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의 활동 지역과 한민족 연관성 (2)
2022. 9. 26. 10:39ㆍ한국사/기타
지난 글, '바이킹은 한민족과 관련이 있는가?'라는 글에서 바이킹의 문화를 살펴 보며, 한민족과의 연관성을 살펴 보았다. 특히 마한과의 연관성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마한이 중부유럽과 이태리반도에 걸쳐 있고, 백두산 주위 10개국의 하나인 해두국이 마한의 거수국이었으니, 다른 조나국(Juteland로 추정)이나 주나국도 마한의 거수국이 될 수 있지 않나 생각하며, 그러한 면에서 바이킹의 마한과의 연관성은 설명될 수 있다고 본다. 즉 바이킹의 한민족과의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서쪽의 바이킹이 덴마크의 Danes와 연관이 있다면, 북부여지역으로 돌아간 두막루가 Denmark로 추정되므로, 더욱 한민족과의 관련성은 확실해진다. 본 글에서는 8세기 이후의 바이킹의 활동지역에 대해 살펴 보며, 그동안 필자가 추정해 본 8세기 이후의 한민족 역사와의 관련성도 검토하며, 그 연관성을 확인하고자 한다. 아울러 흉노의 별종인 돌궐이 바이킹의 어떤 부족과의 관련성이 더 있는지 가늠하고자 한다.
I. Vikings의 활동 지역
"Runestones attest to voyages to locations such as Bath,[95] Greece,[96] Khwaresm,[97] Jerusalem,[98] Italy (as Langobardland),[99] Serkland (i.e. the Muslim world),[100] England[101] (including London[102]), and various places in Eastern Europe. Viking Age inscriptions have also been discovered on the Manx runestones on the Isle of Man.....
Kingdom of Mann and the Isles (source : Wikipedia)
(번역) Runestones은 Bath (Britain의 서남부지역에 있는 도시, 로마제국시 spa를 지었다 함), 그리스, Khwaresm(호레즘), 예루살렘, 이탈리아(Langobardland), Serkland (land of Saracen), England(런던 포함), 그리고 동유럽의 여러 지역을 여행한 것을 확인해준다. 바이킹시대의 inscriptions은 Isle of Man지역 (Britain의 서쪽 섬들, 상기 지도 참조)의 Manx runestones에서도 발견되었다.
The "Highway of Slaves" was a term used to describe a route that the Vikings found to have a direct pathway from Scandinavia to Constantinople and Baghdad while traveling on the Baltic Sea. With the advancements of their ships during the ninth century, the Vikings were able to sail to Russia and some northern parts of Europe.[70]
(번역) "노예의 고속도로" 라는 표현이, 바이킹이 발틱해에서 여행하는 동안, 스칸디나비아에서 콘스탄티노플, 바그다드까지 바이킹이 발견한 직항로선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9세기에 바이킹들은 그들의 배로 러시아 및 북유럽의 다른 지역까지 항해할 수 있었다.
(source : Vikings,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다음블로그, 카테고리, Vikings)
Vikings exploration and territories (source : Wikipedia)
즉 바이킹은 바그다드나 콘스탄티노플까지 그들의 무역통로를 통해 상품을 무역하면서도 노예무역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유럽뿐만 아니라 러시아지역까지 진출했다는 것이다. 즉 지중해, 흑해, 발틱해, 북해, 심지어 카나다까지 항해하며, 활동했다는 것이다. 이당시 연대를 보면 대부분 8-9세기에 해당한다. 이 당시는 슬라브족의 동유럽, 러시아, 흑해지방 등은 발해의 지역이며, 이베리아반도나 , 시실리섬등의 남부 이태리, 발칸반도, 콘스탄티노플, 바그다드 등은 신라의 지역이다. 즉 바이킹들은 신라와 발해지역을 넘나드는 무역을 했다는 것이다. 프랑스 북쪽 노르만디나 북이태리지역 등은 당시 당나라의 지역일 것이다. 즉 상업적으로 3국을 넘나드는 해상활동을 하였는데, 한 나라에 속한 그룹이 아닌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고려의 건국을 이끈 왕건의 해상세력이 아닐까 한다. 당시 발해의 모로국 (볼가 불가리아), 흑수국 (흑수말갈) 등이 신라와 친해지려는 상황을 보였다고 했다. 즉 무역을 통한 교류를 하면서 발해가 쇠퇴하는 시기에 독립적인 세력으로 커간 것이 아닌가 한다.
Linguistic and etymological studies continue to provide a vital source of information on the Viking culture, their social structure and history and how they interacted with the people and cultures they met, traded, attacked or lived with in overseas settlements.[83][84] It has been speculated that several place names on the west coast of southern France might also stem from Viking activities.[85] Place names like Taillebourg (Trelleborg, meaning City of Thralls or Castle of Thralls) exist as far south as the Charente River.[86] Gascony and vicinity[87] is an active area of Viking archaeology at present.[88]
Charente river in France (source : Wikipedia)
Rochefort (Taillebourg) in Charente river (source : Wikipedia)
(번역) 언어학적, 어원적인 연구는 바이킹의 문화, 사회구조, 그리고 역사와 그들이 만나고 무역하고 공격하고 정착했던 해외지역에서 그들이 사람들과 어떻게 교류했는지에 대해 아주 중요한 정보를 준다. 남부 프랑스의 서쪽 해안의 몇몇 지명은 바이킹의 활동으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Taillebourg (Trelleborg, 노예의 도시 또는 노예의 성곽을 의미함)같은 지명이 Charente river남쪽에까지 존재한다. Gascony와 그 근처는 현재 바이킹의 유적이 많이 출토되는 지역이다.
아래 자료를 보면 실제 Gascony지방에 842-844 기간에 바이킹의 침입이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바이키의 침략은 982년까지 계속되었다 한다. 약 150년가량 침략이 계속되었다는 것은 거의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필자는 프랑스 남서쪽의 Gascony, Aquitaine지역을 토번의 지역으로 추정한다. 즉 당나라 시기에 돌궐관련 역사와 토번관련 역사를 살펴볼 일이다.
Bayonne city in Gasconny, France (source : Wikipedia)
Meanwhile, Viking raiders conquered several Gascon towns, among them Bayonne in 842–844. Their attacks in Gascony may have helped the political disintegration of the Duchy until their defeat against William II Sánchez of Gascony in 982. (source : Gascony, Wikipedia)
A lot of Old Norse connections are evident in the modern-day languages of Swedish, Norwegian, Danish, Faroese and Icelandic.[89] Old Norse did not exert any great influence on the Slavic languages in the Viking settlements of Eastern Europe. It has been speculated that the reason was the great differences between the two languages, combined with the Rus' Vikings more peaceful businesses in these areas and the fact that they were outnumbered. The Norse named some of the rapids on the Dnieper, but this can hardly be seen from the modern names.[90][91]
(번역) 현대의 스웨덴언어, 노르웨이언어, 덴마크언어, Faroe 섬 언어와 아이슬란드언어에서 많은 고대 스칸디나비어언어와 관련성이 확실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고대 스칸디나비아언어는 동유럽의 바이킹 정착지의 슬라브언어들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두 언어사이에 큰 차이가 있었으며, 또 루스지역 바이킹은 이 지역에서 보다 평화로운 방법으로 상업을 했으며, 숫자적으로도 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스칸디나비아인들은 드네프로강의 몇몇 여울에 이름을 붙였지만, 현대에서는 거의 볼 수 없다.
(source : Vikings,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다음블로그, 카테고리, Vikings)
상기 언어의 차이성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즉 동유럽과 루스지역은 바이킹이 평화적으로 정착한 지역으로 그들이 소수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바이킹 언어가 슬라브언어에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Varangians은 슬라브인들과 융합하여 지냈다는 것이다. Varangians은 비잔틴제국의 용병이나 경호인력으로 일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서부유럽에서는 바이킹세력은 독립적인 세력으로 서유럽 일부 지역을 지배 또는 약탈하였기 때문에 바이킹의 언어 영향이 크게 남아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이러한 현상은, 바이킹의 선조 중, 서쪽의 돌궐과 동쪽의 흑수말갈의 차이가 아닌가 한다.
바이킹의 영토 및 활동 지역 (자료 : 위키피디아)
Some archaeologists and historians of today believe that these Scandinavian settlements in the Slavic lands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the formation of the Kievan Rus' federation, and hence the names and early states of Russia and Belarus.[33][34][35] ....
(번역) 오늘날의 몇몇 고고학자와 역사학자들은 슬라브땅에 정착한 이러한 스칸디나비아인들이 Kievan Rus를 형성하는데 매우 의미있는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이 Kievan Rus는 오늘날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초기 국가형태가 되었으며, 그 이름도 연유하게 되었다.
필자는 이후에 글로 쓰겠지만, Kievan Rus가 고려의 일부이지 않나 한다. 특히 왕건의 기반인 해양세력의 주축으로 판단한다. 앞에서 동으로간 바이킹세력이 고구려의 유민들이 동쪽 말갈로 간 세력으로 흑수말갈세력이 아닌가 했다. 즉 고려의 주축 건국 세력은 이들 해양세력으로 보인다. 이들 지역은 발해의 지역이기도 했다. 볼가불가리아의 보로국, 흑수국으로 판단되는 흑수말갈 등은 발해의 일부였다. 필자는 흑수말갈의 출발지는 모스크바강 (흑수강)으로 추정했다.서양사에서는 이들이 (발해의 일부로 판단되는) Khazar Khagnate의 지배하에 있었다 했다.
The Slavs and the Byzantines also called them Varangians (Russian: варяги, from Old Norse Væringjar, meaning 'sworn men', from vàr- "confidence, vow of fealty", related to Old English wær "agreement, treaty, promise", Old High German wara "faithfulness"[32]). Scandinavian bodyguards of the Byzantine emperors were known as the Varangian Guard.
(번역) 슬라브족과 비잔틴인들은 이들을 Varangians이라 불렀다. 비잔틴황제들의 스칸디나비아인 경호원들은 Varangian Guard로 알려져 있다.
필자는 Varangian Guard 들이 신라(비잔틴제국, 통일신라 후에는 고려)에 흡수된 고구려인들이 아닐까 한다. 고구려가 망한 후 고구려 유민들이 돌궐과 말갈지역으로 많이 이동했다는 수수께끼 같은 말이 당나라 기록에 있었다 한다. 필자는 서쪽으로 돌궐에 흡수된 고구려인이 바이킹 Danish and Norwegian으로 판단되고, 동으로 말갈지역, 흑수말갈지역으로 간 고구려인들이 Varangians (Swedians)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신라 즉 비잔틴제국 황제의 경호인이 된 Varangians은 고구려출신이 아닐까 추정된다. 신라에 흡수된 고구려인과 백제인들은 골품제를 가진 신라에서 차별을 받았는데, 그래도 고구려인들은 육두품까지 오를 수 있는 계급으로서 백제 출신인보다 우대를 받았다 한다. 즉 동서의 바이킹세력은 고구려의 후예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흉노의 별종이라는 돌궐과의 연계성을 설명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The Franks normally called them Northmen or Danes, while for the English they were generally known as Danes or heathen and the Irish knew them as pagans or gentiles.[36]
(번역) 프랑크인들은 이들을 Northmen 또는 Danes라 불렀고, 반면 영국인들에게는 이들은 일반적으로 Danes 또는 이교도인으로 불렀고, 아일랜드인들은 토속신앙인, 비기독교인, 이교도인으로 여겼다.
결국 서부유럽, 특히 프랑크에서는 바이킹들은 비기독교도인 Danes인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이는 이들의 선조가 되는 돌궐인들이 Danes인들이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나 생각된다.
Anglo-Scandinavian is an academic term referring to the people, and archaeological and historical periods during the 8th to 13th centuries in which there was migration to—and occupation of—the British Isles by Scandinavian peoples generally known in English as Vikings. It is used in distinction from Anglo-Saxon. Similar terms exist for other areas, such as Hiberno-Norse for Ireland and Scotland.....
(번역) Anglo-Scandinavian이란 단어는, 8-13세기에 걸쳐 British Isles을 점령한, 영국에서는 바이킹이라고 알려진 이들을, 고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이것은 Anglo-Saxon과 구분된다. 유사한 단어가 다른 지역에도 존재하는데, 예를 들어, 아일랜드나 스코틀랜드의 그들을 Hiberno-Norse라 하는 것이다. ..
(source : Vikings,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다음블로그, 카테고리, Vikings)
즉 서부유럽에서 바이킹과 색슨족의 구분은 확연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선조격인 Danish-Norwegian와 Saxon은, 비록 같은 지역을 약탈하였다 해도,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분은 북제, 북주시절, 수, 당나라 시기의 북쪽의 돌궐의 역사는 Danish-Norwegian으로 추정된다. 즉 프랑크왕국의 역사에서 Saxons족의 약탈과 침략, Danish-Norwegian의 침략은 구분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북제, 북주, 수, 당나라에서 이들은 구분되는지 더 살펴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당나라가 고구려를 멸망시켰을 때, 숙신족은 당나라에게 축하하였다 한다. 고구려의 일부 세력이 돌궐로 갔다면, 이런 언급을 한 주체는 돌궐과 다른 숙신, 즉 Saxons족일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돌궐과 숙신은 Danish-Norwegian과 Saxons으로 구분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As early as 839, when Swedish emissaries are first known to have visited Byzantium, Scandinavians served as mercenaries in the service of the Byzantine Empire.[49] In the late 10th century, a new unit of the imperial bodyguard formed. Traditionally containing large numbers of Scandinavians, it was known as the Varangian Guard. The word Varangian may have originated in Old Norse, but in Slavic and Greek it could refer either to Scandinavians or Franks. The most eminent Scandinavian to serve in the Varangian Guard was Harald Hardrada, who subsequently established himself as king of Norway (1047–1066).
(번역) 839년초, 스웨덴 사절들이 비잔티움에 방문했을때, 스칸디나비아인들이 비잔틴제국의 용병으로 활동하는 것을 처음 알았다. 10세기 말에, 새로운 황궁 경호대가 조직되었다. 전통적으로 많은 수의 스칸디나비아인들이 포함된 이들은 Varangian Guard로 알려졌다. Varangian이란 단어는 Old Norse에서 비롯되었는데, 슬라브어나 그리스어에서는 스칸디나비아인들이나 프랑크인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Varangian Guard로 복무한 사람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Harald Hardrada 였는데, 이후 그는 노르웨이왕 (1047-1066)이 되었다.
비잔틴제국은 통일신라와 그를 이어 받은 고려로 나누어진다. 893년의 Varangian Guard는 신라에서 고용된 고구려계통인들로 보이며, 10세기말에 새로 조직된 이들은 고려에서의 고구려계통인들로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There is archaeological evidence that Vikings reached Baghdad, the centre of the Islamic Empire.[50] The Norse regularly plied the Volga with their trade goods: furs, tusks, seal fat for boat sealant, and slaves. Important trading ports during the period include Birka, Hedeby, Kaupang, Jorvik, Staraya Ladoga, Novgorod, and Kiev.
(번역) 바이킹이 이슬람제국의 중심지인 바그다드에 이르렀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있다. Norse인들은 볼가지역을 그들의 무역상품으로 주기적으로 왕래했다 : 그 상품들은 모피, 코끼리 상아, 배의 밀폐제를 위한 seal fat, 그리고 노예들이었다. 이 시기의 주요한 무역항은 아래 지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Birka(스웨덴, 스톡홀름 근처), Hedeby(덴마크 남동쪽 항구), Kaupang (노르웨이 남동쪽 항구), Jorvik(Danish York, Britain의 York지역), Staraya(핀란드 남동쪽, 유럽 러시아 북쪽, 상기 지도 참조), Ladoga(핀란드 남동쪽, 유럽 러시아 북쪽, 상기 지도 참조), Novgorod (유럽 러시아 북쪽, 상기 지도 참조), 그리고 Kiev이다.
Location of Birka in Sweden (source : Wikipedia)
Location of Hedeby in Denmark (source : Wikipedai)
Location of Kaupang in Norway (source : Wikipedia)
Kingdom of Jorvik and Danelaw in Britain (source : Wikipedia)
Generally speaking, the Norwegians expanded to the north and west to places such as Ireland, Scotland, Iceland, and Greenland; the Danes to England and France, settling in the Danelaw (northern/eastern England) and Normandy; and the Swedes to the east, founding Kievan Rus'. Among the Swedish runestones mentioning expeditions overseas, almost half tell of raids and travels to western Europe. According to the Icelandic sagas, many Norwegian Vikings also went to eastern Europe.
(번역) 일반적으로 말해서, 노르웨이인들은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등으로 북서쪽으로 진출했다 ; Danes는 영국과 프랑스, 즉 영국의 북쪽/동쪽의 Danelaw (상기 지도 참조)과 Normandy에 정착했다; 스웨덴인은 동쪽으로 가서, Kievan Rus를 세웠다. 해외 원정을 언급한 스웨덴의 runestones의 거의 반절은 서유럽으로의 약탈과 여행을 언급한다. 아이슬란드 전설(sagas)에 의하면, 많은 노르웨이인 바이킹도 역시 동유럽으로 갔다고한다.
(source : Vikings,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다음블로그, 카테고리, Vikings)
상기 기록은 노르웨이인이나 스웨덴인들은 서유럽, 동유럽 양쪽 모두에 진출했다는 것이다. 반면 Danes는 프랑스북쪽 Normandy, 영국의 북쪽 동쪽의 Danelaw지역에 진출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 또한, 흉노의 별종인 돌궐은 실위의 서쪽에 진출한 세력으로 볼 때, Danes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II. Vikings Expansion (바이킹의 팽창)
Main article: Viking expansion
Travels of the Vikings (source : Wikipedia)
"Colonization of Iceland by Norwegian Vikings began in the ninth century. The first source that Iceland and Greenland appear in is a papal letter of 1053. Twenty years later, they are then seen in the Gesta of Adam of Bremen. It was not until after 1130, when the islands had become Christianized, that accounts of the history of the islands were written from the point of view of the inhabitants in sagas and chronicles.[51] The Vikings explored the northern islands and coasts of the North Atlantic, ventured south to North Africa and east to Russia, Constantinople, and the Middle East.[34][35][52] They raided and pillaged, traded, acted as mercenaries and settled wide-ranging colonies.[53] Early Vikings probably returned home after their raids. Later in their history, they began to settle in other lands.[54] Vikings under Leif Ericson, heir to Erik the Red, reached North America and set up short-lived settlements in present-day L'Anse aux Meadows, Newfoundland, Canada. This expansion occurred during the Medieval Warm Period.[55]
(번역) 노르웨이 바이킹은 9세기에 아이슬란드를 식민지화 했다.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에 대한 최초 자료는 1053년 서류에서 보인다. 20년후, 그들은 Gesta of Adam of Bremen에서 보인다. 1130년에 이르러서, 섬들은 기독교화 되었고, 이러한 기록들은 지역 주민의 입장에서 본 전설(sagas)과 년대기에서 나타난다. 바이킹들은 북대서양의 북쪽 섬들과 해안들에 진출했으며, 남으로 북아프리카에 이르고, 동으로는 러시아, 콘스탄티노플, 그리고 중동아시아에 이르렀다. 그들은 약탈하고, 유린하고, 무역을 하고, 용병으로 활동하고, 넓은 지역의 식민지에 정착했다. 초기 바이킹들은 아마도 약탈후에 집으로 돌아갔다. 보다 후기의 역사에서는 그들은 다른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Erik the Red의 후계자, Leif Ericson인솔하의 바이킹은 북아메리카에 진출하여, 현재의 카나다 Newfoundland (L'Anse aux Meadows)에 잠시 (25년-100년) 정착했다. (상기 지도 참조) 이러한 바이킹의 팽창은 중세 온난기 (950-1250)에 일어 났다.
(source : Vikings,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다음블로그, 카테고리, Vikings)
Viking expansion into continental Europe was limited. Their realm was bordered by powerful cultures to the south. Early on, it was the Saxons, who occupied Old Saxony, located in what is now Northern Germany. The Saxons were a fierce and powerful people and were often in conflict with the Vikings. To counter the Saxon aggression and solidify their own presence, the Danes constructed the huge defence fortification of Danevirke in and around Hedeby.[56]
Map of Danevirke in Denmark (source : Wikipedia)
Remains of Danevirke in Denmark (soure : Wikipedia)
(번역) 유럽대륙으로의 바이킹의 팽창은 제약되었다. 바이킹은 남쪽의 힘센 문화에 국경을 접했는데, 지금 독일 북쪽에 위치한 Old Saxony를 점령했던 Saxons족이었다. 삭슨족은 용맹하고 강한 부족으로 자주 바이킹과 싸우게 되었다. 삭슨족의 침입을 물리치고 자신들의 존재를 안정시키기 위해, Danes족은 Hedeby 근처에 Danevirke라는 거대한 방어성벽을 건설했다.
The Vikings soon witnessed the violent subduing of the Saxons by Charlemagne, in the thirty-year Saxon Wars in 772–804. The Saxon defeat resulted in their forced christening and the absorption of Old Saxony into the Carolingian Empire. Fear of the Franks led the Vikings to further expand Danevirke, and the defence constructions remained in use throughout the Viking Age and even up until 1864.[57]
(번역) 바이킹은 곧 Charlemagne의 30년 삭슨 전쟁 (772-804)에 의해 삭슨족이 폭력적으로 Charlemagne에 의해 복속되는 것을 목격했다. 삭슨족의 패배는 그 결과로 강제로 기독교화되었고 Old Saxony가 카롤링가 제국에 흡수되었다. 프랑크족에 대한 두려움은 바이킹으로 하여금 Danevirke를 더 확대하게 하였고, 방어벽 건설은 바이킹시대 내내 이용되었고, 1864년까지 남게 되었다.
The south coast of the Baltic Sea was ruled by the Obotrites, a federation of Slavic tribes loyal to the Carolingians and later the Frankish empire. The Vikings—led by King Gudfred—destroyed the Obotrite city of Reric on the southern Baltic coast in 808 AD and transferred the merchants and traders to Hedeby.[58] This secured their supremacy in the Baltic Sea, which remained throughout the Viking Age.
(번역) 발틱해의 남쪽해안은 슬라브족 연합인 Obotrites에 의해 지배되었는데, 이들은 카롤링가, 그리고 이후 프랑크제국에 충성하는 부족이다. Gudfred왕에 의한 바이킹은 808년에 남쪽 발틱해안의 Obrite족의 Reric 도시를 파괴했고, 상인들과 무역인들을 Hedeby 도시로 옮겼다. 이것은 그들의 발틱해에서의 우월적 위치를 확보해 주었고, 이는 전 바이킹시대에 걸쳐 유지되었다.
(source : Vikings,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다음블로그, 카테고리, Vikings)
즉 바이킹은 Saxons족과의 충돌이 있었다는 것이다. 바이킹의 Danes족은 덴마크지역에 Saxons족과의 충돌, 또는 Saxons족을 복속시킨 프랑크족을 방어하기 위해, Danevirke라는 큰 성벽을 쌓았다.
이상으로 바이킹의 위키피디아 자료를 통한 바이킹의 연구를 마치고자 한다. 다소 두서 없는 내용일 지라도, 많은 정보를 우리에게 시사해준다. 감추어진 역사를 찾아내는 데에는 보다 세심한 자료의 연구가 필요하다.
특히 Danes족과 Saxons족의 충돌, 그리고 서부 바이킹과 동부 바이킹의 구분, 서부 바이킹의 보다 공격적인 성향과 동부 바이킹 (Varangians)의 보다 평화적인 무역활동 등이다. Danes족과 한민족과의 연관성이 바이킹과 한민족의 연관성을 이어주는 끈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들의 역사와 한민족의 역사가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는 느낌이다. 최근 불가리아, 볼가 불가리아, 흑수말갈에 관한 글을 쓰면서, 한민족이 발틱해상에서 활발한 활동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활동의 중심에 바이킹이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바이킹의 선조 중 서쪽의 Danes가 돌궐이 아닐까 추정된다. 구체적인 것은 북제, 북주, 수나라, 당나라 역사와 돌궐의 관계, 그리고 프랑크왕국에서의 Saxons족과 Danes족과의 관계 역사가 말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이어지는 돌궐의 위치를 향한 검토의 일환이다. 한편 프랑크왕국 역사가 북위, 북제, 북주, 수나라, 당나라로 이어지는 역사인 것에 대한 부수적인 검토결과도 수반되므로 다소 시간이 더 많이 걸릴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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