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위 마자르족은 흑수말갈인가?
2022. 9. 11. 23:37ㆍ한국사/발해
I. 흑해 위의 Magyar족
지난 글, 견훤과 시메온 왕과의 비교에서 살펴 보았듯이, 당시 흑해 위에 있던 마자르족은 비잔틴제국과의 연합으로 불가리아를 공격했다. 아래 지도에서 오른쪽 상부에 MAGYARS가 나타난 것이 보인다. 즉 890년에 드니에스터 강유역에 존재하였다는 것이다. 불가리아의 시메온왕은 당시 마지르족의 우측에 있었던 Pechnegs와 연합하여 흑해위에 마자르족에 반격 공격하여 이들이 지금의 항가리지역, 즉 판노니아지역으로 이주하게 만들었다. 여기서는 이러한 마자르족의 흑해위의 존재 여부에 대해 자료를 다시 보고자 한다.
Bulgaria and Magyar at 890 AD (source : Wikipedia)
아래 자료 Magyar tribes에서 보듯이, 그들은 원래 기원전 5세기 전부터 볼가강과 우랄산맥사이에 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AD 830경, 이 지역에 7개의 부족이 있었다 한다. 이들은 Khazars Khagan의 영향하에 있었는데, 862년경 카자르칸국으로부터 분리되었다 한다. 881년경 튀르크족은 카자르칸국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들은 카자르칸국에 의해 진압되었다. 따라서 이들은 카자르제국을 떠나 Kabar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뭉쳐서, 기존의 7개 마자르족에 합류하게 된다. 이들은 On-Ogur (Ten Arrows)라는 이름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Hungarian이란 이름의 어원이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들의 유전적 분석을 보면, 초기의 원래 마자르부족은 중앙아시아/남시베리아 출신으로 나타나며, 이들이 서진함에 따라 유럽인, 코카서스지역의 인자가 섞이게 되었다. 그러나 Finno-Ugric 인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래 위키피디아 자료 참조)
"According to András Róna-Tas the locality in which the Hungarians, the Manicha-Er group, emerged was between the Volga river and the Ural Mountains.[1] Between the 8th and 5th centuries BC, the Magyars embarked upon their independent existence and the early period of the proto-Hungarian language began.[1]
Around 830 AD,[8][9] when Álmos was about 10 years old, the seven related tribes (Jenő, Kér, Keszi, Kürt-Gyarmat, Megyer [hu], Nyék and Tarján)[10] formed a confederation[8] in Etelköz,[9] called "Hétmagyar" ("Seven Magyars"). Their leaders, the Seven chieftains of the Magyars, besides Álmos, included Előd, ond, Kond, Tas, Huba and Töhötöm, who took a blood oath, swearing eternal loyalty to Álmos.[11] Presumably, the Magyar tribes consisted of 108 clans.[12]
The confederation of the tribes was probably led by two high princes: the kende (their spiritual ruler) and the gyula (their military leader). The high princes were either elected by the leaders of the tribes or appointed by the Khagan of the Khazars who had been exerting influence over the Magyars. Around 862 AD the seven tribes separated from the Khazars.[citation needed]
Before 881 AD three Turkic tribes rebelled against the rule of the Khagan of the Khazars, but they were suppressed. After their defeat they left the Khazar Empire and voluntarily joined the Hétmagyar confederation. The three tribes were organised into one tribe, called Kabar, and later they played the roles of vanguard and rear guard during the joint military actions of the confederation. The joining of the three tribes to the previous seven created the On-ogur (Ten Arrows),[10] one of the possible origins for the name Hungarian.[clarification needed]
Social organization
The Hungarian social structure was of Turkic origin.[13]
Genetics
Magyars comprised seven clans and later three more clans made of Kabar people. Recent genetic research have shown that the first-generation Magyar core gene pool originated in Central Asia/South Siberia and, as Magyars were moving westward, admixing with additional strata of people of European origin, and people of the Caucasus. Burial samples of the Karos-Eperjesszög Magyars place them genetically closest to Turkic peoples, modern south Caucasian peoples, and modern Western Europeans to a limited degree, while no specific Finno-Ugric markers were found.[14] However, a 2008 study done on 10th century Magyar skeletons, indeed found a few Uralic samples.[15] "
(source : Magyar tribes,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다음 블로그, 카테고리, Magyar)
필자는 Magyar족이 말갈족이 아닌가 판단하는데, 말갈족도 여러 부족명이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매우 가능성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탱그리즘을 믿는 튀르크족으로 9세기 기간의 흑수말갈, 흑수국의 역사와 매우 비슷하다. 지난번 연구에서 살펴 보았듯이, 흑수말갈, 흑수국은 발해의 일부였는데, 발해 말기에 이들은 거의 독립적인 세력이 되어서 친신라 세력이 되었다 했다. 즉 마자르족과 비잔틴제국이 연합하여 불가리아를 공격한 사실과 그대로 연결된다. 즉 필자는 당시 비잔틴제국이 신라였고 마자르족은 말갈족이며, 흑수말갈이 흑수국에 해당하며, 불가리아는 후백제 세력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발해의 일부로 추정되는 카자르칸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세력을 형성한 것도 흑수국의 역사와 유사하다. (상기 마자르족 자료 참조)
2. Kara Bulgar in 9 century
Kara Bulgar 즉 흑수 부여족이라 할 수 있는 명칭이 있고 실제 아래 같이 지도도 나온다. 그러나 이에 대한 기록은 없다. 아마도 발해라 판단되는 Khazar khaganate에 포함된 부여족 중 흑수말갈, 흑수국이 아닌가 한다. 아니면 Khazar Bulgars를 Kara Bulgars로 불렀을 수 있다고 본다. 850년경에는, 마자르족이 896년 Pechenegs에 의해 흑해에서 파노니아지역으로 밀려나기 전에 있던 흑해위 지역이다. 따라서 Kara Bulgar는 마자르족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후 Pechenegs부족이 흑해위를 차지하는 나라와 다르다. 발해말에 흑수국이 거의 독립적인 세력이 되어 친신라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Kara Blugar가 비잔틴제국과 연합하여 불가리아를 공격했다. 그러면 Kara Bulgar가 불가리아를 공격했다는 것이 된다. 이는 발해의 일부 부족이 통일 신라의 일부 후백제 세력을 공격했다는 것으로 해석하면 가능하다. 즉 발해의 고구려세력이나 말갈 세력, 그리고 신라의 후백제 세력 모두 부여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흑해위 Pechenegs가 흑수국인지 흑해위 Magyar족이 흑수국인지는 좀더 흑수국에 대한 검토가 있는 후 알수 있을 것이다.
Kara Bulgar at 850 AD (source : Wikipedia)
3. 흑수 : 모스크바 강?
그런데 흑수란 검은 강이라는 뜻이다. 물 수자는 주로 강을 나타내는데 쓰였다. 따라서 흑수가 어느 강인지 찾아야 한다.
한때 필자는 중부 유럽의 Morava river가 흑수인 것으로 추정했다. (안시성 전투에 참여한 흑수말갈은 이 지역에 있을 가능성이 더 많다.)
그러나 Kievan Rus지역에 대해 살피던 중, 모스크바강이 흑수라는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모스크바 강이 흑수가 될 수 있는지 살펴 보고자 한다.
아래 위키피디아 자료에 의하면 모스크바 시는 모스크바강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었다 한다. 이 지역에 원래 거주했던 핀족의 Merya와 Muroma 사람들은 Mustajoki강 (=Black river)라 불렀다 한다. Merya, Muroma 사람들은 볼가강 근처에 사는 핀족이다. (아래 지도 참조)
위의 마자르족 자료에서 마자르족은 기원전 5세기부터 볼가강과 우랄산 사이에 살았다고 하는 자료가 생각나게 한다. 즉 이들지역에 사는 마자르족이 흑수말갈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Moskva and Moscow are two different renderings of the same Russian word Москва. The city is named after the river. Finnic Merya and Muroma people, who originally inhabited the area, called the river Mustajoki, in English: Black river. It has been suggested that the name of the city derives from this term,[2] although several theories exist. To distinguish the river and the city, Russians usually call the river Moskva-reka (Moskva river) instead of just Moskva."
(source : Moskva river,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다음 블로그, 카테고리, Kievan Rus)
볼가 불가리아 좌측의 Mari, Merya, Muroma 핀족 주거 지역 지도 (자료 : 위키피디아)
4. Magyar 즉 말갈족이 볼가 불가리아 서쪽에 거주할 가능성
우리가 흔히 아는 Magyar족인 Hungarian의 어원은 Onogurs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Onoghuric 또는 Oghuric언어는 튀르크언어의 일종이다. 6세기에 고트족에 관한 역사서를 저술한 Jordanes는 Hunuguri(Onoghurs)는 Marten (담비) 가죽 무역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중세에서는 담비가죽은 동전화폐의 대체품으로 이용되었다. 이것은 그들이 숲가까이 살았다는 것이며, Finno-Ugrian 부족들과 접촉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Onoghurs (Oghurs)은, 6-7세기 자료에 의하면, 아바르와 Gokturk의 서유라시아 정복과 관련되어 대부분 언급되었다. (아래 자료 참조)
즉 마자르족 즉 말갈족이 위 지도의 볼가 불가리아 서쪽에 거주했을 가능성을 강하게 언급하고 있다. 이 자료는 앞의 마자르족의 기원이 볼가강과 우랄산 사이 지역이라는 것과 일치한다. 또한 판노니아 지역의 아바르는 유연과 관계있다고 유전자 분석에서 밝혀지는데, 필자는 유연과 고구려의 장수왕이 함께 도모한 (유연의 고토인) 지두우는 Finnic and Ugric지역이라는 것을 지두우 관련 글에서 밝힌 바 있다. 즉 말갈족이 이 지역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The ethnonym Hungarian is derived from Onogurs (> (H)ungars).[5]
The Onoghuric or Oghuric languages are a branch of the Turkic languages.
Jordanes in Getica (551) mentioned that the Hunuguri (believed to be the Onoghurs) were notable for the marten skin trade.[21][22][23] In the Middle Ages, marten skin was used as a substitute for minted money.[24][9] This also indicates they lived near forests and were in contact with Finno-Ugrian peoples.[9][25] .......
The Onoghurs (Oghurs), in the 6th and 7th century sources, were mentioned mostly in connection with the Avar and Göktürk conquest of Western Eurasia.[27] "
(source : Onogurs,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다음 블로그, 카테고리, Bulgars)
5. 실위의 동쪽은 흑수말갈이다.
흑수말갈의 위치에 대한 신당서 기록은 우리에게 결정적인 자료를 제공한다.
아래 신당서 북적 실위 내용 중 길공구님의 번역문을 살펴 보자. 즉 실위의 동쪽은 흑수말갈이고, 서쪽은 돌궐이며, 남쪽은 거란, 그리고 북쪽은 바다에 가까이 닿아 있다고 했다.
" 실위는 글단(거란)이 별종으로 동호의 북변이며, 대개 정령(당나라 북적 철륵)의 묘예 (여러 대를 걸친 먼 후대의 자손)이다. 땅은 황룡 북에 근거하고, 노월하 근방이며, 경사(수도)에서 곧바로 동북 7천리에 있으며, 동은 흑수말갈이고, 서는 돌궐이며, 남은 글단(거란)이고 북은 빈해 (바다에 가까이 닿아 있음)이다. "
(출처 : 실위와 거란어 언어/몽골실위 괸련 중국 정사 발번역 by 길공구, 필자의 네이버블로그 (blog.naver.com/lainfos), 카테고리, 실위, 공유글 참조)
필자는 실위를 덴마크지역 북쪽의 지역으로 판단했다. 실위 지역의 방대함으로 아래 지도보다 북쪽에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광범위하게 걸쳐 있는 지역으로 판단된다. 이는 Schleswig지역이 덴마크지역에 있었으며, 황두 실위, 몽골실위 등을 고려하여 추정하였다.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글 '실위는 북유럽의 Schleswig지역이다' 참조)
Schleswig 지역이 나타나는 지도 (자료 : 위키피디아)
따라서 실위의 동쪽에 있는 흑수말갈은 핀란드 우측의 Finne-Ugric지역에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즉 앞에서 분석한 볼가 불가리아 서쪽, 그리고 모스크바 지역에 흑수말갈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6. 흑수국 = 흑수말갈
흑수국은 발해의 일부 부용국이었으나, 발해 말기에는 거의 독립적이 되었으며, 신라와 가까이 지내려 한다는 아래 자료가 있었다. 흑수말갈은 보다 강대할 때에는 모스크바 지역의 흑수국에서 보다 남쪽으로 내려와 흑해 연안까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보로국은 볼가 불가리아로 필자는 이미 추정했다. (필자의 글, '볼가 불가리아는 고구려, 발해, 고려의 영역인가?' 참조)
그래서 앞의 1번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흑해위의 말갈 즉 Magyar족이 통일신라인 비잔틴제국과 연합하여 후백제를 공격했고, 이에 후백제의 견훤, 불가리아 Simeon왕은 Magyar의 동쪽에 있는 Pechenegs와 연합하여, Magyar를 공격하여 이들이 판노니아 지역으로 이동하게 만들었다. 즉 흑수국이 흑수말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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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위해 왕의) 882년 즉위설을 따를 경우,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하면 886년 신라 헌강왕 재위 기간에 신라 북부 북진(北鎭)에서 보고하기를
“적국인(狄國人)이 진에 들어와 나무 조각을 나무에 걸어 놓고 돌아갔다.”
고 말하면서 그 나무 조각을 가져다 바쳤다. 거기에는
“보로국(寶露國)과 흑수국(黑水國) 사람들이 모두 신라국과 화친하고자 한다.”
는 15자가 쓰여 있었다고 한다. 보로국과 흑수국은 .... 독립 국가인 것처럼 신라에 외교를 시도하는 것을 볼 때, 발해가 멸망하기 40여 년 전인 9세기 후반, 대위해 재위 기간쯤 되면 발해가 신라와 인접했던 ... 지방에 대한 통치력을 잃어버린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위해 즉위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독립 상태인 것이 확인되는 만큼 .........이미 대위해 시대에, 신라의 후삼국시대처럼 지방 세력들이 독립해서 찢어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위의 흑수국과 보로국의 귀부 건과 더불어 평양 성주 금용이 대위해 시기(신라 진성여왕 시기)에 신라로 귀부한 것이 대표적이며 최소한 남경남해부 인근과 남부 국경지대가 발해의 통제력에서 벗어난 것을 추정할 수 있고[3] 이 지역은 926년 여름에 거란에 완전히 항복한다.
(자료 : 대위해 (발해 국왕)(재위 : 882/894-906), 나무위키,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발해)
7. 흑수국 지역 주위의 고구려식 성곽
그러면 이러한 흑수국 주위에 우리와 연관이 있을 법한 유적이 있을까 의문이 든다. 필자는 아래 사진 두장을 제시한다. 고구려의 성곽을 매우 닮았다.
White city wall in Moskva
Novgorod city
그럼 혹시 흑수말갈이 고구려와도 연관이 있을까 의문이 든다. 아래 나무위키 자료를 보면 고구려와도 관련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고구려의 지배를 받던 북흑수말갈이라 표현된다. 말갈 7부가 수서에 등장한다고 아래 자료는 말하는데, 위에서 본 마자르족도 7개 분파가 있었다 한 것과 일치한다.
이어서 흑수말갈은 발해의 속령이 되었다고 하며, "고려와 후백제의 최후의 결전인 일리천 전투에서 고려 장수 유금필이 북방민족인 철륵[1], 달고 (타타르), 흑수족 기병들을 이끌고 활약했다고 하는데 흑수족이 바로 흑수말갈이다" 라는 기록은 고려와 후백제의 싸움에서 북방민족 흑수족이 고려와 연합하여 싸운 것은 고려의 지역이었다는 의미를 말한다. 우리가 위에서 추정한 내용과 일치하는 기록이다.
"말갈의 한 분파.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수서(隋書)에서 말갈 7부로써 등장하면서부터이다. 참고로 말갈 7부에 대한 위치 비정은 학자들마다 다 다르다. 근데 그중에서도 흑수말갈이 제일 심하다....
추운 곳에서 살았지만, 흔히 생각하는 유목민족 이미지와는 다르게 돼지를 길러 고기를 먹고 가죽으로 옷을 입는 등 농경 생활을 했다. 실제 만주족은 반농반목 생활을 하는 민족이었다.
다른 말갈부족보다 타 민족(가령 고구려인들)과의 혼혈이 적었다고 한다.
한국사에서는 고구려의 지배를 받던 북흑수말갈이 주필산 전투에서 동원되면서 등장하였다. 발해 초기에 발해의 영향력을 이탈하려는 행보를 보이는데 추장 아속리계가 당나라와 손잡고 발해의 후방을 위협하자 무왕은 동생 대문예를 시켜 공격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무왕이 당나라를 공격한 이후 발해에 복속하였다. 그러다 9세기 후반이 되면 신라 헌강왕에게 흑수가 화친을 청하는데, 발해 중~후기 어느 시점에 발해에서 사실상 독립한 상태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거란이 발해를 멸한 후에는 거란에 복속한 숙여진과 달리 거란을 거부해 생(生)여진이 되었다.
고려와 후백제의 최후의 결전인 일리천 전투에서 고려 장수 유금필이 북방민족인 철륵[1], 달고[2], 흑수족 기병들을 이끌고 활약했다고 하는데 흑수족이 바로 흑수말갈이다."
(자료: 흑수말갈, 나무위키, 인용출처: 필자의 다음 블로그, 카테고리, 말갈)
이들 흑수국 지역은 아래 보라색 원지역으로 초기 Kievan Rus지역 (Rus khagnate)에 해당한다. 그 동쪽에 보로국으로 추정되는 볼가불가리아가 있고, 그 아래에는 발해의 일부로 보이는 Khazar khagnate지역이다.
카자크 칸국 (남색 지역)과 키예프 칸국 (보라색 지역, 붉은 글씨) (자료 : 위키피디아)
그리고 이들은 동쪽의 바이킹에 해당하는 Varangians Trade Route로서 해상무역을 통한 왕성한 상업활동을 하였다. 이들이 고려 건국의 해상세력인 왕건의 세력인지도 모른다.
Varangian trade Route (in purple) (자료 : 위키피디아)
7. 결론
즉 결론적으로 흑수말갈은 흑수국이며, 이들은 초기에 검은 강이란 뜻을 가진 모스크바 강 주위에서 출발하여 흑수국이라 불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이들 지역은 고구려 장수왕 시기의 지두우 정복지역으로 판단된다.
이어서 발해의 흑수국, 흑수말갈 지역이며, Varangians이 활동하는 Rus Khagnate 지역이다. 그리고 그 옆의 볼가 불가리아 지역은 보로국 지역으로 역시 발해의 권역이었다.
발해가 요수(프랑스의 론강)의 동쪽으로부터 시작된 영역을 가졌으므로, 이들 지역과 Khazar Khagnate지역을 포함한 광범한 영토를 가졌음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해동성국 발해는 발틱해의 동쪽의 융성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지역을 이어 받은 Kievan Rus는 고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고려가 후백제와 일리천 전투에서, 흑수족의 지원을 받은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고려의 건국 세력인 왕건의 패서지역 해상세력이 이들 지역에서 활동한 Varangians일지도 모른다.
과거 스칸디나비아인들의 전설적인 이야기인 Old Norse Sagas에서는 Kievan Rus를 Garoariki라 불렀다 한다. (아래 자료 참조) Garoari, 혹시 Gauri라 불리는 고구려와 유사한 고려를 말하지 않을까? 고구려도 고려라 명칭했다. Kievan Rus는 초기에 Novgorod에 수도를 두었다가 후에 Kiev로 옮겼다 한다.
"Garðaríki (anglicized Gardariki or Gardarike)[1] or Garðaveldi is the Old Norse term used in medieval times for the states of Kievan Rus'.[a]
As the Varangians dealt mainly with Northern Kievan Rus' lands, their sagas regard the city of Holmsgardr (Holmgarðr, Veliky Novgorod) as the capital of Garðaríki.[3][4][5][6] Other local towns mentioned in the sagas are Aldeigjuborg (Old Ladoga), Pallteskja (Polotsk), Smaleskja (Smolensk), Súrsdalar (Suzdal), Móramar (Murom), and Ráðstofa (Rostov).[7][8] "
(source : Garoariki,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다음 블로그, 카테고리, Kievan 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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