. "
(자료 출처 : 본 블로그 글, '중앙아시아 Massagetae와 Dahae는 낙랑조선인가? (I))
"According to Herodotus, the Massagetae attacked the Scythians, who in response crossed the river Araxes and invaded the country of the Cimmerians, who fled into Anatolia due to the Scythian invasion, with the Scythians pursuing them and eventually invading the Medes.[13] "
(source : Massagetae, Wikipedia, 필자의 다음 블로그, 카테고리, 중앙아시아, 펌글 참조)
아래 지도에서 인도유럽인들의 이동 상황을 그려 놓았는데, 이는 BC 4000-BC1000기간의 이동을 말한다 한다. 코카서스 남쪽으로 이동하는 경로는 아래 지도에는 없지만, 키메리언들도 이러한 이동의 여정에 동참한 스키타이족의 하나로 판단된다.
인도유럽인의 Migration from 4000 BC to 1000 BC (source : Wikipedia)
키메리언은 BC 652년 아나톨리아의 Lydia Kingdom을 정복함으로써 그들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런데 그들의 전투모습을 담은 그림이 발견되는데, Mounted Archers이면서 배사법의 활쏘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개를 동원하여 같이 전투에 참여하였다 한다. 개를 동원하고 말에서 활을 쏘는 모습은 그리스인이 묘사한 키메리언의 그림에도 나타나는데, 로마공화국도 같은 양상을 보였다고 했다. 로마공화국도 같은 모습을 보였다고 하는데, 이 그림의 개들은 늑대를 훈련시킨 것일 수 있다. 우리의 진도개가 늑대와 같이 목을 한번 물면 놓지 않는 모습은 늑대를 훈련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늑대라는 동물을 매개로 다키언, 이태리북부 에트루리아인, 아나톨리아의 키메리언 등이 연결되는 모습이다. 후에 분석하는 Daehae, Hyrcania도 늑대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모두 낙랑조선의 모습일 지도 모른다. 중국역사에 동이, 북적, 남만, 서융 등에서 견융이란 말이 나온다. 개견자이다. 개와 함께 전투하는 이 모습이 혹시 견융과 관계된 지도 모르겠다. 후일 검토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Cimmerian Warrior with dogs (source : Kingdom of Anatolia-Cimmerians, The History Files)
그리스인이 묘사한 개와 함께 전투하는 키메리언 전사들
(source : Kingdom of Anatolia-Cimmerians, The History Files)
그리고 위의 사진의 키메리아 전사는 고깔모양의 두건을 썼다. 이 또한 사카족의 모습이다. 사카족은 스키타이족이지만, 보통 중앙아시아의 인도서북부지역으로 인식하는데, Mount Nemrut의 고깔형 석조 두상을 고려하면, 아르메니아로 간 키메리언들도 이러한 고깔 모자를 썼을 것이다. (아래 위키자료 참조). 다음 글에서 언급되겠지만, 키메리언은 아나톨리아 뿐만 아니라, 북유럽에도 진출하고, 이태리 북부지역에서 로마군과 싸우기도 하고, 이베리아반도까지 진출했다. 필자는 '춤으로 본 조상들의 활동지역'이란 글에서 피레네산맥의 바스크지역의 여인들이 쓴 고깔모양의 모자가 우리 민족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또한 공통점을 발견한다.
아래 키메리언에 대한 위키자료를 추가로 보자.
키메리언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714년, 앗시리아 연대기에 나타난다. 여기서는 Gimirri라 불리는 부족이 앗시리아왕 Sargon II이 Urartu왕국을 격파하는데, 어떻게 도왔는지 기술한다. Gamir 또는 Uishdish라 불리는 그들의 고향땅은 Mannae라는 완충지대 국가안에 위치했던 것같다. 후의 지리학자 Ptolemy는 Gomara라는 키메리언 도시를 이 지역에 설정했다.
앗시리안들은 키메리언의 이동을 적었는데, 왜냐하면, SargonII왕이 이들을 페르시아에서 쫓아내려 기원전 705년 이들과 전쟁하다가 살해 되었기 때문이다. 키메리언은 결국 아르메니안어로 Gamir-k (원래의 키메리언 고향 Mannae에서와 같은 이름)으로 알려진 카파도키아에 정착했다고 추정된다. 또한 현대의 아르메니아 도시 Gyumri (Kmayri로 설립됨)는 이 지역을 정복하고 여기 정착한 키메리언으로부터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추정된다. (아래 자료 참조)
"The first record of the Cimmerians appears in Assyrian annals in the year 714 BC. These describe how a people termed the Gimirri helped the forces of Sargon II to defeat the kingdom of Urartu. Their original homeland, called Gamir or Uishdish, seems to have been located within the buffer state of Mannae. The later geographer Ptolemy placed the Cimmerian city of Gomara in this region. The Assyrians recorded the migrations of the Cimmerians, as the former people's king Sargon II was killed in battle against them while driving them from Persia in 705 BC......
It has been speculated that the Cimmerians finally settled in Cappadocia, known in Armenian as Գամիրք, Gamir-kʿ (the same name as the original Cimmerian homeland in Mannae).
It has also been speculated that the modern Armenian city of Gyumri (Arm.: Գյումրի [ˈgjumɾi]), founded as Kumayri (Arm.: Կումայրի), derived its name from the Cimmerians who conquered the region and founded a settlement there."
(source : Cimmerians, Wikipedia, 필자의 다음 블로그, 카테고리, 중앙아시아, 펌글 참조)
아르메니아 Commagene왕국 위치의 Mount Nemrut의 고깔형 두건을 쓴 석조 두상 (source : Wikipedia)
16세기 스페인 바스크여인들의 복장 (17세기에 금지된 복장, source : Wikipedia)
2) Cimmerians과 Celts, Thracians, Gomerians과의 연관성
키메리언은, 고대 그리스 자료에 의하면, 켈트족과 트라키언에 연관되어 있다 한다. 키메리언의 언어는 인도유럽인인 트라키언과 이란인 사이의 끊어진 연결고리를 이어준다. 또한 키메리언은 성경의 Gomer 또는 Gomerians과 연관되어 있다. (아래 자료 참조). Gomer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분석되지만, Magog와도 연관되어 있고, Magog는 우리의 마고할미와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산스크리스트어로 소(cow)를 go라 하는데, 켈트족의 하나인 Boii족이 소와 연관된 단어에서 나왔듯이, Gomer란 말도 Cattle (소떼)와 연관된 것으로 아래 기술된다. (아래 자료 참조). 소머리 탈을 쓴 치우도 이들과 연관이 있는지도 모른다. 실제 게르만족이나 북유럽에서도 Ziu 등으로 치우와 유사한 발음의 숭배신이 있었다. 그리고 키메리언이 이동하여 근원이 되었다는 아르메니아지역에도 소머리 관련 유물이 있다. (아래 그림 참조). 필자는 미케네문명, 히타이트, 수메르 문명에서도 소머리 유물이 나온 것을 확인 했다. (필자의 글, '상나라의 동방행은 어디까지인가?' 참조). 필자는, 켈트족과 소와 관련하여, 미국 남부의 cowboy라는 말도 켈트족인 Irish 계통의 이주민들이 소를 모는 문화와 연결될 수 있다고 본다.
"The Cimmerians have been linked to Celts and Thracians, based at least partially on ancient Greek sources. Indications are that the Cimmerians became associated with the Thracians around a large swathe of the western coast of the Black Sea, and eventually merged with them (following their final defeat and break-up). Carl Ferdinand Friedrich Lehmann-Haupt stated that the language of the Cimmerians could have been a 'missing link' between Thracian and Iranian. Both of these were of Indo-European ancestry, so there was likely some basic similarities between the languages. The Cimmerians have also been associated with the Biblical Gomer or Gomerians. A quick check of Sanskrit reveals that the basic word for a cow is 'go'. This is the same in proto-Germanic. An educated guess would be that the tribal name Gomer is derived from a word for cattle, just as Boii is derived from a Celtic word for cows. Most Indo-European groups were great pastoralists."
(Source : Kingdom of Anatolia - Cimmerians, The History Files, 본 블로그, 카테고리, Cimmerians/Gomer, 펌글 참조)
Armenian Head of Bull (source : Wikipedia)
Urartian Caldron (가마솥) (source : Wikipedia)
성경의 창세기에서 히브리인 Gomer는 Japheth의 장자이며, Ashkenaz, Riphath, and Togarmah 의 아버지라 한다. 히브리인들은 Gomer를 코카서스 위의 남러시아에 사는 Cimmerians이라 한다. 그리고 에스겔서 38:6에서 Gomer는 Magog땅의 우두머리 Gog의 형제(ally)라 한다. Ashkenaz의 자손들은 원래 스키타인(앗시리아인)으로 인식되며, Togarmah는 아르메니아와 조지아인들의 조상이라 한다. Khazar기록에 의하면 Togarmah는 튀르크어를 말하는 사람들의 조상이라 한다. (아래 자료 참조)
즉 Gomer는 Cimmerians, 튀르크족과 연관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Gomer는 Gog (Magog땅의 우두머리)과 연관되어 있다.
"Hebrew Gōmer, pronounced [ˈɡomeʁ]; Greek: Γαμὲρ, romanized: Gamér) was the eldest son of Japheth (and of the Japhetic line), and father of Ashkenaz, Riphath, and Togarmah, according to the "Table of Nations" in the Hebrew Bible (Genesis 10).
The eponymous Gomer, "standing for the whole family," as the compilers of the Jewish Encyclopedia expressed it,[1] is also mentioned in Book of Ezekiel 38:6 as the ally of Gog, the chief of the land of Magog.
The Hebrew name Gomer refers to the Cimmerians, who dwelt in what is now southern Russia, "beyond the Caucusus......
Children of Ashkenaz were originally identified with the Scythians (Assyrian Ishkuza), then after the 11th century, with Germany.[15][16]
Ancient Armenian and Georgian chronicles lists Togarmah as the ancestor of both people who originally inhabited the land between two Black and Caspian Seas and between two inaccessible mountains, Mount Elbrus and Mount Ararat respectively.[17][18]
According to Khazar records, Togarmah is regarded as the ancestor of the Turkic-speaking peoples.[19]"
(source : Gomer, Wikipedia,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Cimmerians/Gomer, 펌글 참조)
Gomer와 관련 있다는 Magog에 대해 좀 더 알아 보자. 아래 자료에서 보듯이 Magog의 Gog의 땅, Gyges(기즈, 기자?)의 땅, Lydia와 연관되어 있을 지 모른다. 그리고 Magog, Gog는 성경에서 신(God)의 적을 은유하는 말로 쓰인다 한다. 이슬람교의 코란에서도 아래 그림과 같이 여성 Monster로 표현한단다. (아래 자료 참조). 즉 종교적 의미가 있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우리 나라 신화의 마고할미가 연상된다.
"The origin of the name Magog is unclear. It may come from the Akkadian mat Gugi, "land of Gog", that is, the land of Gyges: Lydia.[1]
Magog is often associated with apocalyptic traditions, mainly in connection with Ezekiel 38 and 39 which mentions "Gog of the land of Magog, the chief prince of Meshech and Tubal" (Ezek 38:2 NIV); on the basis of this mention, "Gog and Magog" over time became associated with each other as a pair. In the New Testament, this pairing is found in the Book of Revelation 20:8, in which instance they may merely be metaphors for archetypal enemies of God.....
The Monster of Gog and Magog, Muhammad ibn Muhammad Shakir Ruzmah-'i Nathani
Magog's appearance in the Quran and other Islamic sources is chiefly due to his apocalyptic renown as part of the pairing of Gog and Magog (Arabic: Ya'juj wa Ma'juj). "
(source : Magog, Wikipedia,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Magog/마고, 펌글 참조)
1세기 Romano-Jewish 역사가인 Josephus는 Japheth의 아들 Magog가 흑해 위의 스키타인들 조상이라 한다. 그에 의하면 그리스인들은 Magog를 Scythia Magogia 라 불렀다 한다. 에스겔서에 의하면 이들(Magog)은 카파도키아와 Media사이에 위치한다고 했다. 어떤 랍비는 Magog이 몽골인이라 한다.
고트족에 대한 역사서를 쓴 6세기의 Jordanes는 Magog이 고트족의 조상이라 언급한다.
16세기의 요하네스 마그누스는 Magog이 홍수가 난후 88년후 핀란드를 거쳐 스웨덴으로 이동했으며, 그의 다섯아들, Suenno (ancestor of the Swedes), Gethar (or Gog, ancestor of the Goths), Ubbo (who later ruled the Swedes and built Old Uppsala), Thor, and German이 지역별로 나뉘었다고 한다. 이 견해는 스웨덴 법정에서 인정되고, 스웨덴의 Christina여왕은 자신은 Magog의 249대째 왕이라고 인식했다. 이후 18세기 역사가 Daniel Juslenius는 Finns(핀란드족)족의 뿌리가 Magog에 있다고 했다.
중세 아일랜드 연대기에서는 아일랜드인은 Japheth의 아들 스키타인인 Magog의 후손들과 결합된 민족이라 한다. Magog은 또한 Heber라는 손자가 있는데, 이의 자손들이 지중해에 널리 퍼졌다고 한다.
또한 중세 항가리 전설에는 마자르족 뿐만 아니라 훈족은 Hunor, Magor라 불리는 쌍둥이 형제의 후손들이라 하는데, 홍수후 흑해의 아조브해에서 살았는데, 부인들을 Alans족으로부터 취했다고 한다. 14세기의 이 전설에서 Magor는 Japheth의 아들, Magog와 동일시 된다. (아래 자료 참조)
"Josephus refers to Magog son of Japheth as progenitor of Scythians, or peoples north of the Black Sea.[2] According to him, the Greeks called Scythia Magogia.[3] An alternate identification derived from an examination of the order in which tribal names are listed in Ezekiel 38, "would place Magog between Cappadocia and Media."[4] According to Rabbi Shlomo Ganzfried (19th century) Magog refers to the Mongols. He cites an Arab writer who refers to the Great Wall of China with the name 'Magog'.[5]
Jordanes' Getica (551) mentions Magog as ancestor of the Goths, as does the Historia Brittonum, but Isidore of Seville (c. 635) asserts that this identification was popular "because of the similarity of the last syllable" (Etymologiae, IX, 89). Johannes Magnus (1488–1544) stated that Magog migrated to Scandinavia (via Finland) 88 years after the flood, and that his five sons were Suenno (ancestor of the Swedes), Gethar (or Gog, ancestor of the Goths), Ubbo (who later ruled the Swedes and built Old Uppsala), Thor, and German.[6] Magnus's accounts became accepted at the Swedish court for a long time, and even caused the dynastic numerals of the Swedish monarchs to be renumbered accordingly. Queen Christina of Sweden reckoned herself as number 249 in a list of kings going back to Magog. Magnus also influenced several later historians such as Daniel Juslenius (1676–1752), who derived the roots of the Finns from Magog.
According to several medieval Irish chronicles, most notably the Auraicept na n-Éces and Lebor Gabála Érenn, the Irish race are a composite including descendants of Japheth's son Magog from "Scythia". Baath mac Magog (Boath), Jobhath, and Fathochta are the three sons of Magog. Fenius Farsaid, Partholón, Nemed, the Fir Bolg, the Tuatha de Danann, and the Milesians are among Magog's descendants. Magog was also supposed to have had a grandson called Heber, whose offspring spread throughout the Mediterranean.
There is also a medieval Hungarian legend that says the Huns, as well as the Magyars, are descended from twin brothers named Hunor and Magor respectively, who lived by the sea of Azov in the years after the flood, and took wives from the Alans. The version of this legend in the 14th century Chronicon Pictum equates this Magor with Magog, son of Japheth."
(source : Magog, Wikipedia,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Magog/마고, 펌글 참조)
이상의 Magog신화를 살펴 보면, 스키타인은 유럽 북부, 독일, 항가리, 대서양(서해)를 건너 아일란드, 지중해에 진출한 것으로 묘사된다. 필자가 우연히 한민족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는 지역과 매우 일치한다. 또한 우리나라의 마고할미 신화도 창세기의 거인여인의 신화라는 것을 고려할 때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Magog/마고, 펌글 참조), 마고할미 신화가 Magog신화와 연계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필자는 켈트족과 한민족의 연관성에 대해 그 자료를 찾지 못했는데, 그 연결고리를 찾은 것 같은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고트족에 대한 역사서를 쓴 Jordanes가 '고트족은 Magog의 후손'이라 한 말이 매우 인상적이다. 고트족은 고구려로 필자는 추정하고 있다. (본 블로그의 글, '고트족은 고구려이다(1)' 참조). 그리고 코란에서는 여성으로 묘사된다. 즉 Magog는 우리나라의 전설 '마고할미'라는 추정이다.
즉 키메리언은 스키타인이며, Irish인 켈트족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고, 트라키언, Gomerians등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Gomerians은 Gomer 즉 Magog과 연결되며, 스키타인인 이들 모두가 한민족과 연결될 수 있다는 추정이다. 따라서 키메리언의 아나톨리아, 유럽으로의 이동도 결국 한민족의 역사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따라서 유사한 시기의 낙랑조선의 흔적을 찾는 필자에게 Cimmerians의 활동은 매우 큰 관심의 대상이 된다.
3) Westward Thraco-Cimmerians (Scythians) Migration and its influence
지난 (I)의 글에서 분석하였듯이 Thraco-Cimmerians은 스키타이족의 유럽으로의 이동을 말해 준다.
이러한 이동은 켈트족의 문화가 Hallsttat Culture에서 La Tene Culture로 바뀌게 하였으며, Thraco-Cimmerians Culture가 유럽 서쪽으로 이동하는 영향을 주었다. 이들 인도유럽인, 즉 트라키언, 키메리언, 스키타인들은 적어도 동일한 문화적 가치, 무기, 언어까지 공유하였다. (아래 자료 참조)
이러한 움직임은 생산 중심지가 항가리에서 이태리 및 알프스 지역으로 이동한 것이 말해 준다. 특히 주목할 것은 BC 8c의 전차와 말의 전사문화가 이를 증명해준다. 이러한 전사문화는 Pontic-Caspian steppe 지역에서 전형적으로 오랫동안 지속된 것이기 때문이다. 중유럽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문화이동은 다뉴브강을 따라 오스트리아, Bavaria (독일 남부지역)까지 이루어졌다. 기원전 9세기에서 6세기까지 이러한 움직임은 더 서쪽으로, 그리고 북쪽으로 이어졌다. (아래 자료 참조)
결국 한그룹은 엘베강 코스를 따라 이동했으며, 다른 그룹은 라인강 상류에서 엘베강 동북쪽을 거쳐 덴마크지역의 Jutland (Cimbri 조상들)에 이른다. Hallsttat 전체가 중동부 유럽에 등장한 새로운 엘리뜨에 의해 새로운 남성 무기와 마차로 변화되었다. Kristiansen은 이것은 Cimmerians 뿐만아니라 Scythians에 의한 영향으로 간주한다. (아래 자료 참조)
"The complications arise when considering the so-called 'Thraco-Cimmerian Hypothesis', a rather controversial subject to say the least. This concerns an Eastern Celtic 38 group, part of the Cimmerian-Scythian people, who blasted their way into the historical record in the eighth and seventh centuries BC, and eventually settled to a large extent amongst the Thracian tribes (just as the Cimmerians are supposed to have done). Some modern writers believe that a Thraco-Cimmerian migration westwards out of Thrace (or several, more probably) triggered cultural changes that contributed to the transformation of the Celts, from the Hallstatt C culture into the La Tène. In fact, although a specific Thraco-Cimmerian migration along the Danube is now less supported, it is undeniable that a Thraco-Cimmerian cultural influence did make its way westwards. These were Indo-European groups who at the very least shared the same cultural values, and martial equipment - and probably language too - as the Thracians and Cimmerians, and even Scythians.
Tying archaeological evidence to the Thraco-Cimmerian hypothesis can sometimes be dismissed by scholars (although not all of them). When studying the hypothesis, Anne Kristiansen has focussed on a shift in production centres from Hungary to Italy and the Alpine region. The weight of evidence shows that there was a warrior culture of the horse/wagon complex in the eighth century BC (such horse and wagon peoples were typical of Pontic-Caspian steppe cultures, and they persisted in the region for a surprisingly long time). From a Central European perspective, this particular culture followed the Danube to the Hallstatt regions of the east - Austria, and perhaps Bavaria, these being the eastern limits of the core Celtic homeland. In successive waves from the ninth to the sixth centuries BC they pushed further west before veering off to the north.
Ultimately, one branch followed the course of the River Elbe and a second backtracked west from the headwaters of the Rhine, heading north-east to the Elbe and then north into Jutland (where it theoretically formed, or merged with the ancestors of, the Cimbri). The entire Hallstatt complex was altered with new male prestige weapons and specialised horse tack and wagons that were new to the region, and these were associated with new ruling elites, especially in eastern Central Europe. Kristiansen considers the influences to be not only Cimmerian but also Scythian (another nomadic horse-based group from the Pontic-Caspian steppe, some of whom ventured into the Transoxiana region of Central Asia to become better known as the Sakas)."
(Source : Kingdom of Anatolia - Cimmerians, The History Files, 본 블로그, 카테고리, Cimmerians/Gomer, 펌글 참조)
David Rankin은 상기 이론을 지지했는데, 그는 그 증거로, 켈트족이 동부유럽의 Urnfield Culture 또는 Lusatian type에 영향을 준 동방의 전사문화를 그들의 원천이라 생각한 것을 말하고 있으며, 이 동방의 전사문화는 왕들의 거대한 봉분 묘지문화를 가져왔다. (아래 자료 참조)
특별한 Thraco-Cimmerian 유물은, BC 10c-8c 사이에, 발칸에서 다뉴브강을 따라 스위스 제네바호수 그리고 덴마크 북쪽지역에서까지 발견되는 철제 말굴레 같은 철제제품(청동제품과 동시에 출토)이다.
이제는 트라키언의 일부가, 오스트리아나 남부 독일의 집단과 매우 유사한 모습의 켈트족이 아니었나, 하는 견해가 받아 들여지고 있다.
청동기에서 철기시대로의 이동도 순탄하지 않았는데, 그리스에서는 BC 1000년경에 철기가 사용되었고 (도리언의 침입이후), 중부유럽은 BC 750년경에 철기가 도입되었으며, 북유럽은 BC 500년경에 철기를 도입하였다. 즉 일시적 혁명적인 변화가 아닌 점진적인 변화를 한 것이다. (아래 자료 참조)
이러한 점진적인 철기문화의 도입은 Thraco-Cimmerians의 이동 상황에 따라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필자는 생각한다. (이후 키메리언의 이동에 대해서 분석된다.) 우리나라 성씨 김(金)은 쇠금자이다. 즉 철과 연관된 성씨이다. Cimmerians이 Kim씨 사람들이라는 뜻은 아닐까 상상해 본다. 흉노족의 김일제가 신라 김씨의 조상이라 하는데, 흉노족은 여러 모로 스키타이족과 관련이 있다.
"David Rankin also supported this theme. He wrote of the evidence that Celtic peoples owed their origins to a specifically eastern warrior culture which imposed itself upon an Eastern European culture of the Urnfield or Lusatian type, and which introduced the lordly habit of tumulus burial.
Specific Thraco-Cimmerian archaeological finds with the earliest known iron goods (along with bronze items), such as horse bridles have been documented in the Balkans, along the Danube corridor to Lake Zurich in Switzerland, and north to Denmark, dated between the tenth and eighth centuries BC. It is now recognised that some of the Thracian tribes may have been Celtic (or perhaps more probably proto-Celtic, sharing close similarities with groups in Austria and Bavaria).
These incomers most likely brought typical Balkan haplogroups into the western Celtic areas, probably decreasing in numbers as a function of distance from their home base. The Bronze Age shift to the Iron Age was not altogether smooth and had regional features that delayed its introduction. Iron was in use in Greece by 1000 BC (after the Doric invasions there), but not until 750 BC did Central Europe see its introduction (with the Iron Age Hallstatt C Celts), and not until 500 BC did its use emerge in the Nordic zone (amongst the early Germanic groups). Changes were gradual rather than reflecting any sort of 'revolution'."
(Source : Kingdom of Anatolia - Cimmerians, The History Files, 본 블로그, 카테고리, Cimmerians/Gomer, 펌글 참조)
4) Cimbri of Jutland and Celts, Cimmerians
켈트족이 그들의 원래 이름을 바꿀 필요가 없어 Galatians, Caledonians, Galicia 등의 명칭을 유지하듯이, Jutland의 Cimbri도 이같이 유추하면 Cimmerians과 같은 것이다. 인도유럽인들의 서로간 끈끈한 유대 관계를 고려하면, Cimbri에 일반적으로 주어지는 동지, 동반자의 원래 의미를 Cimmerians이 가질 수 있다고 본다. (동시에 Medes제국 왕이 된) 강력한 Cimmerian 왕 Tugdamme란 이름이 켈트족 요소를 가지고 있다. (아래 자료 참조)
"Among the Celts, their original name (which is proposed here as being Galat - see feature link, right) appears to survive best along the fringes of their expansion. A group would become isolated sufficiently on the borders so that they had no competitors who were using the same name, and therefore had no reason to change that name (see, for instance, Galatians, Caledonians, and Galicia). If the Cimmerian name followed this pattern then the Cimbri of Jutland may indeed be a Cimmerian/Celtic mix which retained their old name. Given the close Indo-European relationship between all of these groups that name could still have the original meaning of 'compatriots' or 'companions' that is normally ascribed to the Cimbri. This still would not invalidate the view of many modern scholars of them being a Germanic tribe with Celtic influences.
Furthermore, whilst the name of one of the most powerful Cimmerian leaders, the very Celtic-seeming Tugdamme, may be a borrowing between different, separated groups, it is far more likely to be a direct adoption from one group into another by conquest or consolidation. The idea that the emergence of the La Tène P-Celts was the result of Hallstatt Q-Celts being influenced or taken over by nomadic Cimmerians/Scythians or their associates is a very fascinating one. That something made a change in material culture and language amongst the Celts is not disputed, but what was it? The frustrating thing is that not enough is known about Cimmerian language to know whether they were using the same 'kw' sound as the Hallstatt Celts or whether they used the substituted 'p' sound of the La Tène Celts. If the latter then they may well have introduced this speech shift to the Celts, along with many other innovations...."
(Source : Kingdom of Anatolia - Cimmerians, The History Files, 본 블로그, 카테고리, Cimmerians/Gomer, 펌글 참조)
그래서 Jutland의 Cimbri가 Cimmerians이고 켈트족과 관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필자는 이글이 영국에서 펴낸 글이기 때문에 Celt족에 관련하여 조심하여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상기 글을 통해 켈트족이 동에서 서로 이동한 인도유럽민족이라는 것을 안 것은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Jutland의 Cimbri에 대해 보다 심도있게 검토해보자.
아래 위키자료를 보면, Cimbri는 Kimme란 단어와 연관되어 있고, 바닷가의 사람들이라는 뜻이라 한다. 결국 오래전부터 Cimbri란 이름은 Cimmerians과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기원전 2-1세기의 것으로 보이는 Gundestrup Cauldron이 덴마크지역 Himmerland에서 발견되었는데 동남부 유럽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다. 즉 발칸반도에 진출한 Thracians, Cimmerians과의 연관성을 시사하고 있다.
The Gundestrup Cauldron, exterieur plates, b, g, e (source : Wikipedia)
기원전 1세기의 그리스 사가 스트라보는 Cimbri는 북해의 Cimbri Peninsula에 살았다 하는데, 아우구스투스에게 조공을 하였다 한다.
Cimbri족은 기원전 110년경 Teutons, Ambrones 부족과 함께 동남쪽으로 이동하여 Noricum까지 침범한 적이 있다. 이후 로마공화국과 치열한 전쟁을 하며, 갈리아지방, 이태리북부지역까지 진출하였다가 이베리아반도까지 진출하였다고 한다. BC 105년에 로마는 Cimbri와의 전투에서 8만명의 병력 손실을 입어, 로마가 패닉에 빠졌고, Cimbricus 공포라는 속담이 생길 정도였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자료 참조). 줄리어스 캐사르에 의하면, 벨기에부족 Atuatuci는 Cimbri와 Teutoni의 후손이라 한다.
"The name has also been related to the word kimme meaning "rim", i.e., "the people of the coast".[2] Finally, since Antiquity, the name has been related to that of the Cimmerians.[3] ......
The Gundestrup Cauldron, which was deposited in a bog in Himmerland in the 2nd or 1st century BC, shows that there was some sort of contact with southeastern Europe,......
The contemporary Greek geographer Strabo testified that the Cimbri still existed as a Germanic tribe, presumably in the "Cimbric peninsula" (since they are said to live by the North Sea and to have paid tribute to Augustus)...
Some time before 100 BC many of the Cimbri, as well as the Teutons and Ambrones, migrated south-east. After several unsuccessful battles with the Boii and other Celtic tribes, they appeared c. 113 BC in Noricum, where they invaded the lands of one of Rome's allies, the Taurisci.
....
Now the road to Italy was open, but they turned west towards Gaul. They came into frequent conflict with the Romans, who usually came out the losers. In Commentarii de Bello Gallico the Aduaticii—Belgians of Cimbrian origin—repeatedly sided with Rome's enemies. In 109 BC, they defeated a Roman army under the consul Marcus Junius Silanus, who was the commander of Gallia Narbonensis. In 107 BC they defeated another Roman army under the consul Gaius Cassius Longinus, who was killed at the Battle of Burdigala (modern day Bordeaux) against the Tigurini, who were allies of the Cimbri....
It was not until 105 BC that they planned an attack on the Roman Republic itself. At the Rhône, the Cimbri clashed with the Roman armies....The Romans lost as many as 80,000 men, ....Rome was in panic, and the terror cimbricus became proverbial.....
In 104–103 BC, the Cimbri had turned to the Iberian Peninsula where they pillaged far and wide, until they were confronted by a coalition of Celtiberians.[17] Defeated, the Cimbri returned to Gaul, where they joined their allies, the Teutons....
According to Julius Caesar, the Belgian tribe of the Atuatuci "was descended from the Cimbri and Teutoni, who, upon their march into our province and Italy, set down such of their stock and stuff as they could not drive or carry with them on the near (i.e. west) side of the Rhine, and left six thousand men of their company there as guard and garrison" (Gall. 2.29, trans. Edwards). They founded the city of Atuatuca in the land of the Belgic Eburones, whom they dominated. Thus Ambiorix king of the Eburones paid tribute and gave his son and nephew as hostages to the Atuatuci (Gall. 6.27). In the first century AD, the Eburones were replaced or absorbed by the Germanic Tungri, and the city was known as Atuatuca Tungrorum, i.e. the modern city of Tongeren....."
(source : Cimbri, Wikipedia,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Cimmerians/Gomer, 펌글 참조)
현대의 Himmerland사람들은 자신들이 고대 Cimbri자손이라 주장한다.
Cimbrian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이태리의 Vicenza, Verona, Trento 사이의 산들에 정착했었는데, 덴마크의 Frederick IV는 이 지역을 방문했고, 이 지역 주민들은 그들의 왕으로 대우했다. 베니스공화국 시절 독립을 유지했던 이들은 1차 세계대전에서 심각하게 피폐화되었는데, 많은 Cimbri들은 이 산지역을 떠나 세계적인 Diaspora를 구성했다. (아래 자료 참조)
"The population of modern-day Himmerland claims to be the heirs of the ancient Cimbri....The so-called Cimbrian bull ("Cimbrertyren"), a sculpture by Anders Bundgaard, was erected on 14 April 1937 in a central town square in Aalborg, the capital of the region of North Jutland.
A German ethnic minority speaking the Cimbrian language, having settled in the mountains between Vicenza, Verona, and Trento in Italy (also known as Seven Communities), is also called the Cimbri...Frederick IV of Denmark paid the region's inhabitants a visit and was greeted as their king. The population, which kept its independence during the time of the Venice Republic, was later severely devastated by World War I. As a result, many Cimbri have left this mountainous region of Italy, effectively forming a worldwide diaspora.
(source : Cimbri, Wikipedia,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Cimmerians/Gomer, 펌글 참조)
Jutland에 살았던 Cimbri가 누구냐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하지만, 이제까지 본 바로는 Cimmerians의 일부인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고구려 태조왕시기에 (AD 72), 조나국과 주나국을 병합하였는데, 이들 중 조나국이 Jutland에 있는 것이 아닌가 추정했다. (본 블로그 글, '백두산 십국의 하나인 조나국은 북유럽의 Jutland인가?' 참조). 그동안 살펴 본 Cimmerians이 스키타인이고 이들은 Cimbri와 동일하며, 스키타인들은 우리 역사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가진 것을 고려하면, 필자의 주장이 상당한 가능성있는 주장이라 판단된다.
이상으로 Cimmerians의 정체성에 대한 분석은 마치고, 다음 편에서는 시기적으로 이들의 활동을 분석하며, 보다 구체적으로 Cimmerians에 대해 분석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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