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 지형에 둘러 쌓인 왕험성과 평양(平壤)
2023. 1. 2. 02:46ㆍ한국사/기타
부제 1: 북해에 접한 한민족의 역사
부제 2 : 천리에 걸쳐 있는 백두산
부제 3 : 서안평의 특수 지형
부제 4 : 고구려의 서해와 남해
의문의 한 중 일 역사에 대해 이어집니다.
III. 북해에 접한 한민족의 역사
최근에 쓴 글 ‘두만강은 남북으로 흘러 북해에 이른다’라는 글에서 근대 조선의 조상 익조 이행리의 여진족과의 갈등 국면에서 두만강을 따라 가다거 북해에 이르렀다 했다. 즉 두만강은 남북으로 흐르며, 북해에 이른다는 것이다. 필자는 패수 또한 서북면으로 흘러 바다에 들어 간다는 고구려 사신의 말을 빌어 패수가 라인강이라 추정했다. 요수 즉 압록강을 프랑스의 론강으로 추정하는 필자는 패수를 라인강으로 추정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한반도나 중공대륙 어디에 서북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 가는 패수가 있을 수 있는가? 그리고 중공 대룩 어디에 북해가 있을 수 있는가? 중공 대륙에는 서해도 없고 북해도 없다. 한반도에서도 북해를 찾을 수 없다. 일부 사람들은 현재의 한반도 동북쪽을 북해로 생각하는 것 같으나, 여진족과 관련한 사건에서 전혀 맞지 않는다. 요나라와 다툰 고려의 강동 6주는 요동땅이라 주장하며 고려가 요나라로부터 확보한 땅이다. 여진족과 관련되어 있다. 세종때의 조선의 4군 6진도 여진족을 몰아 내고 확보한 땅이라 했다. 따라서 요동땅이며, 여진족과 관련되어야 하며, 압록강, 두만강과 관련된다. 그러면서 북해와 관련된다. 고려가 확보한 강동 6주는 한반도 주위에서 어디가 될 수 있나? 현재의 중공 요하 동쪽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보다 훨씬 동쪽에 치우친 한반도의 두만강에 6진을 세우고 여진족을 몰아 냈다는 것인가?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그리고 몽골제국이 쌍성총관부를 극동지방인 한반도 북부에 세울 리가 없다. 서양사학자들은 징기스칸이 현재의 천산산맥 동쪽으로 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징기스칸 후예들이 현재의 이란과 우크라이나 등지에 4 칸국을 세웠다 한다. 원나라를 현 중공땅에 세웠다는 주장은 중공사학자와 한반도 식민사학자만 주장한다. 필자는 서양사학자들의 주장을 넘어, 징기스칸의 몽골세력이 대서양까지 진출한 것으로 추정한다.
다시 돌아가 북해에 접한 두만강은 독일의 엘베강으로 추정한다. 만약 고대 사서에 압록수인 요수와 두만강이 동일한 수자원 원천을 가졌다 하면, 두만강은 라인강이 될 것이다. 필자는 고려의 강동 6주가 엘베강 동쪽지역이라 추정했다. 즉 북해로 들어가는 패수와 두만강은 현 중공땅이나 한반도에서 전혀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강의 흐름과 바다를 고려할 때, 유럽의 북해만이 가능하다.
IV. 천리에 걸쳐 있는 백두산 (=장백산= 태백산)
발해고에 의하면, 백두산=장백산=태백산이라 했다. 필자는 백두산, 장백산, 태백산을 유럽의 알프스 산맥 속의 몽블랑산으로 추정한다. 백두산은 천리에 걸쳐 있는 산맥 속에 있다 했다. 과연 한반도의 백두산이 천리에 걸친 산맥 속에 있는가? 알프스산맥은 천리에 걸친 산맥이다. 그리고 중공의 요하 주위에 이러한 천리의 산맥이 있는가?
몽블랑산의 파노라마 (자료 : Wikipedia)
그리고 이 알프스 산맥과 같은 곳에 수원을 두고 있는 압록수, 즉 요수가 있다. 따라서 압록곡이 있는 압록수, 즉 오리 머리처럼 푸른 색갈의 강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지형적 조건을 갖춘 지역이 있는가? 한국의 사가들은 요하가 요수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과연 이들 주위는, 당나라가 고구려 침입시 험한 압록곡을 이용하라는 말을 당나라 장수가 무심코 했다가 전장에서 철수되는, 그런 유형의 지형적 조건을 갖추었나? 그리고 주위가 발해의 압록부가 있을 정도로 압록색갈의 지형인가? 프랑스의 론강과 그 주위 지역은 이러한 지형을 완벽히 갖추었다.
V. 험한 지형에 둘러 쌓인 왕험성과 평양 (平壤)
단군조선의 수도 왕험성은 험한 지형 속에 있었다 했다. 그리고 이 왕험성이 고구려의 수도 평양(平壤)이 되었다 했다. 과연 한반도의 평양은 험한 지형 속에 있는가? 그리고 중공에서 왕험성, 평양을 찾고자 하는 분들은 이런 지형 속의 도시를 찾았는가? 필자가 추정한 왕험성, 평양은 좌측에 요수인 압록수의 압록곡이 있고, 남쪽에는 알프스 산맥의 지형에 닿아 있다. 스위스의 츄리히 근처지역으로 추정된다. 서북으로 흘러 바다에 이르는 패수인 라인강의 상류와 압록곡의 압록수인 요수의 상류와 가까이 있다. 과연 이러한 지형을 만족하는 지형을 한반도나 중공지역에서 찾을 수 있는가? 절대적으로 없다.
VI. 서안평의 특수 지형
서안평은 특수한 지형속에 있다. 아래로는 요수 하류의 바다에 닿아 있고, 좌우로 통하는 길은 유일한 길로 이어져 있으며, 우측으로는 낙랑군이 있고, 좌측으로는 중국이 있다. 그래서 고구려 미천왕이 이곳을 점령하자, 낙랑군과 대방군이 곧 무너졌다. 즉 중국으로 통하는 길을 막았기 때문이다. 이런 서안평이 요하의 하류에 있다고 가정하자. 중국에서 한반도의 낙랑으로 이동하는 길이 이곳이 유일할까? 바닷길로 가는 것이 오히려 더욱 보편적인 통로일 것이다. 그러면 낙랑군이 대방군이 중공땅에 있다고 주장한다면, 바다에 접한 서안평은 어디가 될 수 있는가? 낙랑군의 서쪽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곳도 상정할 수 없다. 그러나 프랑스 남부의 론강의 하류에는 이러한 지형이 완벽히 구비된다.
VII. 고구려의 서해와 남해
고구려는 서해, 남해, 그리고 동해에 접해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그렇게 나타난다. 고구려는 중천왕시 시기하는 왕후를 서해 바다에 버렸다 했다. 그리고 문자왕 이후 남해에 제사지냈다 했다. 동부여가 항복한 이후 시기 기록이다. 지금의 한반도 북부와 동북삼성 지역을 고구려로 한다면 서해는 있어도 남해는 없다. 중공의 어느 지역을 고구려로 한다면 더욱더 바다가 없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서해는 대서양, 남해는 지중해, 동해는 흑해가 된다. 동북아시아의 고구려 유적을 고려하면, 고구려가 유라시아 동쪽 끝까지 왔다 추정할 때, 지금의 동지나해 또는 동해 또는 일본해가 동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의 지도 (AD 526) (고구려지역은 서고트, 동고트, 슬라브지역)
- 다음 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한국사 >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야한국은 키메리언의 후손인가? (I) (1) | 2023.02.05 |
---|---|
남마한의 구사한국은 지중해의 코르시카이다 (0) | 2023.01.24 |
해족(奚族)은 스위스에 있던 Helvetii족이다. (0) | 2022.10.09 |
돌궐은 북유럽의 누구인가? (1) | 2022.09.30 |
바이킹의 활동 지역과 한민족 연관성 (2) (1) | 2022.0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