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공통

중국 사서에 의하면 마한은 한반도에 없었다.

CG PARK 2026. 1. 29. 14:54

중국 사서 후한서 동이전 한조에 마한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나온다. 그런데 그 설명을 보면 한반도에 마한을 상정하는 제도권 반도사학자나, 한단고기를 전하는 재야사학자나 모두 한반도에 마한을 설정하고 있는 것이 이해가 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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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를 근거로 추정해 본 유럽의 마한 위치 추정

I. 머리말 필자는 오래 전부터 유럽에서의 한국사를 주장해 왔다. 그러나 아직도 그런 사관에 대한 검토를 계속하는 중이다. 워낙 기존의 사관과 다르고, 서양의 역사관과도 다른 추정이기에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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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서 동이전 한조에 나오는 마한의 묘사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그런데 이들 조건을 만족 시키는 지역은 한반도가 아니라 대서양에 접한 서유럽지역이라는 판단이다.

 

1) 흙집[土室]을 짓는데, 그 모습이 마치 무덤과 같고, 윗부분에 개호(開戶, 출입구)가 있다

 

이러한 자료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는 고대의 주거집들이 스코틀랜드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Skara Brae (Orkney Islands, Scotland, UK ) 지역에서 21세기 들어 발견된 아래 집모양이 마한의 집모양을 연상시킨다. 이들은 BC 3200 - BC 2500시대에 주거한 흔적이라는데, 환단고기에 의하면, 마한은 단군왕검이 조선을 세우면서 생긴 삼한 중의 하나 이름이므로 유사한 시기를 말하고 있다.

 

Skara Brae, Orkney Islands, Scotland, UK (3200 BC)

 

아래 스코틀랜드 shetland 섬의 Jarlshof지역에서도 유사한 집모양이 발견되었다. 신석기, 청동기 시기의 것이므로 완전 흙집이라기 보다는 겉은 흙집인데 안은 돌로 구분되었다. 완전한 흙집이라면 오천년의 오랜 세월을 지내 발견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 그 모습이 무덤 같고, 윗부분에 출입구가 있는 것이 마한의 집 형상 구조와 일치한다.

 

Jarlshof (in Shetland, Scotland)

 

2) 마한은 서쪽에 있으며 산과 바다에 흩어져 있다.

 

바다에 흩어져 산다는 것은 섬들에도 산다는 의미인데, 스코틀랜드의 Orkney island, shetland island, 아일랜드의 Aran island 등에서 고대의 흔적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아일랜드나 스코틀랜드에서 Highlands에 사는 모습들이 있는데, 산에 사는 모습을 말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들 지역은 모두 유럽의 서쪽이다.

 

3) 마한에는 성곽이 없다

 

상기 지역의 주위에는 성곽이 없다는 언급을 하고 있다. 바다와 산에 사는 지형이 자연적인 보호막을 형성하므로 성곽을 지을 필요가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성곽을 지을 필요가 없는 지형에 일부러 사는 것일 수 있다.

 

4) 마한은 소나 말을 탈 줄 모른다. 단지 제사에 이용할 뿐이다.

 

소나 말을 탈 줄 모른다는 것은 기마민족이 아니며, 이는 바다를 누비는 해양민족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말을 제사에 이용하는 것은 Norse인들인 스웨덴이나 아일랜드에서 있었다. 또한 게르만 전통신앙에서는 소와 말을 제사 지내고 제사후 그 고기를 나누어 먹었다 한다. (아래 자료 참조)

 

"The later Icelandic source Hervarar saga contains a description of how the tree was used in the pagan rites, concerning an event taking place only a few years after the scholium was written. It is in reference to the ancient Indo-European ritual of horse sacrifice:

Svein, the King's brother-in-law, remained behind in the assembly, and offered the Swedes to do sacrifices on their behalf if they would give him the Kingdom. They all agreed to accept Svein's offer, and he was then recognized as King over all Sweden. A horse was then brought to the assembly and hewn in pieces and cut up for eating, and the sacred tree was smeared with blood. Then all the Swedes abandoned Christianity, and sacrifices started again. They drove King Ingi away; and he went into Västergötland.[5]

출처: https://lainfos.tistory.com/228 [Hidden World History 감추어진 지구촌 역사:티스토리] 카테고리: Norse

 

Horse sacrifice played a central role in Germanic paganism, with the meat typically being eaten afterwards. The most detailed account of a blót of a horse is given in the saga of Hákon the Good in Heimskringla in which horses and cattle are killed and their blood collected to be sprinkled over the walls of the hof, while their meat is cooked for the attendants.[15][16] This is consistent with archaeological finds dating to the Early Medieval Period from England and Scandinavia showing deposits of horses that have been eaten.[15]

(source : Horse Sacrifice, wikipedia)

 

 

5) 마한사람들은 활, 방패, 창, 큰 방패를 잘 쓴다.

 

바이킹의 무기는 아래 사진과 같이 큰 방패를 이용하고, 창을 쓴다.

 

바이킹 페스티벌의 모습

 

그런데, 진서 동이열전에 마한에 대한 묘사가 이와 유사하다. 즉 마한사람들이 활, 방패, 창, 큰 방패를 잘 쓴다고 아래 자료에서 말한다. 상기 사진에서는 활에 대한 언급이 없으나, 덴마크의 Danes족의 사냥에서, 활 및 석궁을 이용했다고 기술하였다. 즉 활도 바이킹이 이용하였다는 것이며, 이는 마한의 기록과 매우 일치한다.

 

필자는 마한이 유럽 중부와 이태리반도를 포함한다 추정했다. 동쪽 프랑스지역에 있었던 Audui족으로 추정되는, 백두산 10국의 하나인 해두국이 마한의 거수국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백두산 (=몽블랑산) 10국 중의 하나인 주나국, 조나국 (Juteland, 덴마크지역) 등도 마한의 거수국일 가능성이 있다. 즉 이들이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가까우므로 바이킹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북부여 지역으로 돌아간 두막루(Danes족)가 덴마크지역으로 AD 500년경 (동부여가 망한 후 일부 세력이 이 지역으로 옮김) 이동했으므로, 이들도 9세기부터 나타나는 바이킹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 즉 바이킹과 마한의 연결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또한 Danes족의 훈족왕이 BC 12c경 덴마크와 앵글로족(후에 영국으로 이동)의 선조가 되었으므로, 또한 바이킹족도 영국으로 이동하여 지배하였으므로, 서쪽인 마한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은 16세기에 스페인의 무적함대와 싸울 때에도 활과 대포를 이용했다.

 

 

6) 마한 사람들은 농사짓고 누에치는 법을 알며, 면포(緜布)를 짓는다.

 

상기 스코틀랜드의 고대 움집 사회에서는 농사를 지은 흔적이 있다 한다.

 

그런데 누에치는 것은 특별한 것이므로 이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한다. 누에(silkworms)를 치려면 먹이가 되는 뽕잎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뽕나무(white mulberry)를 재배해야 하는 것이다. 아래 자료를 보면 뽕나무는 지구 전체에서 광범위하게 길러진다.

 

The species is native to China and India[11] and is widely cultivated and naturalized elsewhere (including the United States, Mexico, Australia, Kyrgyzstan, Argentina, Turkey, Iran, Iraq, and many others).[7][8][12][13][14][15]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누에를 기르기 위한 뽕나무를 재배했다고 한다. 적어도 서기 220년에 로마황제가 실크옷을 입었다 한다. (하기 자료 참조) 즉 우리가 선입관으로 생각하는 실크로드 때문에 유럽에 뽕나무 누에치기가 없었다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치 않다는 것이다. 환단고기에서는 고대사회에서부터 양잠업을 권장했다고 한다.

 

The Ancient Greeks and Romans cultivated the mulberry for silkworms. At least as early as 220 AD, Emperor Elagabalus wore a silk robe.[21]

 

따라서 마한지역에서 누에치는 법을 알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리스와 로마의 유럽지역에서 누에고치를 길렀다는 기록은, 이들 지역이 마한지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7) 큰 밤이 나는데 배만 하다. 꼬리가 긴 닭이 있는데, 꼬리의 길이가 5자나 된다

 

큰 밤은 Horse Chestnut이라 한다. 아래 자료에서 보면, 발칸반도지역과 영국, 아일랜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에서 자란다. 브리튼과 아일랜드에서는 아이들이 이들 씨를 이용한 놀이가 있는 것을 보면 매우 흔한 역사를 말해 준다. 아이슬란드나 Faroe islands (=Scotland 북쪽에 있는 덴마크 섬)에서도 길러지는 것을 보면 유럽의 서쪽과 발칸반도에서 많이 자라는 것을 본다. 즉 이들 지역이 마한이라는 조건을 만족시킨다. 여름에 덮지 않은 지역에서 자라는 큰 밤나무는 한국에서는 무더운 여름때문에 있을 수가 없다. 이는 역으로 말하면 한국에는 마한이 있을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Aesculus_hippocastanum_fruit Horse chesnut fruit (source : Wikipedia)

 

아래 사진은 프랑스의 Reims지역에 있는 Notre Dame Cathedral 기둥에 있는 Horse Chestnut 잎의 모습이다. 즉 프랑스 이지역에도 큰 밤이 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역시 유럽 서쪽이 마한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프랑스 Reims에 있는 Notre Dame 사원의 기둥에 새겨진 Horse Chestnut 문양 (자료 : 위키피디아)

 

필자는 꼬리가 5자(1.5미터)나 되는 닭은 공작새로 판단한다. 공작이나 닭이나 모두 꿩과에 속한다. (아래 자료 참조)

 

"꿩과에 속하는 중형 조류.

 

닭은 현재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야생종(Gallus gallus)을 가축화한 새이며, 기원전 6, 7세기경부터 사육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우리 나라의 닭은 이미 신라의 시조설화와 관련되어 등장한다." (자료 : 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꿩과의 새. 꿩과 비슷하나 깃이 매우 화려하고 몸이 크다. 날개의 길이는 수컷이 50cm, 암컷은 40cm, 꽁지는 1.5미터 정도이며, 머리 위에 10cm 정도의 깃털이 삐죽하게 있는데 수컷이 꽁지를 펴면 큰 부채와 같으며 오색찬란하다. 암컷은 수컷보다 작고 꽁지가 짧으며 무늬가 없다." (자료 : 공작새)

 

그럼 공작새가 유럽에 있었는가? 아래 자료를 보면 고대 그리스에서는 불사조로 신성시 되었고, 알렉산더의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는 페르시아의 새로 언급했다.  그리고 고대 로마에서는 BC 35년부터 식용하고 있었다. (아래 자료 참조).

 

In ancient Rome, peafowl were served as a delicacy.[65] The dish was introduced there in approximately 35 B.C. The poet Horace ridiculed the eating of peafowl, saying they tasted like chicken. Peafowl eggs were also valued. Gaius Petronius in his Satyricon also mocked the ostentation and snobbery of eating peafowl and their eggs.

(source : Peacock(Peafowl), Wikipedia)

 

또한 아래 자료에서 보면 고대로마와 중세유럽에서도 공작을 구워먹었다 한다.

 

"관상용 외에도 깃털을 화살깃으로 사용하기도 하며, 과의 조류라 식용도 가능하다. 아랍에서 구워먹기도 하며, 고대 로마와 중세 유럽에서도 구워먹었다. 중국의 청나라에서도 팔진에 속해서 귀한 식재료 취급당한 적이 있으며, 고대 로마와 중세 유럽에서 '앙트르메'라고 말하는 눈으로 보고 즐기는 장식요리의 재료로도 사용되었다.

...............

 

그리스 로마 신화의 천신 제우스의 아내이자 가정의 여신 헤라의 상징조이다. 헤라나 헤라가 등장하는 그리스 신화를 다룬 서양 미술 작품들을 보면 대부분 헤라 옆에 공작을 한 마리씩 그려놓았다. 남편 제우스 옆에 독수리가 있는 것과 똑같은 경우. 이 밖에도 수컷 공작의 깃에 나 있는 화려한 무늬들을 별이 가득한 밤하늘의 상징으로 여기거나, 헤라의 마차를 끄는 짐승이 곧 공작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자료 : 공작, 나무위키)

 

즉 긴꼬리의 닭인 공작이 유럽과 고대 그리스에 있었다는 것은 이들 지역이 마한지역일 수 있다는 추정과 일치한다.

 

 

8) 금과 보배, 비단과 양탄자[罽]를 귀하게 여기지 않고, 오직 영주(瓔珠, 보석과 구슬)을 중히 옷에 꿰메어 장식으로 삼았고, 목에 매달거나 귀에 걸기도 하였다.

 

바이킹 여성들의 치장은 부자(Jarls계층)들은 비싼 실크옷을 입으며, 브로우치, 혁대버클, 목걸이, 팔찌 등 보석을 치장하기 좋아한다고 아래 기록된다. 이러한 보석 가공은 Norse에 특이하다고 했다. 반면, 손가락 반지나 귀걸이 등은 슬라브족에서나 보이며 바이킹들은 전혀 하지 않는다 한다. 평민들(Karls계층)도 같은 모습이나 비교적 덜 비싼 것을 한다고 한다.

 

Typical jewellery worn by women of the Karls and Jarls: ornamented silver brooches, coloured glass-beads and amulets (source : Wikipedia)

 

마한인의 자료에서는 일부 비슷하나 다소 차이가 있다. 즉 마한인은 금, 은, 비단(실크), 모직물 따위를 귀중하게 여기지 않고, 구슬을 귀중하게 여겨 옷에 꿰어 차기도 하고 (브로우치), 또는 머리를 장식하거나, 귀에 달기도 한다.

 

귀걸이나 반지는 바이킹들은 하지 않고, 슬라브인들이 한다고 했다. 슬라브인들이 사는 발칸지역도 마한의 일부가 아닌가 한다. 필자는 동예지역을 발칸반도로 추정했는데, 이들지역의 사람들이 동예와 같이 긴 창을 쓴다 하였다. 즉 슬라브인이 사는 발칸반도도 마한지역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9) 대체로[大率] 모두 괴두(魁頭)를 드러내 상투를 틀었으며, 베로 만든 도포에 짚신을 신었다.

 

상투의 흔적은 현재로서는 독일의 엘베강 오리진의 Suebian에서 나타난다. Suebian Knot라 하는 머리 모양인데, 상투와 유사하다. 수에비언은 유럽 중부에서 지내다가 남쪽으로 이동하여 이태리 북부에 진출하기도 하고, Gaul지역에 진출하기도 한다. 게르만족의 대이동 시기에는 서쪽으로 이동하여 이베리아 반도 북서부와 포루투갈 지역에 수에비왕국을 세우기도 했다. 수에비언은 Marcomanni, Quadi, Hermunduri, Semnones, Lombards, Alamanni, Bavarians 등을 포함한다고 한다. 역사가 Tacitus는 Vandals, Goths, Burgundians을 Suebi에 포함시킨다. 즉 중부유럽의 대부분 지역을 포함한다.

 

 

 

Suebian Knots 를 보여주는 사진들 (자료 : 위키피디아)

 

10)그 사람들은 건장하며 용감하며, 젊은이들은 집을 지을 때 힘쓰는 자들이 있는데, 늘 밧줄로서 등가죽을 꿰뚫고 큰 나무를 메달아 큰 소리로 외치는데, 이를 건장히 여긴다

이는 지게 지는 모습을 말한다고 해석된다.

 

아래 사진은 바이킹의 일상모습을 그린 것이라 한다. 그런데 이들이 머리에 띠를 두르며 지게 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즉 필자의 유럽지역의 마한 추정에 힘을 보태는 자료인 것이다.

 

 

11) 항상 5월에 농사일을 마치고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밤낮으로 술을 마시며 함께 모여 노래하고 춤을 추었으니, 춤을 출 때에는 항상 수십인이 서로를 따라 땅을 밟으며 박자를 맞춘다. 10월에 농사일을 마치고 또 이와 같이 반복한다.

 

5월(단오)과 10월(추석) 축제에 대한 기록은 아직 체계적으로 연구하지 못했다. 그러나 같이 모여 춤을 추는 문화는 유럽에서 확인된다. 필자는 특히 바스크지역의 춤문화가 상기 마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래 비디오를 보면 여럿이 모여 발을 맞춰 춤추고 일행이 안으로 모였다가 밖으로 다시 나오는 모습은 우리의 문화처럼 보인다.

 

필자는 바스크지역의 문화가 한민족과 관련이 매우 깊다고 판단한다. 과거 전 유럽지역이 바스크인 지배가 아니었나 하는 추정도 있다. (바스크언어 지역이름이 전유럽에 있다 함). 고구려로 추정되는 Visgothic Kingdom(남프랑스와 이베리아반도지역)이 신라로 추정되는 사라센 제국(우마이야 왕국)에 의해 망할 때, 이들은 바스크지역으로 피신했다 한다. 그래서 더 그 문화가 보존되었는지 모른다.

 

Basques Oinkari Traditional Dance 비디오

youtu.be/lPlopC_68No

 

바스크지역의 전통리듬을 보여주는 아래 비디오는 우리의 국악 가락을 연상케 한다. 

 

https://youtu.be/5sQmU0WZyHQ?si=H-nKJgpcVt_IrAVd

Txalaparta – Traditional music from Basque Country

 

12) 또한 소도(蘇塗)를 세워 큰 나무를 세우고 이에 방울과 북을 메달아 귀신에게 제사지낸다.

 

마한의 풍습에 소도를 세워 큰 나무를 세우고 귀신에게 제사지냈다는 것은 스웨덴의 Uppsala지역에서도 볼 수 있다. 아래 그림에서 큰 나무와 우물이 있는 곳에 temple을 세워 놓고 종교적 행사를 지낸다. German paganism이 arianism인데 스키타인이나 고트족과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필자는 고트족이 훈족이고 고씨성의 고구려라 추정한다. 여기서도 스칸디나비아쪽이 마한의 일부로 추정되고 있다.

 

 

A woodcut depicting the Temple at Uppsala as described by Adam of Bremen, including the golden chain around the temple, the well and the tree, from Olaus Magnus' Historia de Gentibus Septentrionalibus (1555).

 

13) 마한의 서쪽에는 해도(海㠀) 위에 주호국(州胡國)이 있다. 그 사람들은 (몸집이) 단소(短小)하고, 곤두(髡頭, 머리를 깎음)를 하였으며, 위의(韋衣, 가죽옷)을 입었는데 상의는 있으나 하의가 없었다. 소와 돼지 기르는 것을 좋아하였다. 배를 타고 한(韓)을 왕래하며 물건을 거래하였다.

 

마한의 서쪽에는 해도위에 주호국이 있는데, 몸집이 작고 곤두와 가족옷을 입었으며, 하의는 없었다고 한다.  필자는 이들이 사르데냐 등에 있는 무어인이 아닌가 추정하였으나, 하의를 입지 않은 면을 고려하여, 지중해 서쪽의 Balearic islands에 사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추정한다. 

 

14) 마한은 서쪽에 있으며 54국(國)이 있는데, 그 북쪽으로는 낙랑(樂浪)과, 남쪽으로는 왜(倭)와 접한다

 

마한의 북쪽에 낙랑이 있다 했는데, 이는 축소된 낙랑군이 아니라 축소전의 낙랑군이나 낙랑국의 개념으로 보다 크게 고려해야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필자는 이러한 축소전의 낙랑군이나 낙랑국이 중유럽에 있던 것으로 추정한다. 남쪽으로 왜와 접한다는 것은 지중해의 아래쪽에 있는 섬이나 북아프리카의 왜를 의미한다 추정한다. 

 

 

이상의 여러 조건을 비추어 볼 때, 마한은 한반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유럽에 있는 것이라는 필자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진다 생각한다. 이 글은 사서 내용에 의한 한반도 사관의 허구라는 측면의 글 중 마지막 내용이 된다. 앞으로 추가되면 더 글을 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