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22. 10:14ㆍ역사 자료/타타르
5,310,600명(2010년 러시아연방인구조사 기준) |
러시아 남부 볼가 강 인근, 우랄 산맥의 서쪽 |
러시아어, 타타르어 |
튀르크 전통문화와 이슬람 문화(수니파) |
목차
타타르인 지도
러시아 역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민족 중 하나는 타타르인이다. 타타르인은 러시아인 다음으로 러시아에서 가장 많은 인구수를 가진 민족이다. 러시아에서 가장 최근 이뤄진 2010년 인구조사 결과, 타타르인은 총 5,310,600명으로, 러시아 전체 인구의 약 4%를 차지한다. 타타르인은 러시아연방에서 민족공화국을 가진 21개 민족 중 하나이며, 러시아의 대표적인 이슬람 민족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타타르인으로는 테니스 세계랭킹 1위를 차지했던 마라트 사핀을 들 수 있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70년대 소련뿐 아니라 유럽에서 열린 체조대회와 세계선수권대회, 그리고 올림픽에서 수차례 우승을 거두며 루마니아의 체조요정 코마네치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넬리 김은 사할린 출신의 한인과 타타르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카잔 크레믈린 안에 있는 쿨-샤리프 이슬람 사원
쿨-샤리프 사원 내부 모습
타타르인의 기원 : 그리스신화의 타르타로스와 혼동될만큼 무서운 칭키스칸의 종족
타타르인
타타르인은 러시아의 대표적인 튀르크계 민족이다. 타타르라는 명칭은 6-9세기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남쪽에서 유목하던 몽골계와 튀르크계 종족 사이에서 등장하여 점차 확산됐다. 13세기 칭기즈 칸이 영토를 정복해 나가면서 여러 민족들이 킵차크 한국(금장 한국(汗國))에 복속됐고, 이들은 타타르라는 이름으로 통칭됐다. 칭기즈 칸의 군대가 유럽을 위협하게 되자, 유럽에서는 그리스신화에서 지하세계, 지옥을 의미했던 타르타로스라는 이름과 혼동되어 칭키스 칸의 군대와 그 종족을 타타르로 부르게 됐다.
13-14세기 종족 간 교류를 통해 킵차크 한국의 튀르크계 종족과 몽골계 종족이 통합되었고, 이 과정에서 핀-우그르계 토착 종족들도 포함됐다. 킵차크 한국의 붕괴 이후 형성된 여러 한국(汗國), 예를 들면 카잔 한국, 크림 한국, 아스트라한 한국 등에서는 가장 상위계층을 타타르로 불렀다. 이후 이들 한국이 차례로 러시아에 병합되면서 이 지역 평민들도 타타르로 불리게 됐다. 타타르라는 명칭은 점차 확대되어 제정러시아 시기만 하더라도, 아제르바이잔인이나 하카스인 등 거의 모든 튀르크계 민족들을 뚜렷한 구분 없이 타타르라고 불렀다.
15-16세기 카잔 타타르 한(Khan)의 모습
러시아의 타타르인은 주요 거주 지역에 따라, 볼가-우랄 타타르, 시베리아 타타르, 아스트라한(카스피 해 부근) 타타르 등 여러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2014년 우크라이나 땅이었던 크림 반도가 러시아로 넘어가면서 그곳의 크림 타타르가 세간의 주목을 끈 바 있다. 타타르라는 이름 때문에 몽골-타타르인의 하부 그룹으로 혼동될 수 있지만, 크림 타타르는 몽골-타타르가 러시아를 침입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유럽 동부에 살던 튀르크계와 캅카스계(코카서스) 종족들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타타르라는 이름이 오랫동안 분명한 구분 없이 통용되면서 생겨난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타타르스탄 공화국 위치러시아공화국의 남서쪽에 위치해있다.
타타르인은 중국에도 있는데, 현재 중국 서부의 신장위그르자치구에 주로 거주하고 있다. 194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만주 지역에도 타타르인들이 살고 있었으나, 이들은 2차세계대전, 일제의 만주 침략 등으로 다른 국가들로 이주했다.
오늘날 러시아에 거주하는 타타르인의 약 36%가 자신의 영토인 타타르스탄 공화국에 거주하며, 인근의 바시코르토스탄, 울랴놉스크 주와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극동 지역까지 전역에 살고 있다.
솥 위에 세워진 러시아 타타르인의 중심지, 카잔
카잔 상징인 질란타(Зиланта), 카잔 크레믈린과 쿨-샤리프 이슬람 사원
앞서 보았듯이, 타타르스탄은 러시아 타타르인의 땅이다. 특히 타타르스탄의 수도 카잔은 이들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카잔은 본래 볼가 불가르(Волжская Булгария)의 북쪽 국경을 수비하는 요새로 건설됐다. 1438년 카잔은 킵차크 한국(汗國)에 의해 정복됐고, 이후 생겨난 카잔 한국(汗國)의 수도로 성장했다. 모스크바 공국이 세력을 키우면서 카잔 한국은 여러 차례 모스크바의 공격을 받게 된다. 결국 1552년 폭군 이반이라고도 불렸던 이반 4세는 카잔을 정복하는데 성공한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성 바실리 사원이 이반 4세가 카잔 정복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붉은광장의 성 바실리 사원이반 4세가 카잔 정복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
카잔이라는 이름의 기원에 대해서 여러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모든 전설은 “솥”이라는 뜻의 ‘카잔’(Казан)이라는 고대 불가르 단어와 관련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세 가지 전설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볼가 불가르의 한(Khan)은 도시를 건설하기 전, 지혜로운 사람들을 불러 모아 조언을 구했다. 그 중 한 노인이 예언하길, “큰 솥에 물을 길어 수레에 올려놓고 그 아래로는 불을 때우시오. 그리고 말들이 그 수레를 전속력으로 끌도록 하시오. 물이 펄펄 끓기 시작하면, 그곳에 도시를 지으시오.” 한은 그 말을 듣고 그대로 시행했으며, 솥이 끓는 곳에 도시를 짓고, 카잔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카잔의 천년 광장에는 “끓는 솥”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수가 있다.
천년 광장에 있는 “끓는 솥” 분수
두 번째 전설은 몽골 제국의 침입과 관련 있다. 몽골 한(Khan)인 한티메르가 볼가 불가르의 수도 불가르를 포위하고 점령했다. 용맹스러운 남성들은 모두 죽음을 당했고 여성들은 포로로 잡히게 됐다. 그 중 지혜로운 노파인 투이비카는 살아남은 자들을 배에 태우고 어느 깊은 밤 볼가 강을 따라 도망쳤다. 투이비카는 부와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던 큰 솥만 챙기고 길을 떠났다. 투이비카 일행은 마침내 한 기슭에 다다르게 된다. 그들은 아름다운 그 곳이 마음에 들어 새로운 도시를 만들기로 했다. 그렇지만 새로운 곳에서 행복하게 오래 살려면 갖고 있는 것 중에 가장 값진 것을 내놓아야 했다. 투이비카는 결국 자신이 아끼던 솥을 내놓았고, 사람들은 땅 깊숙이 솥을 파묻고, 새 도시를 지어 ‘카잔’이라 불렀다.
또 다른 전설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불가르 왕국의 마지막 한(Khan)인 가브둘라의 아들은 물을 뜨기 위해 동으로 만든 큰 솥을 강가로 가지고 갔다. 강기슭이 꽤 경사가 급한 탓에 무거운 솥을 들고 있던 왕자는 제대로 서있지 못하고, 그만 솥을 놓쳐 버렸다. 솥은 데굴데굴 굴러 강에 빠져버렸고, 물살이 빠른 강은 솥을 이내 삼켜 버렸다. 이후 이 강을 카잔-수(Казан-су, 솥-강) 또는 카잔카라 불렀다. 그리고 그 강가에 세워진 도시를 ‘카잔’이라 불렀다.
청년 레닌 동상러시아의 거의 모든 도시에는 레닌 동상이 있는데, 카잔에는 러시아에서 유일하게 청년의 모습을 한 레닌 동상이 있다.
모스크바 공국에 정복된 이후 카잔은 볼가 연안의 새로운 경제, 문화 중심지로 성장하게 됐다. 1804년 러시아에서 세 번째로 대학이 설립되는데, 바로 이곳에 세워진 카잔 대학이다. 카잔 대학은 위대한 학자들을 많이 배출했지만, 오히려 졸업을 채 하지 못한 재학생들이 더 유명하다. 대문호 톨스토이, 사회주의 혁명을 이끈 레닌, ‘러시아 5인조’의 수장으로 19세기 러시아 음악을 발전시켰던 발라키레프 등 러시아 예술과 문화를 이끈 사람들이 이곳에서 공부한 바 있다.
타타르 전통문화
타타르 전통문화는 러시아의 여타 민족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우선 타타르 남녀 기본의 의상은 헐렁한 셔츠로, 남성의 경우 무릎까지, 여성의 셔츠는 발까지 가릴 정도로 길다. 남녀 모두 이 셔츠에 폭이 넓은 바지인 샤로바르(Шаровары)를 입고, 단추가 따로 없고 소매가 짧거나 아예 없는 조끼인 캄졸(Камзол)을 입는다. 여성은 바지 대신 에이프런이 달려 있고 가장자리에 넓은 주름이 잡힌 치마를 입기도 한다. 기본 의상 위에 깍지 단추를 채우는 헐렁한 윗도리나, 단색 또는 줄무늬의 길고 품이 넓은 겉옷을 입는다. 겨울에는 솜을 넣어 누빈 외투나 모피 코트를 입는다.
타타르 여성의 전통축제의상(칼팍 포함)
타타르 전통의상을 입은 인형
타타르 전통의복 중 눈길을 끄는 것은 모자이다. 타타르 남성은 납작한 원통형의 튜베테이카(Тюбетейка)를 쓴다. 겨울에는 이 위에 누빔 모자나 모피 모자를 쓰며, 여름에는 펠트 모자를 쓴다. 타타르 여성은 튜베테이카와 비슷하게 생긴 모자나 ‘칼팍’(Калфак)이라고 하는 벨벳으로 만든 원추형의 모자를 쓰거나 수건을 머리에 두른다.
튜베테이카를 쓴 푸틴 대통령2000년 6월 타타르 축제인 사반투이를 관람하고 있는 푸틴 대통령, 샤이미예프 당시 타타르스탄 공화국 대통령(우), 라히모프 당시 바시코르토스탄 공화국 대통령(좌)
전통 신발은 부드러운 구두창을 댄 가죽신발 이치기(Ичиги)가 있다. 집밖에서는 이치기 위에 가죽 덧신을 신는다. 일을 할 때는 흰 긴 양말에 짚신을 신는다.
이치기의 모습
타타르 전통식단은 주로 고기와 유제품, 발효하여 신 맛이 나는 빵, 다양한 밀가루 제품으로 구성된다. 타타르인이 좋아하는 음식은 집에서 만든 면으로, 고기 국물에 기름과 돼지기름을 굳혀 만든 살로(Сало), 신 우유 등을 넣어 같이 끓인 것을 육수로 한다. 바우르삭(Баурсак) 역시 타타르인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밀가루 반죽을 동그랗게 만들어 살로나 기름에 튀긴 것이다. 바우르삭은 몽골인, 카자흐인, 키르기스인 등 중앙아시아 민족들도 즐겨 먹는 음식이다. 타타르 음식 중 착착(Чак-чак)은 바우르삭과 같이 밀가루 반죽을 작게 떼어 튀긴 다음 견과류와 꿀을 섞어 굳힌 과자로, 다른 민족에게도 인기가 많다.
다양한 착착 제품
바우르삭
무슬림인 타타르인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대신, 양고기, 쇠고기, 말고기 등을 즐긴다.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우리나라 순대와 같이, 고기, 고기의 피, 곡물을 넣은 소시지인 투티르마(Тутырма)와 고기파이인 벨레시(Бэлеш)를 들 수 있다. 전통 음료로는 신 우유에 물을 섞어 만든 아이란(Айран)이 있으며, 꿀물과 과일로 만든 시르벳(Ширбэт)이 있다.
타타르 축제 사반투이를 즐기고 있는 푸틴 대통령
오늘날 타타르 축제 문화는 이슬람과 밀접하게 관련 있지만, 이슬람 수용 전의 많은 축제와 의식은 대부분 농업주기와 연관되어 있다. 이 중 가장 큰 축제는 사반투이(Сабантуй)로, 여기서 ‘사반’은 쟁기, ‘투이’는 결혼 또는 축제를 뜻한다. 사반투이는 파종 전에 즐기던 봄축제로 오늘날 가장 성대한 타타르 축제이다. 타타르인들은 달리기, 뛰어넘기, 우리나라 씨름과 유사한 전통 스포츠인 케레시(Керэши), 경마 등에 참여하고, 죽을 나눠 먹으며 사반투이를 즐긴다.
아이란
우리나라 씨름과 같은 타타르 전통스포츠인 케레시
타타르인, 글로벌 세계에 발을 디디다!
타타르스탄 공화국 지하철(크레믈린 역) 내부 모습
타타르인은 러시아를 구성하는 주요 민족으로, 그들의 땅인 타타르스탄 역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천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카잔은 1979년 이래 인구 백만이 넘는 러시아의 대도시가 됐으며, 소련 붕괴 이후 글로벌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여기에는 오래 전부터 교통의 요지였던 타타르스탄의 자연지리적 요건이 한몫하고 있다. 러시아의 주요 가스관과 석유관이 타타르스탄 영토를 지나고 있는데다, 타타르스탄 영토 내에도 200여 곳의 석유매장지가 있어 이 지역을 향한 세계의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한 타타르스탄 정부의 노력왼쪽부터 1. 유적지의 QR코드, 2. 무인자전거대여소, 3. 단장한 카잔공항
또한 2011년 유럽역도선수권대회를 개최한 이후 세계적인 스포츠 중심지로도 부상하고 있다. 이미 2013년에는 17회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2014년에는 세계펜싱선수권대회가 열렸으며, 2015년 7월에는 세계수영선수권대회, 그리고 2017년에는 2018년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진행되는 컨페더레이션스컵 경기가 열리기로 되어 있다. 이와 더불어 타타르스탄은 백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새로운 글로벌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조류에 타타르인이 앞으로 어떻게 합류할 지 흥미롭다.
참고문헌
- Итоги Всероссийской переписи, 2010.
- Этнология. М, 2006.
- Народы Поволжья и Приуралья. Историко-этнографические очерки. М, 1985년
- Татары // Народы России: энциклопедия. М, 1994, С. 320-331.
- 타타르스탄 공화국 공식 사이트
관련이미지 4
위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출처사이트 게시자에게 있으며, 이를 무단 사용할 경우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제공처 정보
<민족의 모자이크 유라시아>는 교육부 및 한국연구재단의 후원으로 HK인문한국연구소협의회와 네이버가 공동기획하여 만들어진 콘텐츠입니다.
-
저자 김혜진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를 졸업하고, 모스크바국립대 역사학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하대 국제관계연구소에서 연구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 및 논문으로는 『민족의 모자이크, 유라시아(2016. 한울)』, 『러시아의 민족 I - 북서부& 볼가-우랄 편』, 『원시림 속 부상하는 산업기지, 코미 공화국』, 「러시아 내 아르메니아 디아스포라의 형성과 특징」, 「고려인 청년층의 민족정체성 형성과정에 대한 고찰」 등이 있다.
'역사 자료 > 타타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펌>타타르인 - 위키백과 (0) | 2022.06.22 |
---|---|
<펌> 타타르 - 나무위키 (0) | 2022.0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