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야한국은 키메리언의 후손인가? (II)
2023. 2. 6. 02:04ㆍ한국사/기타
구야한국은 키메리언인가? 에 대한 1차 검토를 지난 글에서 하였다. 견이, 견융, 흉노, 단군조선 등의 검토를 거쳐서, 이들이 서로 연관성이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중앙아시아에서 출발한 스키타인의 일종인 키메리언이 상기의 견이, 견융 등의 개와 관련된 이름이 키메리언의 모습과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키메리언의 고깔 모자 모습, 말에서 뒤로 활을 쏘는 배사법 활쏘기 등이 우리의 가야와 고구려의 모습과 닮은 점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늑대와 관련된 중앙아시아에서 발칸반도, 이태리 의 로마 문화권이 이 키메리언의 이동과 유사한 현상을 보임을 또한 관찰하였다. 따라서 이들 늑대 문화권의 키메리언이 혹시나 견이, 견융, 흉노, 조선과 관련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후반의 분석에서는 견이, 견융, 흉노로 대표되는 조선의 모습이 키메리언과 어떻게 연관이 있을 수 있나를 분석하고자 한다.
6. Dardanians과 단군조선
Dardanians에 대해서 필자는 특별한 관심이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서양사의 자료는 매우 제한적이다. 발칸반도에 기원전 4세기부터 Kingdom of Dardanians이 있었다 기록된다. 그러나 최근에 필자는 트로이 전쟁에서 패한 Dardanians인 Aeneas가 카르타고로 이동한 후 로마로 이동하여 로물루스 형제의 조상이 되었다는 Virgils의 서사시를 보고서 서양사에서도 Dardanians의 역사가 오래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 오딧세이에 나오는 트로이전쟁은 기원전 12세기에 있었다 한다. 필자는 트로이 전쟁이 지중해 해상무역 패권을 두고 그리스계와 Levant지역의 페니키아계의 다툼으로 해석한다. 그 전에 지중해 해상무역을 장악했던 페니키아계에 대하여 그리스계가 도전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계가 승리하여 지중해의 동쪽은 그리스계가 장악하고, 페니키아계는 서쪽의 지중해 해상무역권을 지배하는데 그친다. 즉 지중해를 동서로 양분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트로이가 페니키아 문명의 고향인 중근동지역의 Tyre가 아닐까 추정한다.
그런데 이러한 트로이 전쟁에서 Trojans 편에 서서 전쟁을 했던 Dardanians이 있었다. 그 장군 가운데 하나가 Aeneas이다. Aeneas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지중해 서쪽으로 이동하여, 카르타고에 잠시 들른다. 여기서 이미 Tyre에서 망명온 것으로 보이는 Dido을 만난다. 그리고 사랑을 나누고 아이들도 낳지만, Aeneas는 로마로 떠나게 된다. 그래서 Dido여왕은 떠난 연인 Aeneas를 원망하며 자살했다고 한다. Aeneas는 로마의 라티움 지역에 도착하여, 세력을 키워, 로마의 건국하는 로물루스 형제의 조상이 되었다 한다. 이상이 Vigils의 서사시 Aeneid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내용은 호머의 일리아드 오딧세이 후편에 해당하는 스토리이지만, 시기적으로 좀 차이가 있다. 카르타고의 Dido여왕은 기원전 825-814에 카르타고에 정착했다 한다. 그런데 트로이 전쟁은 기원전 12세기의 것으로 알려졌다. 어쩌면 트로이전쟁이 기원전 820년쯤에 있었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Tyre에서 Dido가 카르타고로 이동해 오고, Dardanians인 Aeneas가 이동한 것인지 모른다. Aeneas가 이태리로 이동한 시기에는 Etruscan 문명이 이태리에 있었다. 그래서 Dardanians, Trojans, Etruscan이 서로 연관성이 있지 않나 필자는 추정한다. 기원전 4세기의 Dardanians왕국도 발칸반도에 있어 늑대문화권에 속한다. Etruscan문명도 로물루스의 늑대 동상을 고려할 때, 역시 늑대 문화권이라 추정할 수 있다. Trojans은 아직 모르겠으나, 중앙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오는 길에 있으므로 관련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Kingdom of Dardania in 3rd century BC (발칸반도) (source : Wikipedia)
필자는 여기서 구야한국과 이들의 문화권이 늑대와 늑대를 가축화한 개를 고려할 때, 서로 연관성이 있지 않나 판단한다. 허황옥이 아유타국인 Levant지역에서 출발했으므로, 카르타고의 Dido여왕처럼 페니키아 문명권 인물로 본다. 어쩌면 같은 Trojans일 수 있다. 그래서 허황옥과 결혼한 김수로왕의 금관가야가 카르타고에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리하여 가라해가 Tyrrhenian Sea가 될 수 있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김해(金海)는 철이 나는 바다로 해석할 수 있다. 당시 카르타고지역일 수 있는 알제리에 철이 많이 나서 지금도 주요 수출국이다. 따라서 김해도 북아프리카에 가까운 바다를 말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Dardanians과 Trojans에 대한 의문은 Julius Caesar와 Augustus가 모두 Dardanians, Trojans의 후손이라 주장한다는점에 있다. 이들은 로마제국 건설의 아버지라 할 수 있다. 필자는 Julius Caesar의 점령 지역을 참고하여 고구려 주몽이 점령한 행안국 등을 추정한 바 있다. 그리고 백제를 건국한 온조와 비류의 아버지라 중국사서에서 주장하는 '우태 또는 구태'가 Augustus를 음차한 것이 아닌가 했다. 고구려 주몽이 정복하고 합병한 비류국의 송양은 선조가 선왕 즉 단군왕이라 했다 한다. 그리고 주몽은 비류국을 합병하면서 다물이라 했다 한다. 즉 옛땅을 회복했다는 것인데, 단군조선 지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필자는 비류국지역이 프랑스의 Vienne지역이라 추정했다. 이 지역은 지금도 박달나무를 표상으로 하고 있다.
필자는 덴마크의 역사에서 'Dan'이라 불리는 왕이 둘 있었다는 기록을 보았다. 덴마크도 북부여의 지역으로 돌아간 동부여의 일부세력이 세운 두막루의 두막이 아닌가 한다. 기원후 5세기에 훈족이 프랑스 서부에 진출했을 때, Dardanians이 이 지역에 있었다는 기록을 본 적이 있다. 중국의 남북조 역사에서도 '왕검'이라는 귀족 세력이 언급된다. 서양사가들이 신비의 Dardanians이라 칭하는 이들이 단군조선의 후예가 아닐까 한다.
한편 Dardanians은 중국 역사에 나오는 달단과 발음이 유사하다. 달단은 중국사에서 몽고인, 튀르크인들을 지칭하는 말인데, 중앙아시아 지역의 부족들을 언급하고 있다. 인도의 무굴제국도 이들과 관련 있는 것으로 언급된다. 서양사에서는 Tatar라 불린다. 크림반도, 동유럽, 러시아 지역을 언급한다. 필자는 타타르란 이들이 몽골실위와 연관이 있지 않나 판단했다. 핀란드의 Finns족과 Ugrians이 관련되지 않았나 했다.
그러나 Dardanians은 몽고계인지는 모르나 중앙아시아에서 온 늑대문화권과 관련이 있고, 동유럽에서 관련 왕국도 있었으니, 보다 광범한 지역을 말하고 있다. 유라시아에 퍼져 있다면 광범한 지역의 지배를 한 배달국, 12환국의 후손들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Dardanians, Trojans, Etruscan, 로마제국, Tyrrhenian, Phenicians, Cimmerians, Carthage, 그리고 견이, 견융, 흉노, 단군조선, 고구려, 백제, 구야한국 등이 서로 연관이 된다.
7. 기준 조선왕과 바다 건너의 한(韓)
기자조선은 단군조선에 이어 기원전 1100년경부터 위만조선이 들어 서는 기원전 194년까지 있었다 한다. 기자는 은나라 사람으로 은나라 말기 조선지역으로 와서 기자조선을 열었다고 한다. 상나라, 즉 은나라는 부여에게 전통이 이어진 백이(白夷)의 나라이다. 주나라가 들어 설 때, 상(은)나라의 왕족이 피해서 조선으로 와서 기자조선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진(秦)나라가 망한 후, 항우와 유방이 대립하는 대 혼란기(BC 206-202) 시기에, 연(燕), 제(濟), 조(趙) 등지에서 혼란을 피해 수만명이 고조선으로 이주해 오자, 고조선을 이들을 적극 받아 들이고, 서부 국경지역에 거주하게 하였다.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한(漢)나라를 세웠음에도 중국의 혼란은 계속되었다. 이 시기에 (아마도 유방의 불신증세로 말미암아) 연왕이었던 노관이 흉노로 도망가자, 연나라 사람 위만이 조선으로 피신하였다고 한다. (인물 한국사, 위만, 네이버자료) 즉 상나라, 주나라, 진나라 모두 요수 즉 론강의 좌측에 있었다는 추정이 맞는 것이다. 그 우측에 흉노와 조선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위만이 조선에 망명와서 중국과 조선의 국경에서 지내다가, 중국에서 온 유민들을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왕험성을 정복하여 위만조선을 열었다 했다. 기존의 조선왕 준(準)은 바다 건너 남하하여 한왕(韓王)이 되었다 한다. 이로써 기자조선에서 위만조선으로 넘어 갔다고 역사는 말한다.
그런데 필자는 여기서 기준이 남하한 한(韓)의 지역에 관심이 있다. 왕험성이 알프스산맥 위의 스위스 지역에 있었다 추정되므로, 아마도 이태리 연안을 따라 남하하여 시실리섬을 통해 북아프리카로 갔거나, 또는 남부 프랑스에서 또는 이베리아 반도연안을 따라 남하했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는 연안을 따라 이동하는 항로를 택하는 항해기술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고구려 협보가 남하한 경로를 택했을 가능성이 있다. 마한, 진한, 변한의 지역이 될 가능성이 있다. 마한과 진한은 각각 동서로 바다에 접했다 하였다. 변한은 진한의 남쪽에 있었다 했다. 마한은 이베리아 반도나 이태리 반도였을 것이고, 진한은 이태리 반도나 발칸반도였을 것이다. 여기서 남마한이나, 변한의 지역이라면, 지중해의 코르시카나 북아프리카 지역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변한이 철 생산이 많이 되어 수출했다 하는데, 북아프리카의 모리타니아, 알제리가 철이 많이 생산되어 지금도 수출국가이다.
북아프리카 지역의 주민들에 대한 유전자 연구에 의하면, 북아프리카 주민은 그중 특히 베르베르인들은 중근동지역 50%, 서유럽 지역 50%의 유전인자를 보인다 한다. 그리고 이베리아 반도 연안을 통해 이동한 것으로 추정한다. 반면 크로시카는 이태리 북부나 프랑스남부에서 이동해 온 것으로 추정한다. 언어권으로도 그렇게 표현된다. 반면 코르시카섬 남쪽의 샤르데냐섬은 북아프리카의 국가들과 같은 페니키아 문화권으로 구별된다.
마한, 진한, 변한의 시대가 언제부터인지 잘 모르겠으나, 기원전 1세기부터 있었다는 일반기록을 보면, 기준의 시대(BC 194)부터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삼한은 진(秦)에 망한 한(韓)나라 이후 시기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한(韓)의 귀족 출신인 장량은 창해역사를 구해서, 한(韓)을 멸망시킨 진나라(BC 221-BC 206)의 진시황을 격살하려다 실패한 이야기가 전한다. 필자는 창해를 프랑스 남부의 지중해로 추정했다. 갈석산에 올라 창해를 보며 동이에 대한 정복을 꿈꾸었다는 중국의 왕들 이야기와 조조의 이야기, 그리고 한(前漢)나라 시절 예(濊)의 군장 남려가 주민 28만명을 거느리고 한(漢)에 항복하여 창해군을 두었다는 기록 등을 고려할 때, 창해는 지중해이며, 창해군은 지중해에 접한 프랑스남부지역이나 그 우측지역일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즉 진나라에 의해 멸망 당한 한(韓)나라가 이태리반도지역과 그 주위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백제 온조왕 시기의 한강(韓江)은 이태리의 포강으로 추정된다. 즉 조선의 준왕이 넘어가 한왕(韓王)이 되었다는 한(韓)은, 진(秦)에 망한 한(韓)나라의 지역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백두산(=몽블랑산) 주위에 있었다는 해두국이 마한의 거수국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마한의 중심국은 월지국(목지국은 월지국의 오타로 보임) (월지국은 중부 유럽에 있던 반달족인 소월지국으로 판단됨, 대월지국 또는 월나라는 북아프리카 지역으로 판단됨), 중마한 등의 표현을 고려할 때, 마한은 중부 유럽의 내룩지역도 포함한 것으로 추정되므로, 한(韓)의 지역이 보다 넓게 추정된다.
그리고 이 시기는 로마사에서 카르타고와 Punic wars(포에니 전쟁, 1차 (BC 260-256), 2차 (BC 216-202, 한니발전쟁), 3차 (BC149-146))를 한창 하고 있을 시기이다. 즉 기준이 이태리 반도에서 지중해 섬이나 북아프리카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생긴 현지인들과의 충돌이 그 일부인지도 모른다. Punic wars에서의 로마의 승리는 기준과 같은 외부세력의 승리(페니키아 영역에 대한 로마의 승리)로, 이들이 북아프리카에 정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점은 후에 협보가 남하하여 구야한국을 세우는 것과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즉 이태리나 알프스에 진출한 키메리언이 일부 남하하여 구야한국을 세운 것으로 보면 개와 늑대와의 연관성이 설명된다. 즉 지중해나 북아프리카의 구야한국은 키메리언의 후손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8. 협보의 남하와 구야한국
지난 글, '금관가야는 지중해의 카르타고인가?'에서, 한단고기의 자료를 통한 고구려의 협보(백인)가 남하한 일화가, 이태리반도에서 코르시카로 가서 구사한국을 세우고, 이후 더 바다를 건너 남하하여 구야한국을 세운 곳이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가 아닌가 했다. 이는 기원전후 시기로 보여질 때, 이태리 반도의 Etruscan이 코르시카로 이동하였거나, Aeneas가 이태리반도로 오기 전에 들렀던 카르타고로 다시 Etruscan이 가는 상황일 수 있다고 본다. 이미 이 시기는 로마가 카르타고를 정복한 이후이기 때문에, 준왕이 이동했을 시기에 비하여, 보다 용이한 이동이 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만약, 협보가 이베리아 반도 연안을 통해 이동하였다면, 지금의 모로코지역에 먼저 도착하였을 것이다. 이 지역은 유전학적으로 이베리아반도에서 건너온 베르베르족으로 판명되고 있다.
즉 구야한국의 바다 건너 확장된 지역은 북아프리카의 Berber족 지역으로 추정되며, 이들이 또한 유목민이라는 것이 고구려나 키메리언 등의 특징과 일치한다. 따라서, 구야한국이 키메리언과 연관이 있는지 더 알아 보기 위해서는 북아프리카의 Berbers인들에 대한 검토가 필요함을 알게 된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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