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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0. 5. 06:49ㆍ역사 자료/해족
해족
최근 수정 시각: 2022-02-28 16: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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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에 등장하는 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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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무렵의 지도. Khitans위에 "Tatabi"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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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편집]
해(奚)는 고막해(庫莫奚)라고도 한다. 랴오허와 라오허 일대에 거란 등과 잡거한 종족들로 동호가 그 원류라고도 한다. 위동부(爲東部) 선비 우문부의, 또는 흉노의 일파라고 한다.[1] 퀼테긴 카간 비문의 타타비(tataby)를 해족으로 추정한다.
중국 남북조 시대 (특히 북위)에 시라무렌 강(약락수) 남쪽과 라오하 강(노합하) 유역에 거주했다. 유목을 하였고 융단 장막에 머물며 수레를 가지고 군영을 만든 뒤 5백 명을 두어 지킨다고 한다. 거란과 자주 충돌했고 당나라 고조 때 중국과 교류하였다. 이 당시는 거란보다 더 강성하였다.
2. 기록[편집]
648년에는 추장 가도자(可度者)가 무리를 이끌고 항복하니 요락도독부를 설치하였다고 한다.
측천무후 때 거란이 반란을 일으키자 돌궐에 속하게 되었다.
712년 당나라 장수 손검이 12만 군대를 이끌고 습격하였지만 당나라 측이 패하였다고 한다.
715년에 다시 요락주를 설치하여 간접 지배하였다.
788년 실위와 함께 당나라 변방을 습격했으나 군사 6만명이 격퇴당했다.
830년, 847년에는 군대를 이끌고 대대적으로 침공해왔으나 대패당하고 오히려 털렸다.
9세기 중엽 이후 거란족에 의해 통합 당했으며 추장 거제(去諸)가 일부 무리를 이끌고 당나라에 항복하였고 동해(東奚 : 친 거란)와 서해(西奚 : 친 당) 두 개로 나뉜다.
요나라 시기 거란의 부속 민족이 되어 해왕부를 세워 자치를 하였다.
요나라 말기 금나라가 흥하여 거란의 통치체제가 흔들리자 1123년 해왕 회리보(回離保, 거란명 소간蕭幹)가 대해국(大奚國) 신성황제(神聖皇帝)를 자칭하였으나 1년 만에 부하들한테 피살되고 멸망하였으며 이후 해족은 금나라 치하에서 동화되어 소멸되었다.
3. 여담[편집]
중국의 『문헌통고』(文獻通考)에 따르면 "해금은 오랑캐 중 해족이 좋아하는 악기다. 현도(絃鼗)에서 나온 것으로 모양도 같다"고 했다. 해금은 후에 북송을 통해 고려에 들어갔는데 이후 토착화가 잘 되었는지 당악기가 아니라 향악기로 취급된다.
[1] 거란족이 본래 해족의 일원일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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