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고구려

고구려의 개마대산은 어디인가?

CG PARK 2021. 3. 2. 02:44

부제 : 고구려 대무신왕이 정벌한 개마국은 동유럽에 있었다

 

개마국(蓋馬國)은 백두산 10개국 중의 하나이다. 

 

개마고원, 개마대산 등 관련 언어가 많다. 아래 자료에서 보는 것처럼, 개마고원은 개마대산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동옥저가 개마대산 동쪽에 있었다고 후한서 동이전에 전한다 한다. 

 

그리고 AD 26년 고구려 대무신왕이 개마국을 고구려에 복속시켰다. 그 다음해에는 인접한 구다국이 고구려에 항복했다고 한다. 

 

따라서 개마대산의 위치를 발견하면 개마국의 위치를 알 수 있고, 개마대산의 동쪽에 있는 동옥저의 위치를 알게 된다. 또한 개마국에 이웃한 구다국도 그 위치를 알게 된다. 

 

 

"개마국은 26년(대무신왕 9) 고구려에 복속된 소국으로, 왕의 친정을 통해 왕실의 부(部)인 계루부(桂婁部) 휘하에 편제된 것으로 여겨진다. 개마국은 대무신왕 즉위 후 진행된 주변 소국들에 대한 활발한 정복 활동의 결과로 고구려에 복속되었다. 『삼국사기』에는 대무신왕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가 개마국을 정벌하여 그 국왕을 굴복시키고, 땅을 군현으로 삼았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이듬해는 개마국이 고구려에 복속되었다는 사실을 듣고 개마국에 인접한 구다국(句茶國)도 고구려에 항복하였다고 한다. 해당 기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초기 고구려가 주변으로 팽창하면서 복속시킨 주변 소국 중 개마국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개마국의 위치에 대해서는 고구려 초기 중심지였던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환런현[桓仁縣], 지린성[吉林省] 지안시[集安市] 근처로 보는 견해와 압록강 이남, 낭림산맥 동쪽의 개마고원 일대로 비정하는 설이 대별된다.

 

명칭은 개마고원을 의미하는 개마대산(蓋馬大山)에서 유래하였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전은 오늘날 함경도 해안 지역에 위치하였던 동옥저가 개마대산 동쪽에 있었다고 전한다. 문맥상 개마대산은 백두산이나 그 일원인 개마고원에 비정할 수 있다. 그리고 『한서(漢書)』 지리지에는 서기전 107년에 설치된 현도군(玄菟郡)의 속현 중 서개마현(西蓋馬縣)이 보인다. 개마라는 지명이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사용되었음이 확인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개마국 [蓋馬國]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또한 아래 후한서 동이전을 보면 고구려 개마대산의 동쪽에 동옥저가 있고, 동옥저의 동쪽으로는 큰 바다와 닿고, 동옥저의 북쪽으로는 읍루와 부여, 동옥저의 남쪽으로는 예맥과 접한다.  동옥저는 동서로 좁고 남북으로 길다 했다. 

 

이러한 옥저와 예맥은 또한 단단대령의 동쪽에 있다 했다. 낙랑은 단단대령의 서쪽에 있다 했다

 

따라서 개마대산과 단단대령이 옥저와, 예맥, 그리고 낙랑의 위치를 추정하게 해준다. 

 

"東沃沮在高句驪 蓋馬大山之東, 東濱大海, 北與挹婁·夫餘, 南與濊貊接. 其地東西夾, 南北長, 可折方千里. 

 

동옥저(東沃沮)는 고구려 개마대산(蓋馬大山)의 동쪽에 있는데, 동쪽으로는 큰 바다와 닿고, 북쪽으로는 읍루(挹婁)와 부여(夫餘), 남쪽으로는 예맥(濊貊)과 접한다. 그 땅은 동서(東西)로 좁다랗고 남북(南北)으로는 길쭉하며, 둘레는 1천리의 반절[折] 정도이다."

 

(자료 : 후한서 동이전 동옥저조, 출처 : 지사지도 (원한의 거리) 네이버 블로그, 공유자료, 본 블로그 카테고리 하상주 동이)

 

至昭帝 始元五年, 罷臨屯·眞番, 以幷樂浪·玄菟. 玄菟復徙居句驪. 自單單大領已東, 沃沮·濊貊悉屬樂浪.

 

소제(昭帝) 시원(始元) 5년(B.C. 82)에 임둔과 진번을 파하고 낙랑과 현도에 합쳤다. 현도는 다시 구려로 옮겨갔다. 단단대령(單單大領)의 동쪽에 있는 옥저와 예맥은 모두 낙랑에 속하였다."

 

(자료 : 후한서 동이전 예조, 출처 : 지사지도 (원한의 거리) 네이버 블로그, 공유자료, 본 블로그 카테고리 하상주 동이)

 

 

이제 개마대산과 단단대령이 어디인지 추정해 보자. 이러한 추정은 동시에 그동안 필자가 추정한 아래의 것들과 연관된 것이기도 하다. 

 

그전에 필자는 북옥저가 스위스 북쪽 Augusta Raurica라는 것을 행안국을 추정하면서 밝힌 것을 기억하고자 한다. 그리고 필자의 글,'고트족은 고구려이다(1)'에서 평양은 항가리의 부다페스트로 추정된다고 하였다는 것을 상기하고자 한다. 또한 필자의 글,'갈사부여는 발칸반도에 있었다'라는 글에서 대무신왕의 둘째 부인은 갈사국왕의 손녀라는 것을 상기 하고자 한다. 필자는 이글에서 호동왕자와 관련된 낙랑이 이 근처라는 것을 지적했다. 이 모든 추정이 다시 한번 맞는지 틀리는지 검증받는 것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압록수인 요수가 론강이라 추정했고, 백두산은 몽블랑산이라고 추정한 것을 상기하고자 한다. 그동안 이에 근거하여, 졸본천, 비류국, 해두국, 행안국, 황룡국, 두막루 (북부여), 실위, 북옥저 등을 추정한 사실 또한 상기 하고자 한다. 따라서 필자가 추정한 백두산인 몽블랑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개마국이 있다면 그동안 필자가 추정한 논리와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상기 후한서 동이전을 보면 동옥저와 동예가 모두 단단대령과 고구려의 개마대산의 동쪽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흠정만주원류고'에서도 동옥저는 개마대산의 동쪽에 있다고 확인 하였다. 

 

필자는 단단대령을 Dinaric Alps로 추정하고 개마대산은 Carpathian Mountains 속의 Kezmarsky stit(2566 m, in Slovakia)으로 추정한다. 

 

단단대령은 Dinaric Alps나 이 지역이름인 Dalmatia  등에 그 말의 뿌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은 Illyrians이 사는 지역으로 백제의 위례성이 있는 지역으로 판단된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 별도의 글에서 언급하고자 한다.)

 

 

Dinaric Alps topo at Adrian Coast (source : Dinaric Alps, Wikipedia)

 


 

 

Dinaric Alps (source : Dinaric Alps, Wikipedia)

 

 

단단대령의 우측에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Carpathian Mountains이 있다. 이 Carpathian Mountains 중에 높은 산들이 모여 있는 High Tatras지역에 2500m 가 넘는 15개의 산봉우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Kezmarsky (2556m) 봉우리이다. 이 Kezmarsky 가 발음상 비슷한 개마대산이 아닌가 한다. (아래 도표 참조)

 

이 Carpathian mountains 가까이에 필자가 평양으로 추정하는 항가리의 Budapest가 있다. 그래서 더욱 개마고원의 개마대산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개마대산의 동쪽에 옥저(동옥저)가 있다고 했다. 동옥저의 동쪽으로는 바다가 접했다고 했다. 즉 발칸반도의 우측에 동옥저가 있다는 것이다. 동예는 동옥저 밑에 있으니 모두 바다에 접하게 된다. 이들은 모두 단단대령인 Dinaric Alps의 동쪽에 있게 된다. 

 

큰 바다로 배타고 며칠을 가면 큰 섬이 있다 했는데, 바로 크레타섬이 된다. 고대로부터 있던 문명지역이며, 도이(島夷)로 판단되는 Dorian이 사는 지역이다. 

 

즉 후한서 동이전의 기술과 맞아 떨어지는 지역이다. 

 

낙랑군의 동쪽에 단단대령이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낙랑군은 Pannonia 지역 또는 보다 넓은 Dacia지역으로 추정된다. 대방군은 낙랑군 밑에 있다 했고, 대방군은 마한의 북쪽에 있다 했으니 마한이 이태리반도, 발칸반도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추정한 낙랑인 Carpi는 동옥저 지역에 있는데, 다소 차이가 있다. 아마도 Carpi가 속했다는 보다 넓은 Dacia지역이 고조선과 낙랑이 관련된 지역이 아닌가 한다. 

 

 

따라서 이러한 추정은 결국 개마국도 이 주위에 있다는 것이다. 

개마고원도 Carpathian mountains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AD 26년 개마국을 정벌한 고구려의 대무신왕(18-44 AD)은 다음 해 개마국과 인접한 구다국의 항복을 받는다. 즉 구다국도 발칸반도 근처에 있다는 것이다. 광개토태왕이 정벌한 구다천지역도 이 구다국 지역이 아닐까 한다. 

 

AD 32년 대무신왕은 최리의 낙랑국을 정벌한다. 파노니아지역(Dacia지역)에 있는 낙랑군이 아닐까 판단한다. 갈사국왕의 손녀가 대무신왕의 둘째비이며, 호동왕자를 낳았다. 필자는 갈사부여를 루마니아 서쪽, 갈사지역으로 추정했다. 즉 낙랑과, 갈사부여, 대무신왕이 정벌한 개마국, 개마대산, 그리고 동옥저, 동예, 모두 위치가 잘 설명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필자의 이제까지의 추정이 옳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본다. 

 

 

 

 

Carpathian topo map (source : Carpathian mountains, Wikipedia)

 

 

 

Lomnisky and Kezmarsky stit from Skalnate pleso (source : Carpathian mountains, Wikimedia commons)

 

 

고구려의 대무신왕 (18-44 AD)과 유사한 재위기간을 가진 로마제국의 Tiberius (14-37 AD)황제는 AD 9년, Dalmatia, Pannonia 지역 정벌을 언급하고 있다. 이는 이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서 3년만에 힘겹게 진압했다는 기록이다. 

 

그러나 이 지역은 백제의 온조가 있던 지역으로 판단되는데, 로마사의 기록을 아직 정확히 해석하기 힘들다. (백제 온조는 AD 9년에 마한을 기습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했다.)  로마사는 고구려사, 백제사를 섞어 놓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백제사 초기 기록이 의심가는 점이 있다고 나무위키에서 언급되는데, 보다 더 연구가 있은 후에 검토가 가능한 것 같다. 후일로 미룬다. 

 

단 아래 글에서 장수왕, 문자왕과 안장왕 시절인 AD 480-535 기간 동안  이 Dalmatia지역이 고트족에 의해 점령되었다는 것이 눈길을 끈다. 백제의 위례성이 이 지역에 있었다는 추정이 힘을 얻는 기록이다. 즉 장수왕, 문자왕, 안장왕 시절까지 분석한 후에 이때의 상황을 보다 정확히 알 수 있으므로 후일로 미룬다.

 


"Tiberius was one of the greatest Roman generals; his conquest of Pannonia, Dalmatia, Raetia, and (temporarily) parts of Germania laid the foundations for the northern frontier....

 

(source : Tiberius, Wikipedia)

 

 

"The first inhabitants of this area known to history were the Pannonii (Pannonians), a group of Indo-European tribes akin to Illyrians. From the 4th century BC, it was invaded by various Celtic tribes. Little is known of Pannonia until 35 BC, when its inhabitants, allies of the Dalmatians, were attacked by Augustus, who conquered and occupied Siscia (Sisak). The country was not, however, definitively subdued by the Romans until 9 BC, when it was incorporated into Illyricum, the frontier of which was thus extended as far as the Danube.

 

 

In AD 6, the Pannonians, with the Dalmatians and other Illyrian tribes, engaged in the so-called Great Illyrian Revolt, and were overcome by Tiberius and Germanicus, after a hard-fought campaign, which lasted for three years. After the rebellion was crushed in AD 9, the province of Illyricum was dissolved, and its lands were divided between the new provinces of Pannonia in the north and Dalmatia in the south. The date of the division is unknown, most certainly after AD 20 but before AD 50. The proximity of dangerous barbarian tribes (QuadiMarcomanni) necessitated the presence of a large number of troops (seven legions in later times), and numerous fortresses were built on the bank of the Danube."

 

 

(source : Pannonia, Wikipedia)

 


"In 9 AD the Dalmatians raised the last in a series of revolts[38] together with the Pannonians, but it was finally crushed and, in 10 AD, Illyricum was split into two provinces, Pannonia and Dalmatia, which spread into larger area inland to cover all of the Dinaric Alps and most of the eastern Adriatic coast.[39]....

 

The fall of the Western Roman Empire, with the beginning of the Migration Period, left the region subject to Gothic rulers Odoacer and Theodoric the Great. They ruled Dalmatia from 480 to 535 AD, when it was restored to the Eastern Roman (Byzantine) Empire by Justinian I."


(source : Dalmatia, Wikipedia)

 

 

 

** The 15 highest peaks of the High Tatras—all located in Slovakia—are:[2]

      (source : High Tatras, Wikipedia)

PeakElevation (m|ft)

Gerlachovský štít

2,655

8,711

Gerlachovská veža

2,642

8,668

Lomnický štít

2,633

8,638

Ľadový štít

2,627

8,619

Pyšný štít

2,623

8,605

Zadný Gerlach

2,616

8,583

Lavínový štít

2,606

8,550

Malý Ľadový štít

2,602

8,537

Kotlový štít

2,601

8,533

Lavínová veža

2,600

8,530

Malý Pyšný štít

2,591

8,501

Veľká Litvorová veža

2,581

8 468

Strapatá veža

2,565

8,415

Kežmarský štít

2,556

8,386

Vysoká

2,547

8,356